• 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주용중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노무현과 이명박, 소모전 그만뒀으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물러나는 대통령과 굳이 싸울 필요 있겠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작년 말 몇몇 측근들과 대선 전략을 논의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후보의 생각은 빗나갔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와 노무현 대통령 간의 전선(戰線)은 이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 간의 전선만큼이나 험악했다. 노 대통령은 “제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하겠느냐”라며 이 후보의 핵심 공약을 비판했다. 이 후보는 국정원 TF팀이 자신을 뒷조사한 사실이 밝혀지자 청와대의 ‘정치공작’이라고 몰아붙이며 검증국면을 헤쳐나갔다. 이 후보와 박 전 대표 캠프 간에 고소고발이 잇따랐듯이 이 후보와 청와대의 싸움도 검찰에까지 가게 됐다. 청와대가 이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1막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은 11일 이 후보가 최근 발표한 ‘신한반도 구상’에 대해 “유치하다”고 했다. “범법행위를 용납하라는 게 무슨 논리냐”며 이 후보에 대한 고소의 정당성도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11월 말쯤 범여권 단일 후보가 떠오를 때까지 이 후보를 공격하는 선봉장을 떠맡을 태세다. 링 위에 대신 올라 이 후보를 TKO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힘을 잔뜩 빼놓은 뒤 범여권 후보에게 바통을 넘겨주려는 전략이다.

    얼마 전 이 후보는 다시 몇몇 측근들과 ‘노 대통령 문제’를 논의했다. 일부 측근들은 노 대통령과 대립 각(角)을 세우는 것이 나쁠 게 없다고 했다. 정권의 탄압을 받는 이미지를 쌓을 수 있는데다 노 대통령의 인기는 이 후보와 비교도 되지 않는 만큼 싸워도 불리할 게 없다는 논리였다. 일부 다른 측근들은 노 대통령과의 싸움을 가능한 한 피하라고 건의했다. 노 대통령과 싸워 이긴들 타박상을 입을 수 있고 무엇보다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이 후보는 전투는 당에 맡기고, 자신은 뒤로 한 발 빠지기로 했으나 12일 한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바빠서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마디를 던졌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는 말도 있지만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통령 후보의 싸움은 꼴불견이다. 신선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은 ‘대한민국의 다음 5년을 어떻게 걸머지고 나갈 것인가’를 둘러싼 차기 주자들 간의 포부 경쟁을 듣고 싶은 것이지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통령후보 간에 “너는 안 돼” “네가 잘한 게 뭐 있는데…”라는 멱살잡이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과 이 후보는 다른 점도 많지만 공통점도 많다. 가난의 그늘을 함께 이겨냈고 상고(商高)를 졸업했다. 각자가 속한 정당의 주류(主流)세력에 개혁을 기치로 도전해서 대선 후보를 쟁취한 점도 같다. 시기와 방식은 다르지만 민주화운동에도 동참했다. 둘 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말이 많은 스타일이다. 지금 범여권 후보 중에 노 대통령과 비슷한 걸로 따지자면 솔직히 이 후보만한 사람도 드물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고 싶은 노 대통령의 심정이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 후보 죽이기’에 나서야 범여권 후보가 유리해지는 것도 아니다. ‘야당 탄압’ 논란만 부추길 뿐이다. 오죽했으면 친노(親盧)주자라는 이해찬 전 총리마저 12일 “노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했겠는가. 이 후보는 노 대통령이 싸움을 걸더라도 웬만하면 무시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후보마저 정색을 하면 국민이 피곤해진다. 노 대통령 말고도 이 후보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