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치는 새~(鳥)정치다
    = 한국 정치의 불편한 진실...

    이  덕  기(자유기고가)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 또는 세력들의 생각과 행동 및 앞으로의 행태 등을 알려면 우리는 그들이 쓰는 언어를 잘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그들의 언어는 포장되어 있고, 뭔가를 가리기 위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의 언어적 가미(加味)와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에 더욱 더 가까이 갈 수가 있다.

      1970년대 이후 줄곧 ‘민주화’를 외치면서 ‘대도무문(大盜無門)’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나
    ‘행동하시는 욕심(慾心)’의 그 외곬 인생은 우리를 끊임없이 감동시켰다.
    근래에 들어서는 대통령이 되시기 전부터 대토목공사로 대한민국의 물길을 터 오신 분도 있는데, 이분은 ‘중도실용(中道實用)’을 내걸었지만, 결국 측근들 때문에 큰 도적으로 몰려 이 땅의 종북좌익세력을 척결할 용기마저 잃어버리는 ‘중도실용(重盜失勇)’의 안타까움을 우리에게 주고 말았다.

      가미된 언어로써 실체적 진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남쪽뿐 아니라 3대에 걸친 세습을 성공적으로 마친 북쪽의 공화국에서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소위 보수언론에서도 ‘태양절(太陽節)’이라고 쓴다. 1912년 4월 15일 조선반도에 태양이 떴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특히 6·25전쟁 63주년을 맞는 현시점에서 과연 태양이 떴는가 반문해 봐야하지 않나.
    한반도에 ‘재앙(災殃)’이 시작된 날이다. 즉 ‘재앙절(災殃節)’이 맞다.

      지난 2000년 소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행동하시는 욕심’께서는 독일 통일의 현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식견있는 지도자다.”라고 전세계에 공표하셨다.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실망했다. 동족 2~300만명을 굶겨 죽인 세습독재자를 ‘식견있는 지도자’라니...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행동하시는 욕심’의 ‘사람보는 눈’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식견(食見)있는 지도자’... 쳐잡수시는 데는 견해가 아주 뚜렷한 지도자. 역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분의 안목은 남 다른데가 있었다.

      얼마전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원인과 해법을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2000년 소위 남북정상회담에서 큰 역할을 하신 ‘존경하옵는 중진 의원님’(소속당의 원내 총무까지 역임하신 분이다)께서는 “북한은 자존심을 중시해 왔는데, 현 정부가 자존심을 훼손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면서 “북한의 체면을 살려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속 정당에서는 ‘젊은 장군’에게 ‘특사(特使)’를 보내야 한다고 열을 냈다.
    전후좌우 정황을 살펴보면 이런 얘기다.
    “무엇을 잘 못했는지 모르지만, 무조건 북한에 빌어라, 그리고 '특사'를 보내서 ‘특별히 사죄’(特謝)해라!”

      이렇듯 북한이 자존심과 체면을 중시해서인지, 3대에 걸친 세습독재자들을 ‘최고 존엄(最高 尊嚴)’이라고 한다. 우리 ‘존경하옵는 의원님’ 중에도 ‘젊은 장군’에게 “예를 갖추라!”고 호통치는 분이 계시다. 그런데 객관적으로는 ‘최고 돈엄(最高 豚嚴)’이 적합하다. 3대에 걸친 외양은 물론이거니와 쳐잡수시는 식성까지 ‘최고 돼지를 엄숙하게 받드는 것’이 맞다. 너무 잘 쳐먹어서 뒈지신, 즉 ‘영~ 생을 마친 돼지’를 ‘영생(永生)’시킨다고 정육점 조명 밑에 썩지 않게 모셔 놓는데 100만 달러가 들고, 유지 보존하는데 연 150만 달러가 든단다. 이제 ‘영~생을 마친 돼지’가 두 분이시니 그 비용도 곱하기 2이다. 지금도 북녘에는 피골상접(皮骨相接)한 인민이 너무도 많다.

      요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안팎을 달구는 쟁점은 단연 북방한계선, 즉 NLL(Northern Limit Line)이다. 그런데 이 뜨거운 쟁점의 틈새에서 끈질기게 관심을 잡아당기려는 것이 ‘새 정치’다.
    대선 판에서 절대 철수하지 않았던 분, 앞으로도 정치판을 결코 안 떠나실 분이 높이 쳐든 깃발이다. 세간에는, 특히 언론계에서는 이 ‘새 정치’의 실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기자들이 잘 모르겠다고 아우성이란다. 하지만 나는 기자 분들의 엄살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다 알고들 계실텐지만, 너무나 뻔한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기자 특유의 제스쳐일 것이다.
    물론 ‘大盜無門’의 길을 걸었던 분이나, ‘행동하시는 욕심’과 동시대에 살지 않았던 이들이야 이해가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데자뷰(deja vu)라는 말을 쓴다. 한자어로는 ‘기시감(旣視感)’라고 한단다. 즉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말하나 보다.
      우리가 ‘大盜無門’의 길을 걸어오신 분에게 1993년쯤 “과연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이루어 졌습니까?”하고 물었다면, 그 분은 분명 “그럼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야!”라고 답을 하셨을 것이고,
    ‘행동하시는 욕심’께서는 “아니야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멀었어!” 이렇게 말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1999년 어느 날 질문을 했다면, ‘욕심’께서도 “그럼, 대한민국은 이제 민주국가야!”라고 단호하게 얘기했을 것이다.  왜? 이 두 분이 추구하셨던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곧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 정치판에서 결코 철수 안하실 분의 ‘새 정치’는 곧 “내가 대통령이 되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걸 기자들은 왜 모르는 지 몰라)

    우리는 “국가 또는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된 개인의 욕심과 허황된 꿈이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나라와 본인에게 모두 장기간 해악이 된 사례”를 너무나 많이 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의 두 분은 예의 끈질김으로 대권을 쟁취하셨다.

    아마도 이런 선례 때문에 절대로 철수 안하실 분도 계속 그 길을 걸어갈 듯한데...
    지난  대선을 지나면서 우리사회의 예언자(?) 같은 시인이 “그는 깡통”이란 돌직구를 날리셨다. ‘깡통’은 머리 속이 비었다는 소리로, 흔히 우리는 ‘새대가리’와 동일시하곤 한다.

    그래서 ‘새 정치’는 ‘새~(鳥)정치가 될 확률이 많다.
    그가 지은 “000의 생각” 이란 책을 보고, 우리 또래(50대 중반 이후)들은 이렇게도 받아들인다. “좋은 집안에서 좋은 머리를 타고 나서 좋은 기회를 잡아 돈푼깨나 모으고 누릴 거 다 누린 젊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대통령이나 한번 해 볼까하는 욕망”에 다름 아니지 않냐고....

      ‘새~(鳥)정치’가 계속 떠야 하는데 그놈의 소위 국정원 대선 개입, 북방한계선-즉 NLL 등등 때문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口開議死堂)’ 안팎이 시끄러우니, 철수 절대 안하실 분은 속이 끓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국정원이 폭로(?)한 소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관련한 기사를 읽어보니 NLL은 ‘Northern Limit Line’이 아니라 ‘Nohmoohyun Limit Line’, 즉 “노무현의 한계를 나타내는 선”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글쎄 ‘미국 말’을 이렇게 써도 되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미국 말’이 태평양까지 건너 동맹국에 와서 고생 많이 한다. 동맹국의 무식(無食)한 놈을 만나서.... 

                                                              - 더 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