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상대 성추행은 고소취소 상관없이 처벌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올해부터 전면 폐지
  • 28일 미성년자 간음 혐의로 피소된 고영욱의 두 번째 공판이 서울서부지방법원 303호에서 열린 가운데, 이미 '소 취하' 된 2건의 간음 사건이 공소 내역에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검찰에 따르면 고영욱은 ▲2010년 여름께 당시 13살이던 여학생 안모씨를 두 차례 간음했고, ▲같은해 가을, 14살의 또 다른 피해자 A씨를 집으로 데려와 간음을 하고 유사성행위를 했다.

    ▲또 같은해 7월 17일 당시 17살이던 피해자 B씨를 집으로 데려와 위력에 의한 성추행을 했고, ▲지난해 12월 1일, 서울 홍은동 거리에서 귀가 중이던 C씨(만 13세)를 승용차 안으로 끌어들여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을 했다.

    지난해 3월 30일과 4월 5일 두 차례, 당시 18세이던 모델 지망생 김모씨와 성관계를 가진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결론적으로 고영욱으로 인해 성추행(간음) 피해를 호소한 피해자는 총 5명이며 이 중에서 한명이 연루된 사건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돼 총 4명이 연루된 사건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그런데 2010년에 피해를 입은 안씨와 A씨는 경찰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 고영욱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현재는 '성년'이 된 피해자 B씨와, 지난해 말 승용차 안에서 성추행을 당한 여중생만이 고영욱에 대한 '처벌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됐었다.

    하지만 14일 검찰이 공개한 공소장에는 안씨와 A씨의 이름이 '피해자 명단'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고영욱에 대한 처벌 의사가 없다고 밝혔음에도 불구, 여전히 이들의 이름이 소장에 포함돼 있는 이유는 뭘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저지른 성범죄는 대부분 '친고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고죄'란 범죄의 피해자나 그 밖의 법률에서 정한 사람이 고소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강간죄, 모욕죄 따위를 일컫는다. 

    나아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에서 예외조항이었던 '반의사불벌 규정'이 삭제됐다는 점도 검찰 측 공소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 됐다.

    기존 법률에선 미성년자를 상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 발생했을시 피해자의 동의가 없으면 공소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예외조항은 거꾸로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이들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효과'를 발휘했다.

    이에 '아청법'상 '반의사불벌' 규정이 가해자에게 '악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를 판결에 반영하는 사례도 늘어갔다.

    대법원 2부는 지난해 9월 열린 선고 공판에서 "모 여고 교장 A씨가 여고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공소사실이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판결은 합당하다"며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보호·감독 권한을 지닌 사람에 의해 강제추행 당한 혐의(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에 대해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끔 돼 있다"며 "성폭행 미수혐의는 인정하되, 소를 취하한 유사성행위에 대해서는 공소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했다하더라도 검사가 아청법 제7조 제5항(아동·청소년을 성폭행 할 경우 징역 3년이상, 강제추행할 경우 징역 1년 또는 500만원이상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근거해 기소한 이상, 유사성행위도 유죄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2012년 11월 22일 친고죄 조항을 전면 삭제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도 이같은 법조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해당 특례법에서 친고죄가 사라지면서 예외조항이었던 '아청법'상 '반의사불벌' 규정도 함께 삭제됐다.

    이에 따라 성폭력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반드시 고소를 하거나 처벌에 동의해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독소조항'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기존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합의'만 하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해진다는 맹점이 있었다.

    이를 악용한 일부 가해자의 경우,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 합의를 시도하는 일이 종종 있어왔다.

    얼마 전 '6년 실형'이 언도된 모 기획사 대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고영욱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2건의 사건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이유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기도 하지만, '모든 성폭력 사건은 친고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성폭력 법률 개정안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물론 해당 개정안이 모든 사건에 소급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앞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원하지 않고, 고소장이 접수가 되지 않아도 수사와 재판이 가능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