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좌파로 재편된 더민주와 달리, 호남 농민 의식하는 국민의당 長考역대 의결 사례는 5건… 靑,예외없이 받아들였지만 정치적 후폭풍 야기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23일 오전 국회본청에서 의원총회에 앞서 굳은 표정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이 23일 오전 국회본청에서 의원총회에 앞서 굳은 표정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이 기습 제출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해임건의안 탓에 국회가 짙은 전운에 휩싸였다. 새누리당은 김재수 장관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농정과 농민을 위해 결연히 맞서겠다고 전의를 다지는 분위기다.

    김재수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채 끝나기 전부터 해임건의안 제출을 운운하던 더민주는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면 (추석 연휴 기간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의) 방미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반발하자, 이러한 방침을 철회하는 척 하다가 방미가 마무리된 이후 다시 꺼내들었다.

    갑작스런 해임건의안 제출의 정치적 배경에는 △어버이연합 국회 청문회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기간 연장 등 다른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정쟁을 위한 하나의 카드'로 한 나라의 각료 자리를 쥐고 흔들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아직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만일 야3당이 힘을 합친다면 해임건의안 표결 처리를 막을 길이 없는 새누리당은 23일 오전 일찍부터 의원총회를 열고 전의를 다지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대풍(大豊)으로 쌀값이 폭락해 농민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다"며 "이 엄중한 상황에서 농림장관을 흔들면 커다란 농정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이 싸움은 농정을 지키기 위한, 농민을 위한 싸움"이라며 "오늘밤 12시까지 한 분도 빠짐없이 국회를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처럼 농정 공백이 불보듯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더민주가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카드를 가볍게 꺼내들 수 있는 배경에는 4·13 총선을 통해 변질된 더민주의 성격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친노·친문패권세력 중에서도 특히 강남좌파 성향의 '금수저'들이 대거 원내에 진입하면서, '민주당'을 전통적으로 지지해왔던 호남과 농민은 안중에도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추곡수매를 둘러싸고 이미 호남에서는 농심(農心)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 농식품부장관이 해임되면 부처가 발언력을 잃게 돼 총리실·기재부와의 협상력이 약화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 곡창 지대인 호남의 농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데, 친노·친문패권세력이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남좌파 성향의 '금수저'들이 주축인 더민주가 '흙수저' 출신인 김재수 장관과 상극(相剋)이라는 점도 거론된다. 김재수 장관은 군(郡) 지역인 경북 영양 출신으로 지방대를 나왔다. 33년 공직과 5년 간의 공기업 사장 생활을 했음에도 재산이 9억 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 박명재 사무총장도 이날 의원총회에서 이 점을 에둘러 지적했다.

    김재수 장관(행시21)의 관료 선배인 김광림 정책위의장(행시14)은 이날 "과천에서 오랫동안 같이 생활한 분 중에 나같이 여당에 온 분도 있고, 장관을 지낸 뒤 야당에 간 분도 있다"며 "김재수 (농식품부장관)가 문제가 있다고 하면, 과천 생활한 사람 중에 한 사람도 장관할 사람 없다"고 단언했다.

    김광림 의장은 김재수 장관을 가리켜 "30년 넘는 공직 생활을 하면서 10억 원이 안 되는 재산을 모았다"며 "추석 연휴에도 경주에서 지진이 나자 (농업용수를 대는) 저수지의 둑이 무너질까봐 현장에 가장 먼저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능력 면이나 재산 관리 면에서 다 해명이 돼서 청문회에서 깨끗이 끝이 났고, 효자라고도 소문이 났다"며 "김재수라는 사람이 안 된다면 공직자 중에서 누가 이 (장관) 자리에 앉을 수 있겠나"라고 개탄했다.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제출한 김재수 농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을 비판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제출한 김재수 농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을 비판하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강남좌파 성향의 '금수저' 일색인 더민주와는 달리, 전통적으로 지난 60년 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왔던 중산층의 서민의 지지를 안고 있고, 호남의 농심을 보살펴야 할 정통성이 있는 국민의당이 김재수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앞에 놓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못함에 따라 "자정까지 국회를 지키자"는 정진석 원내대표의 공언대로 23일 하루 종일 국회는 자욱한 전운 속에 쌓여있을 전망이다. 국민의당은 이날 오후 5시에나 의총 소집을 예고한 상황이다.

    한편 장관(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총 81회 제출됐으며, 그 중 국회에서 의결이 이뤄진 사례는 5회다. 모두 커다란 정치적 후폭풍을 야기한 바 있다.

    1969년 권오병 문교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사태는 이른바 '공화당 4·8 항명 파동'이라 불린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의도에 반발한 공화당 소장파 의원들이 '반란표'를 던진 까닭에 의결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해임건의안 가결 직후 공화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려들여 "반당분자들을 제명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이 때문에 예춘호 의원 등 소장파 국회의원 5인이 공화당에서 제명되는 사태로 번졌다.

    1971년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사태는 더욱 심각한 후폭풍을 낳았다. 공화당 10·2 항명 사태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공화당 김성곤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4인방' 지도체제가 몰락했다. 이후 여권 내부의 권력 지형은 완전히 재편되는 중대 정치 사태로 이어졌다.

    2001년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사태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내각제 약속 파기 이후 위태롭게 이어지던 민주당과 자민련의 연립정권을 붕괴시켰다.

    직전해인 2000년 총선에서 당세(黨勢)가 위축돼 민주당 의원 4명을 '의원 꿔주기'로 빌려서 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자민련은 임동원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사태의 후폭풍으로 빌린 의원들이 민주당으로 '원대복귀'하자 교섭단체 지위를 잃고 군소정당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이들을 돌려받은 민주당 또한 연립정권 붕괴로 원내 안정의석을 상실함에 따라 함께 국정주도력을 잃었으며, 거야(巨野) 한나라당이 이후 의회를 주도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2003년 김두관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사태는 이듬해 3·12 노무현 탄핵 의거(義擧)의 전주곡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임건의안은 법문상으로는 국회가 대통령에게 장관의 해임을 '건의'하는 형식으로 돼 있지만, 지금까지 헌정 이래 단 한 차례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없어 사실상 헌법관습법적인 강제력을 획득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지금부터 대통령의 권한이 더욱 막강했던 제3공화국 시절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권오병 장관, 1971년 오치성 장관을 해임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헌법을 무시하고 폄훼하기를 일삼았던 노무현 대통령조차 2003년 김두관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서슬 퍼렇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오치성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의결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격노하면서도 장관을 해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김재수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가결되면 박근혜 대통령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에 따른 농정 공백과 호남, 농민의 분노는 더불어민주당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