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워치 박한명 온라인편집국장 특별기고]


    문수 경기지사, 정말 죽을 죄 지었나?

    

  • 김문수 경기지사. 그는 정말 죽을 죄를 지었나? 미디어워치 박한명 온라인편집국장의 변론을 들어본다.ⓒ
    ▲ 김문수 경기지사. 그는 정말 죽을 죄를 지었나? 미디어워치 박한명 온라인편집국장의 변론을 들어본다.ⓒ

    조선일보의 지적처럼 김문수의 죄명은 ‘오버’였다.

    실종자 가족이 요구하는 ‘권한 있는 사고수습 책임자’도 아닌 주제에 나서서 누구보다 현장에 빨리 달려간 것, 비통한 심정에서 쓴 것이라곤 하지만 감히 이 시국에 ‘시’ 따위를 SNS에 올린 것, 정부 당국의 책임자도 아닌 주제에 쓸데없이 현장 책임자 옆에 앉아 함께 실종자, 희생자 가족들 호소에 귀를 기울이다 ‘뉴스타파’의 표적이 된 것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작시로 시작해 뉴스타파까지 연속된 ‘실책’으로 김문수는 17일 그날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졌다. 검색어 1위라면 앞뒤 사정 안 가리고 일단 쓰고 보는 언론이란 이름의 하이에나 떼는 그를 그날 마지막 남은 살점 하나까지 알뜰하게 발라버렸다. 그렇다. 가족들에게 실제로 뭘 해줄 수도 없는 김문수는 쓸데없이 나대지 말고 사무실에 앉아 그냥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따위의 한마디나 올리면 그만이었다. 문재인처럼 “우리의 수준이 부끄럽습니다”라고 끄적이면 될 일이었다.

    실종자, 희생자 가족이 오열하고 국민 모두가 비탄에 빠진 시국, 정치인과 고위 관료 모두가 몸을 바짝 낮춘 세월호 참사 앞에서 오히려 뛰어다닌 김문수의 행보는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이런 상황에선 늘 희생양을 요구했던 게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때마침 김문수는 자작시로 그 희생양이 되길 자초했고,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을 비판하면서 참사에 대처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권의 차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김문수 지사의 일부 발언을 함께 묶어 영상에 담은 건, 지방선거를 앞두고 뉴스타파가 할 수 있는 회심의 ‘한방’이었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비판하는 것은 언론이 쥐기 좋은 명분이고, 그건 과거 MBC 피디수첩의 광우병 방송 따위의 조작, 왜곡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사실보도이니 이보다 더 좋은 소재거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열성 팬과 높은 국민 지지도, 언론의 지지를 가진 박근혜 대통령과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김문수에게 나타난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달랐다.

    필요 이상의, 광기 비슷한 마녀사냥놀음은 그렇게 김문수 단 한 사람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김문수의 자작시가 죽을 죄라고?


    필자는 김문수의 지지자나 열성 팬이 아니다. 다만 자작시와 뉴스타파의 정치공학적 의도가 담긴 영상 뉴스에 흥분한 언론과 일부 국민들의 과도한 비난이,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온당한 것이었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김문수 하나 만신창이 만들어 침몰한 세월호 밑에 깔려 있는 꽃다운 어린 목숨들을 건지고 살릴 수 있다면 나부터 앞장설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잖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금 이 판국에 한가하게 시나 쓰고 있는가”라는 비난도 과도하다.

    참사가 일어난 후 김문수 본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 그 어떤 정치인과 고위 관료보다 앞서서 안산 단원고에 달려가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전남 진도 수습 현장에 내려가서도 구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각종 물품을 지원하고 대책마련에 최선을 다한 사실도 경기도청 홈페이지에 나온 보도자료 내용 팩트 확인만 해도 알 수 있다.

    이렇게 현장을 누빈 김문수의 안타까운 속내가 언론기사나 방송보도로만 아는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클 것이라는 점은 당연한 것 아닌가. 김문수가 현장에서 참사에 웃고 박수를 치기라도 했나, 아니면 즐거워 기쁜 심정으로 자작시를 썼다는 얘긴가.

    김문수가 불타는 로마 시내를 보고 박수쳤다는 네로 황제라도 된다는 얘긴가. 비통한 심정을 그냥 글로 쓰지 않고 시로 썼다는 게 그렇게 죽을죄를 지은 것인가. 그렇다면 임진왜란 중 전장에서 “한산섬 달 밝은 밤에/수루에 홀라 앉아/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는 시를 쓴 이순신 장군은 나라가 망할 위기에 한가하게 자작시나 쓴 역적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전장에서 목숨을 다해 싸운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과 비교하는 것이 가당치 않더라도, 최소한 참사 현장에서 김문수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점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난 그 후 현장을 경험한 그가 본인이 느낀 비통함을 산문이 아닌 시로 썼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해선 안 된다. 산문은 위로고 시는 조롱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산문은 위로고 시는 조롱거리?


    “저는 경기도지사지만, 경기도지사는 경기도 안에서는 좀 영향력이 있는데 여기는 지금 경기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단 해수부장관은 여기에 와서 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발언도 그렇다.

    앞뒤 문맥 설명 없는 뉴스타파 영상만 보고 흥분할 일이 아니다.

    김문수의 이 말은 ‘경기도지사라서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다. 만일 그 뜻이었다면, 누가 가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책임지지도 못할 장소에 가서 ‘내 책임 아니다’ 이말 하려고 혼자 그리 이리 뛰고 저리 뛰었겠나. 책임 있는 발언을 요구한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은 자신이 모든 조치를 취하고 싶어도 경기도지사로서 권한의 한계가 있어 실종자 가족들이 요구하는 대로 해줄 수 없어 안타깝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김문수가 경기도지사로서 그동안 증명한 행정능력이나 인권중심의 사고와 철학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할 수 없다 쳐도, 알고도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선의를 굳이 악의로 해석하고 우기는 건 옳지 않다.

    필자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 사고를 맞아 우왕좌왕하는 정부 당국의 모습이나 이를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 그리고 엄한 정치인 하나 희생양 만들어 마녀사냥이나 해대는 언론의 삼류짓거리를 보면서 또 한 번 한숨만 나온다.

    언론의 사고능력이 무슨 아메바 수준이 아니라면 표면적인 말 하나에 발끈하고 기사를 쓸 게 아니라,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그 발언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논리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김문수의 그 유명한 119 전화 발언도, 따지고 보면 사고와 재난 등 위기상황에서 국민을 구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할 공무원들의 기본 대처 태도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나왔던 해프닝이었다.

    이번 세월호 침몰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의 각종 사고가 원칙과 기준, 매뉴얼도 없이 그때마다 날림공사처럼 임시방편으로 대처하다가 사고를 키웠던 건 사실 아닌가.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달아난 무책임한 세월호 선장을 비난하는 것이 맞는 것이지 하나라도 더 돕고 책임지고 싶어 ‘오바’했던 김문수를 비난하는 건 우리 스스로 못난 국민, 못난 언론임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 국민과 언론이 세월호 선장과 같은 무책임한 종류의 정치인과 일하지 않는 관료를 양산한다.


    생사람 잡는 '뉴스타파'


    김문수의 죄는 너무나 명백하다. 글 하나 적기 전에, 행동에 옮기기 전에,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폭발할 정도로 분노에 떠는 성난 민심을 먼저 생각하지 못한 성급함, 번지르르한 말 한마디로 조용히 끝내고 말 일을 본인이 모든 걸 다 지시할 수 있는 대통령도 아닌데, 굳이 현장에 갔다가 뉴스타파 영상에 표적이 된 점, 남들처럼 대충 눈치도 보고 적당히 하지 못하는 넘치는 책임감을 가진 게 그의 죄다.

    그런 김문수이기에 119 전화 때나 이번 세월호 자작시 논란처럼 툭하면 오해를 사고 언론에 두들겨 맞는다. 이런 일이 자꾸 되풀이되면 김문수는 아마 스스로 먼저 좌절하고 다른 정치인들처럼 퇴색해갈지 모른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려는 정치인, 책임감 강한 일하는 정치인을 이런 식으로 오해하고 사소한 실수에도 용서 못하고 우리 스스로 짓밟는다면 대한민국은 정말로 미래가 없다. 현란한 말발의 사기꾼이 언제든지 국가의 리더가 되기에 딱 좋은 환경을 가진 대한민국, 필자는 그것이 정말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