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교수 반론> 1987년체제이후 우리사회 자정능력 충분
  • 한국의 국가이념은 반공자유민주주의?

    필자는 장래 한국에서 실현되어야 할 온전한 자유민주주의상(像)을 제시하기 위하여 「보수는 반공(反共), 진보는 종북(從北 )버려야」라는 제목으로 8월 13일자 『문화일보』에 인터뷰를 행한 일이 있다. 거기에서 필자가 제시한 한국민주주의에 관한 소견은 다음과 같다.

  • ▲ 안병직 교수.
    ▲ 안병직 교수.

     첫째 1987년 이전에는 여러 가지 조건의 미비로 한국에서 온전한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었으나, 그 이후에는 경제발전의 성공과 세계정세의 변화 등으로 온전한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것, 둘째 장래 한국에서 온전한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보수는 반공주의(反共主義)를, 진보는 종북주의(從北主義)를 각각 극복(克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나의 견해에 대하여 조갑제닷컴 대표 조갑제 씨가 반론을 제기해왔다.

    반론의 요지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출발부터 온전한 것이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그 본질에 있어서 반공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출발부터 지금까지 반공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조씨의 이러한 주장은 일견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조씨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필자가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는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일어났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과연 자유민주주의라고 해서 그 성격에 있어서 질적인 변화가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아무래도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사회의 질적 발전에 따라서 그 성격을 달리해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1948년 건국 이후의 한국사회는 1987년의 민주화를 고비로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사적(經濟史的인) 측면에서 보면, 그 이전은 저개발단계를 포함하는 경제개발체제의 단계이고, 그 이후는 시장경제체제의 단계이다. 정치사적(政治史的)인 측면에서 보면, 그 이전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의하여 왜곡(歪曲)된 자유민주주의 단계이고, 그 이후는 기본적으로 온전한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단계이다.

    1987년 이전에 한국에서 온전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었던 이유는, 첫째 경제발전의 수준이 저개발단계나 경제개발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실현의 기본조건인 중산층의 형성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동서 간의 냉전체제와 남북분단으로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7년 이전의 단계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공산주의의 도전으로부터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조건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크게 의존했다는 사실은 한국자유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고 천명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제약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자기모순(自己矛盾)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하여 이중적(二重的)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반공주의와 권위주의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육성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그 실현조건이 전혀 갖추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선진국으로부터 갑자기 수입된 것이다. 그러므로 1948년의 제헌헌법에서 구현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비록 그것이 법률적으로 한국의 기본적 정치체제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장래에 달성되어야 할 목표로서의 정치이념에 불과했지 이미 실현된 현실적 정치체제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장래에 달성되어야 할 목표로서의 정치이념이 현실적 정치체제로 진화(進化)해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외부의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내부로부터 육성해줄 다른 정치이념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였던 것이다.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시기의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는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필수부가결(必須不可缺)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반공주의와 권위주의가 한국자유민주주의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다른 편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의하여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국은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을 제정·시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공산주의 세력이 폭력으로써 국가를 전복하는 행위만 처벌대상으로 했던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 이론에 관한 학습도 금지했던 것이며 더 나아가 심지어 온전한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을 요구하는 야당과 국민의 정치적 활동까지도 탄압하였다. 이러한 금지와 탄압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대가(代價)라고 한다면 그러한 측면이 있기도 했지만, 금지와 탄압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금지와 탄압이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권위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경제개발체제는 산업의 포육적(哺育的) 육성을 위하여 특혜적(特惠的) 자원배분을 행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 때문에 삼선개헌(三選改憲)이니 유신체제(維新體制)니 하는 반자유주의적 체제하에서 자유를 구속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공주의와 권위주의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육성했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제약했다는 사실마저 부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19학생의거 이후 꾸준히 지속되어 온 민주화 운동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 아닌가.
     
    1987년의 민주화 이후에는 국내외의 정세가 크게 변하였다. 국내적으로는 그간에 경제발전에 성공했기 때문에 중산층이 크게 성장하고 난공불락의 시장경제체제가 굳건히 자리잡아왔다. 세계적으로는 구(舊)공산권국가들이 붕괴되고 이제 더 이상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경쟁할 수 있는 사회체제가 아님이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북한은, 1995년 이후의 대량아사(大量餓死)로 국가 자체가 붕괴되고, 헤겔의 『역사철학』에서나 있음직한 동양적 전제주의의 극악(極惡)한 형태의 국가임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마침 대한민국이 일찍이 제헌헌법으로부터 구축된 형식적 자유민주주의체제와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온전한 자유민주주의국가로 향한 거보(巨步)를 내디딜 수 있었던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더 이상 반공주의나 권위주의 같은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극복하기 위하여 4․19학생의거 이후 지속적으로 투쟁해왔던 민주화 운동을 상기한다면, 왜 이제 더 이상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이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의 도움 없이도 더욱 힘차게 보다 나은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김영삼 정권하에서 군부세력을 정권에서 영원히 추방하였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과감한 4대 구조조정정책으로 시장경제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 보수와 진보간의 두 번의 정권교체로 한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치체제로서 제대로 정착되었다는 국제적 평가도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그 피비린내 나는 민주화 운동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미촛불시위, 광우병파동 및 천안함 음모론 등과 같은 엄청난 도전을 아직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권위주의적 폭압기구를 동원하지 않고도 시민운동의 자정능력을 가지고 이를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하여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다시 무덤에서 일으켜 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갑제 씨는 '한국의 국가이념은 반공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과연 조갑제 씨는 이미 무덤으로 들어간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가. 한 때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동정적이었고 기자로서 정세파악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조씨가 그러한 시대역행적 주장을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조씨가 지금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공이란 과연 어떤 내용의 것인가. 조씨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에서 반공은 이러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민족반역세력에 대한 반대, 둘째 전체주의세력에 대한 반대, 셋째 반(反)시장주의세력에 대한 반대, 넷째 반(反)민주세력에 대한 반대, 다섯째, 반(反)법치세력에 대한 반대, 여섯째 악(惡)에 대한 반대'. 조씨가 주장하는 반공의 의미가 위와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왜 반공을 해야 하는가를 이해할 사람이 있겠는가.
    조씨는 반공주의가 보편적인 윤리가 아니고 특정의 사상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린 모양이다. 위의 여섯 가지의 반대를 위하여 왜 꼭 반공주의가 필요한가. 민주사회의 건전한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조씨가 반대하고자 하는 것을 반대할 것이다. 요컨대 조씨가 주장하고자 하는 반공주의는 사상적(思想的)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필자가 제시하고자 했던 미래한국의 자유민주주의상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현재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한 고도산업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 있어서는 공산주의혁명을 포함하는 체제변혁을 노리는 모든 혁명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대체할만한 체제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선진국적 체제로서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유일하다. 북한은 현재 국가체제 자체가 붕괴되어 국가로서의 존립마저 위태롭다. 북한의 하드랜딩이 대한민국에 대하여 엄청난 교란요인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체제도전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도전은 내부(內部)에 있다.

    현재 한국에는 철 지난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세력과 과거의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의 향수(鄕愁)에 젖어서 변화해가는 시대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선진적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확립에 저항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그래서 현재 한국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사회통합'이나 '국민통합'이 시대적 과제로 등장한 까닭이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면, 보수와 진보가 대한민국과 자유주의를 공통의 기반으로 경쟁․협력할 수 있는 사회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과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공존할 수 있는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오늘날 아무런 내용도 없는 반공주의를 가지고 국민을 적과 동지로 분열시키는 일이라든지, 종북주의로 대한민국의 전복을 노리는 것은 한갓된 꿈일 뿐이다.

    조갑제 씨는 그간 한국현대사의 연구에 있어서 적지 않은 공로를 세웠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을 밝히는데 혼신의 노력을 해왔다. 필자도 이 점은 높이 산다. 그러나 연구주제가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조씨의 한국반공주의에 대한 견해는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한국반공주의의 공헌(貢獻)과 한계(限界)를 제대로 구분해 보지도 못하고, 현재 한국반공주의가 이미 무의미해졌음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
    조씨는 자신이 제시한 반공주의의 여섯 가지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정말 그 여섯 가지의 반대는 반공주의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인가. 조씨 스스로가 반공주의 존재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있음을 직시(直視)하라.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아래는, 조갑제 기자가 안병직 교수의 문화일보 인터뷰를 비판한 글(9월11일,조갑제닷컴 게재) 全文이다.

      '보수는 反共을 버려야 한다'는 안병직씨의 주장은 틀렸다!   
      반공주의만으로도, 자유민주주의만으로도 안 된다.
    '反共자유민주주의'라야 자유와 번영을 지킬 수 있다.
    反共을 버린 保守는 시체로 남을 것이다.
     
     

  • ▲ 안병직 교수.

    趙甲濟  
      
      지난 8월 문화일보는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시대정신)를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는데 제목이“보수는 反共, 진보는 從北 버려야”였다. 이런 대목이 있었다.
     
      [―한국의 보수주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에는 1960, 1970년대만 해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보수주의는 없었습니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동양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비합리적이고 유교적인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죠. 유교라는 것 자체가 지배계층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던 도구니까. 보수주의는 그렇게 변질된 채 내려왔죠.”
      안 이사장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가 탄생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 그 뒤로도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극히 최근에 와서야 보수주의의 사회적 책임이라든가 하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게 안 이사장의 주장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한국의 헌법적 이념으로 정착되기까지는 기복이 많았지만 뚜렷한 역사적 흐름이 있었다. 서구적 가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改化 운동, 人權과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알린 기독교의 확산, 自主와 독립을 지향한 抗日독립운동, 李承晩이 주도한, 자유민주주의를 국가이념으로 한 헌법제정과 建國, 자유민주주의가 기능하도록 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개혁(농지개혁, 교육확충 등), 공산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낸 6.25 전쟁, 자유와 번영을 지키는 울타리로서 韓美동맹 건설, 朴正熙 영도하의 산업화와 한국적 민주주의의 실험, 학생 지식인 중심의 민주화 운동이 중산층으로 확산되는 과정, 1980년대 全斗煥의 개방정책, 6월 사태와 6.29 선언, 직선제 개헌에 의한 노태우 정부의 출범, 서울올림픽의 성공과 한국사회의 선진화, 2代에 걸친 좌파정권의 등장과 보수세력의 반격, 그리고 李明博 중도정권의 등장. 100년이 넘는 모색과 실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형식과 내용을 갖추어가고 있는 과정이다. 한국의 보수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는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생산과 건설에 성공한 정치이념이다.
     
      안병직씨는 한국 보수주의가 갖는 이런 역사성을 무시하고 ‘한국에는 1960, 1970년대만 해도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보수주의는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건설되는 과정에 대한 沒이해이다. 한국 보수주의의 大人物인 李承晩 대통령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이 정도로 기능하도록 물질적, 제도적 바탕을 만든 朴正熙도 안병직씨 눈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인가?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었는데 어떻게 이 정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였는가?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가 탄생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고 했는데 이들이 1960, 70년대의 한국을 건설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란 이야기가 된다.
     
      그는 반공주의를 버린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주의자를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1950년, 60년대에 그런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들’이 한국을 통치하였더라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있었을까? 민주주의가 기능할 수 있는 중산층, 제도, 경제력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려 하였더라면 한국은 공산화되었거나, 필리핀이나 파키스탄처럼 되었을 것이다. 李承晩, 朴正熙의 위대성은 민주주의의 이상뿐 아니라 한계를 잘 알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국가를 지키는 것이 과잉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朴正熙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한국에 그대로 옮겨 심으면 나무도 죽고 밭도 버린다”고 확신하였다. 張勉 정부의 실패는 그 좋은 사례였다.
      李承晩은 29세 때 벌써 "자유를 바탕으로 나라를 세우면 富國强兵한다"고 갈파하였던 이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가장 먼저 공산주의를 비판하였고, 한국인으로서 가장 확실하게 자유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통찰하였던 위인이다. 李 대통령은, 무리가 있더라도 민주주의 하는 방식을 국민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戰時임에도 그는 언론검열을 하지 않았고,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으며, 최대 규모의 선거를 실시하였다. 戰時하의 통화개혁을 할 때도 개인 예금 동결에 반대하였다.
     
      朴正熙는 민주주의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였으나, “민주주의는 하느님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한국의 현실에 맞게 변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민주주의의 경험이 10년 남짓한 나라에 수백 년간 성숙된 서구식 민주주의를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당세력을 ‘가식적 민주주의’ ‘사대적 민주주의’라고 비판하였고 자신의 주체적인 모색을 '민족적 민주주의',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옹호하였다.
     
      앞으로 역사는 李承晩, 朴正熙를 한국 민주주의의 2大 건설자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야당과 학생 및 지식인들이 외친 민주주의는 두 대통령이 독재화의 길을 가는 것을 견제한 공이 있으나 그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한 이들일 뿐 실천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은 1965년 이후이다. 한국에서는 建國 당시부터 모든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政變이 몇 차례 있었지만 있어야 할 선거가 중단된 적도 없었다. 자유민주주의의 3대 조건인 선거의 자유, 언론자유, 私有재산권에 대한 본질적인 제한이 있었던 기간도 매우 짧았다.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1948년 이후 한번도 중단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이다. 서구의 선진 민주주의를 평가기준으로 한다면 지금도 한국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가 없다. 한국식 기준으로 평가한다면(이게 현실적이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 즉 현실과 사실을 기초로 하여 最善의 길을 모색하였던(實事求是)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과 자유가 가능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동양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비합리적이고 유교적인 성격을 다분히 띠고 있었죠’라는 안병직씨의 말도 사실과 너무나 다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서구적인 이념에 기초한 것이다. 李承晩은 동양적 교양을 바탕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소화한 사람이다. 朴正熙는 국가주의적인 성향에다가 미국식 조직경영술을 더하여 國政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였던 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낡은 동양적 전통과 주자학적인 前근대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이념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李承晩, 朴正熙였고,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자유민주주의 세력)이었다. 나쁜 동양적 전통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것은 김정일 정권이다.
     
      안병직씨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6·25전쟁 때문에 한국의 보수주의가 색깔론으로 뒤덮이게 됐습니다. 한국의 보수는 대부분 반공주의를 앞세우는 게 문제예요. 반공주의가 보수주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북한과 내통하고 협력하는 종북(從北)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사상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유주의 속에 모든 사상을 다 포용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상의 자유가 없으면 한국 사회는 선진화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길입니다.”
     
      한국이 사상의 자유가 없는 나라이고 그 책임은 반공적인 보수주의자에 있다고 보는 안씨의 생각은 틀렸다. 반공이 자유를 무리하게 제한하였던 시절은 갔다. 그는, 사라진 반공주의자들을 마치 지금도 활동중인 것처럼 간주하여 그들 때문에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처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보수주의가 가진 반공성을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측면에선 반공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북한과 내통하고 협력하는 종북(從北)주의를 제외한 다양한 사상을 존중해야 합니다’라는 안병직씨의 말은 맞다. 종북(從北)주의를 公的 領域에서 배제하자는 것이 反共이다. 안병직씨도 그런 면에서 반공적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거의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지금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버려야 할 反共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를 완벽하게(실질적인 면에선 미국과 유럽보다 더 많이) 보장하고 있는 한국에서 反共을 버리란 말은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한국의 反共은 사상의 자유는 인정하되 그 사상이 행동으로 나타나 공동체를 위협할 때 제재하는 정도이다. 이 정도의 반공적 자세도 버리라는 것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敵 앞에 무방비 상태로 드러내라는 말이 된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反共이란 방패와 울타리가 없으면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을 허용, 체제가 죽게 되어 있다. 반공은 生과 死의 문제이다.
     
      한국의 국가이념은 反共자유민주주의이다. 反共을 하되 자유민주적으로 해야 하며(즉 法治주의에 의하여), 자유민주주의를 하되 공산주의를 배제하여야 한다.
      안병직씨는 “보수는 반공을 버리고, 진보는 從北性을 버려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균형감각이 없는, 위험한 兩非論이다. 그가 말한 진보는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 親北세력이 중심이 된 좌익세력이다. 이들이 버려야 할 것은 從北性이란 말은 맞지만 보수가 버려야 할 것은 反共이 아니다. 反헌법적이고 反국가적이며 反역사적인 자칭 진보세력과 대한민국 정통 세력인 보수세력을 同格으로 놓고 兩非論을 펴는 것은 형사와 살인범을 同等하게 놓고 충고하는 것과 같은 불균형이다.
      안씨는 "사회운동을 해도 대한민국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옳다. 그런데 보수주의가 반공적 자세를 버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이 토대를 허무는 일이다.
     
      한국에서 반공은 이런 의미를 갖는다.
     
      1. 민족반역세력에 대한 반대
      2.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반대
      3. 反시장주의 세력에 대한 반대
      4. 反민주세력에 대한 반대
      5. 反법치 세력에 대한 반대
      6. 惡에 대한 반대
     
      자유와 민주를 지켜주는 反共태세를 버리면 한국의 어린 자유민주주의는 敵前 무장해제 된다. 한국은 통일 후에도 反共태세를 버려선 안 된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공산당의 不法化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라. 西獨의 자유민주세력이 反共을 포기하였더라면 공산세력의 내부 분열 공작에 걸려 東獨을 흡수통일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공산주의자들과 나치주의자들의 공무원 임용을 금지시킨 것은 '전투적 자유민주주의'라야 공산주의에 이길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東獨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적이 없지만 서독의 체제수호 제도는 한국보다 훨씬 엄격하였다.
     
      공산주의는 惡의 세력이다. 그 惡의 세력이 자유민주체제를 죽이려 하는데 거기에 반대하지 말라고 한다면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한국에서 反共과 자유는 같이 가야 서로가 산다. 反共을 버리면 자유도 버리게 된다. 惡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惡의 편에 서게 된다. 반공주의만으로도, 자유민주주의만으로도 안 된다. 反共자유민주주의라야 자유와 번영을 지킬 수 있다. 反共을 버린 保守는 시체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