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민주노동당이 30일로 창당 7년을 맞았다. 한국의 정당으로는 꽤 많은 나이다. 창당 3년2개월여 만에 심하게 휘청거리는 열린우리당 때문에 그 7년이 더 돋보인다. 갑자기 파장 분위기를 보이는 열린우리당은 2003년 11월11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통해 공식 출범했다. 그해 4월28일 민주당 내 신주류 의원 22명이 신당 추진을 공식 선언한 지 6개월여 만이었다. 새로운 정치,잘사는 나라,따뜻한 사회,한반도 평화 등 4대 강령과 국민참여 및 통합의 정치 등 100대 기본정책을 채택했다고 당시 신문들이 보도했다.

    적어도 보수세력의 눈에 이 정당은 진보혁명의 본대쯤으로 인식됐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 반사이익으로 2004년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의기충천한 열린우리당의 리더들은 파죽지세로 보수의 진영으로 짓쳐나가 일거에 초토화할 듯한 기세였다. 그 기개는 어디다 버렸는가. 지난 22일 임종인,23일 이계안,24일 최재천,28일 천정배,30일 염동연 순으로 탈당이 이어지고 있다. 29일에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통합신당파와 신당반대파간의 균열이 일단 봉합되었다고 전해지긴 했지만 그 효과가 며칠 갈지 의문이다.

    이미 많은 구성원의 마음이 당을 떠나버린 분위기다.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무섭게 개혁신당 창당을 시도,기어이 민주당을 쪼갰던 ‘천·신·정’ 가운데 이미 천정배 의원이 떠났고 정동영 의원도 떠날 계기 혹은 명분만 찾는 듯하다는 보도다.

    참 대단한 한국의 정치인들이다. 무엇보다 정당 만드는 재주가 놀랍다. 옛날 유랑극단의 가설무대 설치도 한국 정치인들의 정당 만들기보다는 품이 더 들었을 듯하다. 5·16쿠데타 후 김종필이 비밀결사를 통해 은밀히 민주공화당을 만들어낼 때는 오히려 용을 많이 쓴 셈이었다. 그 이후 야권 지도자,특히 김영삼·김대중의 정당 만들기는 ‘달인’의 경지를 보였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야당 정치인들의 결속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정당정치의 퇴행을 초래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열린우리당. 1000년을 기약하던 새천년민주당을 박차고 나오면서 ‘100년 가는 정당’을 공언했던 정당이다. 그런데 벌써 그 구성원 중 일부가 자신의 좌판을 걷기에 바빠하는 모습이다. 노 대통령의 이미지가 너무 안 좋아졌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그림자를 털어낸 새 당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인심조석변(人心朝夕變)이라더니 이 경우가 딱 그렇다. 글쎄 따로 전을 편다고 손님들이 찾을지 어떨지….

    노 대통령은 과거 은근슬쩍 개혁신당 창당을 독려했을 때를 지금 어떤 심정으로 돌아보고 있을까. 지난 25일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과 관련,“당을 나가는 이유가 저 때문이라면 제가 당적 정리를 해드리겠다”고 말했다. 아주 처연하게 들리는 호소였다. 자신을 중심 삼아 성립되었던 정당이 파장 분위기를 보이는 게 자존심 상하겠지만 이제쯤은 미련을 툭툭 털어버릴 일이다. 정치 인심의 무상함이야 충분히 겪고 봐왔을 터다. 노무현 시대를 의미 있게 마무리하기에도 힘겨울 시점이다. 자꾸 정치권 쪽을 넘겨다 봐봐야 마음 상할 일만 생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개헌도 정치권이나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겨주는 게 옳다. 해가 이미 너무 기울었다. 밝은 날에나 할 수 있는 일을 해거름에 굳이 해야 할 까닭이 있겠는가.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회담할 때 개헌 문제를 의제에서 제외하기로 어제 실무 접촉에서 일단 합의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다행스럽고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