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는 조선이란 나라에 대해 불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서울의 눈 덮인 아침 등 사랑스러운 풍경을 보면서 그 감정이 조금씩 흥미로움으로 변했고 나중엔 애정으로까지 발전했다."

    19세기 유명한 영국 여행가이자 작가, 지리학자로서 세계 각지를 돌며 인권운동에 헌신했던 이자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 여사가 명저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비숍 여사는 1894년 이래 네 차례나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이 책은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재간행됐다.

    국내외 전문가들에 따르면 비숍 여사는 당시 일본의 회유에 빠져 조선인은 미개해 독립국을 유지할 수 없고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최선이라는 선입견을 품었다.

    비숍 여사는 그러나 굶주림 속에서 한반도를 탈출했던 조선인이 역경을 이겨내고 러시아 연해주에 정착촌을 가꿔가는 걸 보고 나선 조선인의 상부상조 정신과 교육열, 자율성에 감복했고 생각을 바꿨다. 그렇게 조선에 호기심을 갖게 된 비숍 여사는 본격적으로 서울을 비롯해 곳곳의 풍경을 직접 사진으로 남기며 애정을 키웠다.

    19일 재미 민간사학자인 유광언씨는 비숍 여사가 찍은 사진 가운데 한국에 공개된 적 없는 12장을 연합뉴스에 제공했다. 유씨는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에서 사진들을 발견해 구입했다.

    사진들 가운데에는 지금은 콘크리트 빌딩으로 둘러싸인 사직단의 풍경도 있다. 사직단의 높은 홍살문 뒤로 소나무 외에는 전경을 가리는 장애물이 없는 게 인상적이다.

    육조 관아에서 본 경복궁의 모습도 희귀한 사진 자료다. 경복궁의 독특한 기와구조와 당시 관아 배치를 보여줘 역사학적인 가치도 있다.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피신했던 서울 정동 소재 러시아 공사관의 모습도 사진에 담겼다. 비숍 여사는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을 몇 차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조선을 떠나기 전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선물할 고종과 순종의 사진도 러시아 공사관에서 직접 찍었으나 안타깝게도 해당 사진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정동의 외국인 전용호텔인 '손탁호텔'을 방문했던 양반과 여인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다.

    비숍 여사는 금강산을 찾아 금강산 묘길상 마애불을 사진에 담고, "나라의 목에 해당하는 남쪽 국경이요,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와 같다"며 왜적을 경계한 '남요인후 서문쇄약'이라고 새긴 비석이 선 부산진 금루관 등도 렌즈에 담았다.

    유씨는 "비숍 여사가 조선 풍경을 직접 삽화나 사진으로 남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조선인이 정치만 뒷받침된다면 일본인보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