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대표 위임 범위에 없는 당연직 최고위원인데… 호남 홀대?
  • ▲ 국민의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당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확대기획조정회의에 참석해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국민의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마포구 당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확대기획조정회의에 참석해 있다(자료사진).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국민의당이 전날 중앙당 창당에 이어 3일 첫 최고위원회의를 열었지만, 첫날부터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노출했다. 정책정당을 다짐하면서도 정작 당헌에 의해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명시된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최고위에 불참하는 절름발이와 같은 모양새로 출발한 것이다.

    국민의당은 3일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첫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전날 창당대회에서 공동대표로 추대된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 최고위원으로 호명된 주승용 원내대표, 박주선·김성식·박주현 최고위원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정치혁신을 외치며 민생실용·정책정당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대표는 "오늘부터 삶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듣고 진짜 정치의 길을 찾겠다"며 "국민 속에 답이 있고, 삶의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답을 찾는 것이 정치의 본래 임무"라며 "국민이 가려운 곳을 찾아서 해결하는 게 정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정배 대표도 "우리 국민의당은 국민의 삶만을, 국민의 민생만을 걱정하는 수권 정당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며 "목소리 내는 것조차 힘든 여러 서민들과 청년들의 따뜻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이념 정치를 청산하고, 국민 실생활을 단 1보(一步)라도 전진시키는 민생실용 정당으로 뿌리내려야 한다"며 "국민의당과 함께 한국 정치는 더욱 생산적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러한 생산적인 정치의 다짐, 민생실용 비전의 천명을 실천하려면 정책적 역량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말이야 누군들 못하겠는가. '말의 성찬'으로만 끝나고 말았던 것이 대표적인 구(舊) 정치의 행태다.

    이 때문에 국민의당은 1일 중앙위원회의와 2일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정책위의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는 당헌을 의결했다. 정책위의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는 것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에는 없었던 사례로, 정책위의장의 위상과 독립성을 한껏 높여주는 '담대한 변화'로 주목돼 왔다.

    새누리당은 원내대표를 선출할 때 정책위의장을 러닝메이트로 삼아 2인 1조로 출마하게 해 선출직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하지만, 파트너인 원내대표와 달리 정책위의장은 당연직 최고위원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위의장이 원내대표와 진퇴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적 연속성이 단절될 때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술 더 떠 정책위의장을 당대표가 임명하는 임명직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비주류 최재천 전 정책위의장을 찍어내다시피 하고, 주류 이목희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내리꽂았다. 형식은 최재천 의장의 사의 표명이었지만, 일말의 만류도 하지 않고 당일로 바로 사표 수리를 함으로써 사실상 경질을 한 것이다.

    이후 신임 정책위의장이 된 이목희 의원은 이종걸 원내대표와 장단을 맞추지 않으면서, 이종걸 원내대표가 최고위에 불참할 때 대신 들어가 원내 보고를 하는 등 황당한 모습을 보여왔다.

  • ▲ 국민의당이 3일 중앙당 창당 이후 첫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 최고위원회의에 당헌상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규정돼 있는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민의당이 3일 중앙당 창당 이후 첫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 최고위원회의에 당헌상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규정돼 있는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이러한 기존 양당의 정책위의장의 위상을 살펴볼 때, 국민의당이 당헌 제33조 2항 5호에서 정책위의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정한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다. 그런데 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렸던 중앙당 창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으로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호명되지 않았다.

    창당대회가 끝난 직후 취재진과 만난 주승용 원내대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주승용 원내대표는 "왜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호명되지 않고)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며 "한 번 알아봐야겠다"고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3일 당사에서 취재진과 만난 문병호 의원은 전날 창당대회에서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최고위원으로 호명되지 않고 단상으로 올라오지 못한 것에 대해 "정책위의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는 게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사회자의 실수"였다며 "장병완 의원은 당연직 최고위원이 맞다"고 확인해줬다.

    그런데 이날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도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배석하지 못한 것이다. 본인 사정으로 나오지 못한 것도 아니고, 분명히 당사에 머물고 있는데도 최고위원회의가 열린 대회의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최고위원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직후, 당사에서 취재진을 만난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오늘은 지명받은 사람들끼리만 최고위원회의를 하겠다더라"고 말했다. 당연직 최고위원이라는 신분에는 변동이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거야 뭐…"라고 말을 흐렸다.

    불과 이틀 전에 중앙위에서 의결되고 전날에 창당대회에서 확정된 당헌에 따라,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신분을 부여받은 정책위의장이 최고위원회의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러한 황당한 사태는 왜 발생했을까.

    국민의당 관계자는 "말하기 조금 민감한 문제이지만, 계파와 지역별 안배 때문일 수 있다"며 "장병완 정책위의장이 들어가면 호남 출신 탈당파 의원들이 최고위 내에 너무 많아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현재 최고위원회의는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 박주선·김성식·박주현 최고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천정배 공동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 박주선 최고위원은 모두 호남이 지역구인 탈당파 의원이다. 박주현 최고위원도 전라북도 군산 출신이다.

    여기에 장병완 정책위의장까지 최고위에 배석하면, 전체 7명의 최고위원 중 호남 탈당파 의원이 4명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또 호남 출신이 5명으로 너무 많아지지 않느냐는 우려가 제기됐다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당헌에 따른 당연직 최고위원인 장병완 정책위의장의 최고위 참석이 배제됐다면, 이는 황당한 일이다.

    호남 출신이 많다는 이유로 광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당연직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 못 들어간다면,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친노패권주의보다 더한 호남 홀대이고 호남 차별, 호남 무시가 아닐 수 없다.

  • ▲ 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최고위원 등 지도부 호명이 이뤄진 직후, 천정배 공동대표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동안 박주선 최고위원·주승용 원내대표·김한길 선대위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당헌을 살펴보며 토론하고 있다. 뒷줄에 당헌상 당연직 최고위원인데도 호명받지 못한 장병완 정책위의장의 모습이 보인다. ⓒ대전=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최고위원 등 지도부 호명이 이뤄진 직후, 천정배 공동대표가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동안 박주선 최고위원·주승용 원내대표·김한길 선대위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당헌을 살펴보며 토론하고 있다. 뒷줄에 당헌상 당연직 최고위원인데도 호명받지 못한 장병완 정책위의장의 모습이 보인다. ⓒ대전=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계파 안배나 지역 안배보다 더 중요한 게 당의 헌법에 해당하는 당헌(黨憲)을 지키는 일이다. 당헌이 중앙위에서 의결된 것이 불과 이틀, 창당대회에서 의결된 것이 불과 하루인데, 벌써부터 희한한 안배 논리 때문에 당헌이 헌신짝처럼 무시돼서야 이것을 무슨 '새정치'이며 '담대한 변화'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현재 19대 국회의원 중 얼마 전까지 유일무이한 경제부처 장관 출신이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새누리당으로 돌아오면서 유이(唯二)한 존재가 됐지만, 여전히 야권에서는 유일한 존재다.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를 돌며 예산관리·물가관리·기금정책 등을 두루 섭렵한 야권의 대표적 경제정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김대중정부에서 기획예산처 총무과장과 기금정책국장을 역임했고, 경제통이 극도로 빈곤했던 노무현정권에서는 군계일학(群鷄一鶴)과 같은 활약을 펼치며 기획예산처 차관과 장관을 연이어 맡았다. 전남 나주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온 대표적인 호남 출신 경제통이기도 하다. 

    야권의 보석과도 같은 존재인 장병완 정책위의장의 최고위원회의 참석이 기이한 계파 안배·지역 안배 논리에 밀려서는 정책정당으로 가는 첫걸음부터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정책정당을 지향한다는 국민의당답지 않게 디테일한 내용이 없이 메시지가 허공에서 빙빙 맴도는 느낌이었다.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의 모두발언은 마치 대선 출정선언문마냥 디테일한 정책적 대안이 전혀 담겨 있지 않고 추상적인 내용으로 일관했다.

    주승용 원내대표와 박주선 최고위원은 그나마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실정(失政)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디테일한 대안 정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장병완 정책위의장의 빈 자리가 유독 커보였던 첫 최고위원회의였다는 평이다.

    국민의당 최원식 대변인은 "원칙적으로는 당헌에 (정책위의장이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돼 있지만, 지금 선출을 못하고 창당 과정이기 때문에 (최고위원은) 공동대표가 선임하는 과정을 취했다"며 "당헌이 있지만 부칙에 따르면 공동대표에게 광범위하게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직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배제됐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장병완 정책위의장도 공동대표가 그 취지를 살려서 (최고위원으로) 선임을 검토하고 있고, 그래야 한다는 지적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국민의당 당헌 부칙을 살펴보면, 당헌 제33조 1항 2호의 최고위원(선출해야 하는 4인의 최고위원)을 창당대회에서는 공동대표가 지명할 수 있다는 내용은 있지만, 5호의 최고위원(당연직인 정책위의장)까지 그렇다는 내용은 없다.

    또, 중앙위를 공동대표가 추천하거나, 당무위가 구성되기 전까지 공동대표가 당규를 제정·개정할 수 있다는 위임은 존재하지만, 엄연히 당헌에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명시돼 있는 정책위의장을 최고위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위임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국민을 위해, 국민에 의한, 담대한 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의 헌법인 당헌부터 엄밀한 해석을 통해 지켜나가는, 기본이 되는 정치부터 시작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