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시각'란에 이 신문 조용 편집국 부국장이 쓴 <아듀, '매스 386'>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데하며 소개합니다.

    1980년 신군부는 이른바 ‘7·30 교육개혁 조치’를 통해 대학 졸업정원제 실시를 전격 발표했다. 그로 인해 81학년도 대학입시에선 사상 유례없는 대혼란이 빚어졌다. 서울대 전학과를 비롯해 상위권 대학들에 일제히 미달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라는 졸정제 취지에 따라 대입 정원이 전년도 20만6000여명에서 30만7000여명으로 50%(서울 주요대는 100%) 가까이 늘어난데다 향후 중도탈락 가능성을 우려한 응시생들이 대거 하향 지원했기 때문이다. 340점 만점의 학력고사에서 180점을 받고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학생이 전국민으로부터 ‘부러움 반, 걱정 반’의 대상이 된 것도 바로 그해였다.

    386의 맏형 격인 81학번은 이런 ‘엽기 코미디’같은 과정을 거쳐 캠퍼스에 첫발을 디뎠다. 한창 예민한 감수성의 시기, 이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 기성체제 전반에 대한 불신과 함께 경쟁 자체를 비웃는 ‘평등코드’가 각인된 첫 계기였다.

    5월 광주를 유혈 진압한 뒤 5공 출범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던 신군부가 졸정제 카드를 꺼내든 속셈은 뻔했다. 면학 분위기 조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의 ‘생존경쟁’을 부추겨 정권 안보의 최대 위협요인인 대학가 시위를 억제하려는 꼼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 알다시피 이 졸정제 꼼수는 완전 실패로 끝났다. 목숨 건 민주화 투쟁으로 성적이 떨어진 운동권 친구들이 눈에 밟혀 일반 학생들도 도서관에 맘 편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강의에 착실히 출석하는 학생은 ‘배신자’취급을 받기 십상이었다. 졸정제는 정권의 의도대로 학원을 ‘분할통치’해주기는커녕 일반 학생들까지 반정부 시위대로 결속시켰다. 그래도 불행중 다행으로 경제가 잘 굴러가 취직은 비교적 잘 됐다. 이전 세대나 이후 세대처럼 악착같이 공부할 필요가 없었고, 그런 시대분위기도 아니었다. 5공의 졸정제가 양산한 386이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하며 5공 종식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월이 흘러 386이 권력핵심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권때 한자릿수, 김대중 정권때 두자릿수로 참여폭을 넓히더니 노무현 정권에 와선 ‘386정권’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주체세력으로 부상했다. 386이 단시일내에 다른 세대들을 제치고 이처럼 막강 파워를 행사해온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시쳇말로 똘똘 뭉친 ‘쪽수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엄혹한 시절을 함께 이겨냈다는 이들의 유별난 동지의식이 정치적 괴력을 발휘한 셈이다.

    이처럼 잘나가던 386이 지금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노 정권 국정난맥 책임의 상당 부분을 짊어진 채 ‘능력도 없으면서 싸가지까지 없는 집단’이란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학창 시절 공부를 게을리한 여파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지적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마치 다른 모든 세대가 ‘386 때리기’에 소매를 걷어붙인 형국이다. 물론 한순간에 ‘공신’에서 ‘역적’으로 전락한 듯한 상황변화에 386도 억울한 감정이 왜 없겠는가. 권력 주변의 일부 386 때문에 전체 386이 도매금으로 매도 당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청와대내 일부 386처럼 네탓 타령만 하는 것은 국민의 분노 그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우선 386은 한때 자신들의 전성시대를 만들어줬던 ‘집단불패 신화’가 깨졌다는 사실부터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집단의 논리로 개인의 무능을 덮어주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더 늦기 전에 ‘매스(mass) 386’에서 ‘퍼스널(personal) 386’으로 변신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