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신문 2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성한용 선임기자가 쓴 <'전직 대통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 재직 중에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당연히 정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헌법재판소 1995.1.20)
     
    지금은 상식으로 되어 있는 대통령 공소시효 정지 이론은 1994년 11월 한 사법연수원생이 찾아냈다.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한중씨다. 79년 12·12 군사반란의 공소시효(15년)가 그해 12월12일이 끝나는 것으로 모두 다 알고 있을 때였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를 요구하던 사람들은 시간과의 싸움에 몰려 있었다.

    정씨는 서울변협 변호사 교육을 마치고 설문조사에 답변을 하면서, 기타 난에 “12·12가 내란죄가 안 된다면 헌법규정상 재직 중 소추할 수 없으므로 그 기간은 공소시효 계산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써넣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84조가 근거였다. 이 기발한 착상은 대한변협 성명과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김영삼 정권의 5·18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내는 데 디딤돌이 됐다.

    정한중 변호사의 발견은 전두환·노태우 사법처리 논란 속에서 이뤄졌지만, 그 뒤 대통령들에게 두고두고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소시효 15년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20년 뒤까지 기소가 가능하다. 개헌을 해서 4년 연임제가 도입되고, 8년 동안 대통령을 하게 되면, 공소시효는 23년이 된다. 물론 대통령 재직 중의 범죄도 퇴임 이후에 처벌이 가능하다. 퇴임한 뒤에야 시효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불리한 수사 결과가 나오자, 대통령 측근들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거론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별반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그런데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대통령’, ‘대선자금’, ‘검찰’ 등의 단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민감성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노 대통령 임기 말이다. 그도 머지 않아 ‘전직 대통령’이 된다.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불행했다. 국외로 쫓겨가 객사하고, 총에 맞아 죽고, 감옥에 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청문회를 겨우 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북송금 사건으로 형사처벌을 당할 뻔했다.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이 그래도 무사한 것은 혐의 사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단죄를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의 소추권 행사는 공동체의 ‘합의’를 뛰어넘기가 어렵다. 그건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느냐’는 차원일 수 있다. 민심은 종종 감성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뒤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임기 말인 요즘 말과 행동을 보면 좀 걱정스럽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비판했다. 개헌 발의를 접으면서도, 개헌을 미루자는 주장을 두고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토를 달았다. 강퍅하다. 그러러면 그냥 개헌 발의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최근 ‘청와대 브리핑’을 보면 현기증이 난다. 청와대 이름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정치인들, 언론을 돌아가며 비판하고 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다. 옳은 말도 많지만, 틀린 말도 많다. 극성스럽다.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대통령의 뜻”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이 노무현을 중심으로 도는 것 같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지지율이 많이 올랐지만 여론은 아직도 부정적이다. 권력은 무상한 것이다. 권력자는 민심 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