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9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집착이 도를 넘었다. 어제 개헌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국민이 반대하는데 왜 이렇게 매달리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1월 9일 발의 의사를 처음 밝힌 이래 두 달간 대통령부터 대(對)국민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60∼70%의 반대 여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대통령의 탈당으로 여당마저 없는 상황이다. 지금 당장 개헌 발의를 해도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국민은 관심조차 안 둘 판이다.

    더욱이 대통령은 “각 정당과 대선주자들이 다음 정부에서 개헌하겠다고 공약하면 개헌 발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니 회유나 협박처럼 들린다. 실현 가능성도 의문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그런 공약이 가능이나 하며, 설령 공약을 한들 지켜지기나 하겠는가. 지금 정치구도가 그대로 간다면 혹 몰라도 차기 정권에서의 개헌은 2008년 총선으로 새롭게 구성될 국회와 정치권이 다루게 될 텐데 누가 이를 보장하겠는가.

    제시한 개헌안도 졸속에 가깝다. 차기 대통령의 궐위 시 잔여 임기가 1년 이상일 경우 다시 대통령선거를 치르도록 한다는데,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1년 만에 또 대선을 치러야 하는가. 무엇보다 4년 연임제가 최선이라는 논거부터가 박약하다. 이 문제야말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상수(常數)로 놓고 ‘개헌 공약’부터 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의 정상적인 대통령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러니까 “개헌을 이슈 삼아 레임덕 시기를 어떻게든 늦추면서, 여권에 불리한 대선 판도를 흔들어 보려는 저의가 깔린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개헌 공약을 지키려고 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정작 중요한 ‘연 7% 경제 성장’ ‘연 일자리 50만 개 창출’과 같은 공약은 안 지키고 급하지도 않은 개헌 공약만 지키겠다고 우기는가.

    노 대통령은 이쯤에서 개헌을 깨끗이 포기하는 게 옳다. 그 대신 민생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핵 등과 같은 국정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임기 말을 큰 탈 없이 넘기는 첩경이요,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