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 '노트북을 열며'에 이 신문 이정민 정치부문 차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서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난 대통령 그만두면 정치는 안 하는 건 줄 알았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서로 전제가 달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열린우리당 정대철 고문의 말이다. 정 고문은 노무현 정권의 창업공신이다. 그런 그조차 노 대통령의 돌출행동의 속뜻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을 향한 대연정 제안이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 등이 대표적인 예다. 범여권의 통합 움직임을 지역주의 회귀라며 비판하고, 영입에 공들여온 고건 전 국무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예비 주자들을 거침없이 깎아내려 결국 주저앉혔을 때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정 고문은 그 이유를 대통령 퇴임 후의 거취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비단 정 고문뿐이 아니다. 정치권에선 요즘 노 대통령이 퇴임 후 다시 현실정치에 뛰어들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퇴임한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을 떼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게 관행이자 상식이라고 믿어온 이들에겐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 참여정부 평가 포럼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총선 조직이라느니, 노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느니 하는 얘기가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2일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 평가 포럼 특강 발언 이후 이런 관측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4시간여의 강연에서 그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끔찍한 일"이라고 공격하고 민주노동당을 "투쟁엔 강하지만 정책엔 약하다"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 내 반노 진영을 비난하고 일부 주자에겐 "차별화해서 지지도 올랐으니 다시 와서 (내게) 줄 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조롱했다. "손학규씨가 왜 여권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공격받지 않은 것은 노 대통령 자신과 그를 따르는 친노 세력뿐이었다.

    사교집단의 집회 같기도 하고 5년 전의 후보 노무현을 보는 착각에 빠지게도 했다는 이날 특강은 노 대통령이 정국의 중심임을 부각한 무대였다. 임기를 9개월 남긴, 더군다나 대선을 공정 관리해야 할 행정부 수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상한 것은 노 대통령을 잘 안다는 사람일수록 이런 관측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부산 출신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은 자신이 지향하고 추구해 온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김병준 특보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대통령이) 고향 마을로 내려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함축하는 의미가 있지 않으냐. 더구나 나이도 아직 젊고… 고향 뒷산의 숲 가꾸기나 환경운동만 하며 지내기야 하겠느냐"고 여지를 뒀다.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선거에 나선다 해도 말릴 방법은 없다. 헌법은 대통령만 두 번 이상 하는 것을 막고 있을 뿐 다른 방법으로는 얼마든지 정치를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13, 15대)을 두 번 했다. 다시 의원이 된다면 3선이 된다.

    문제는 국민이 이를 받아들이느냐다. 박수받을 일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사정은 다르다. 다시 편이 갈리고 갈등.격돌하면서 국론은 갈가리 찢길 것이다. 자칫 재임 중 몇몇 치적과 평가마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최근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30%대로 진입했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달 만에 다시 20%대로 떨어졌다.

    노 대통령이 아직 똑부러진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그가 하산길에 과욕을 부리는 것인지, 아니면 보는 이들의 괜한 기우인지 분명치 않다. 만의 하나 기우가 아니라면 먼저 국민에게 터놓고 얘기하는 게 어떤가. 특강이니 포럼이니 하면서 변죽만 울리지 말고 특유의 솔직한 화법으로 선언하라. 국민 여러분, '3선의 국회의원 노무현'을 맞을 준비가 됐나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