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들, 테러자금추적 정보제공 관련 법 등 겨우 ‘걸음마’ 수준…처벌도 ‘미약’
  • ▲ 테러조직 '대쉬(ISIS)'의 선전영상 가운데 한 장면. '대쉬' 출현 이후 국내에서도 '테러방지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대쉬(ISIS) 선전영상 캡쳐
    ▲ 테러조직 '대쉬(ISIS)'의 선전영상 가운데 한 장면. '대쉬' 출현 이후 국내에서도 '테러방지법'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대쉬(ISIS) 선전영상 캡쳐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가 ‘테러방지법’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이노근·이병석·송영근 의원이 각각 발의한 ‘테러방지법’과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정보를 대테러 기관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하자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안’ 등이 그 대상이다.

    언론들 또한 테러조직 ‘대쉬(ISIS)’와 그 추종자들에 의한 파리 연쇄 테러, 러시아 여객기 폭파 테러, 말리 호텔 테러 등을 사례로 들면서 “테러방지법 추진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사회 각층도 “국회가 ‘테러방지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며 요구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이병호 국가정보원장까지 국회를 찾아 여야 대표부에게 “테러방지법 통과를 빨리 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테러방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법안 내용이나 테러의 정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 국회에 소위에서 심의 중이거나 또는 계류 중인 법안들은 20세기형 테러에 맞춘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 세계가 진행 중인 ‘21세기형 테러’를 막는 데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테러’와 ‘독립운동’이 같다고?


    국제정치학에서 ‘테러’란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이를 두고 지금까지 국내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럼, 대한독립이라는 정치적 신념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홍커우 공원에 폭탄을 던진 독립지사들도 다 테러범 아니냐”는 헛소리를 한다.

    엄밀히 말해 20세기 이후 분리주의 독립운동 가운데서도 한국의 항일운동은 독특하게도 ‘테러’의 범주에 속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폭력을 사용한 대상이 일본 제국주의 핵심인물 또는 시설, 군대를 위주로 했고,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증거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에서 ‘테러’를 규정하면서 ‘정치적 목표’를 집어넣은 것은 사실 냉전 이후의 국제사회 질서 때문이다. 대부분의 테러조직이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제사회는 ‘테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했다. 범위를 더욱 확장시켜 ‘특정 이념이나 종교를 명목으로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사용해 공포를 조성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잘 알려진 테러조직 ‘알 카에다’는 물론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테러조직 ‘대쉬(ISIS)’의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방 문명의 멸망과 세계 지배’다. 이들의 ‘적’에는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나라 전체와 대중문화를 즐기는 모든 나라가 포함된다.

    이렇게 ‘테러’의 정의를 다시 내린 뒤에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는 ‘테러방지법’을 보면 뭔가 허전해 보인다. 이유는 9.11 테러 이후 완전히 바뀐 ‘테러와의 전쟁’ 개념을 한국 사회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테러’와 ‘반테러’의 차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美의회는 수천여 명의 관계자와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당시 운영하는 50여 개의 정보기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이후 나온 ‘9.11 테러 보고서’는 미국은 물론 세계 서방국가의 ‘테러대응전략’을 모조리 바꿔 놨다.

    미국은 90년대 초반부터 향후 테러조직이 ‘비국가 요인’으로서 세계 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대응책은 정보기관 내의 ‘대테러 정보센터’를 통해 테러조직의 동향을 살피고, ‘공격’이 임박하면 테러 관련자들의 입국을 막는 등 예방 대응을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런 행태로는 9.11 테러를 막을 수 없었다. CIA와 NSA는 “미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테러 공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높다”는 분석 보고서를 백악관에 올렸지만, 본토 테러에 대응하는 핵심 조직인 FBI가 “글쎄, 난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라고 반박하면서 무시를 당했다.

    美의회가 ‘9.11 테러 보고서’를 만들기 전에 터진 이라크 침공의 경우에도 현지 상황을 잘 아는 CIA 정보 분석가의 주장은 묵살당하고, 美국무부와 이라크 망명정부 간의 ‘이해관계’, 그리고 백악관의 ‘정치적 결단’을 앞세워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 ▲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위키피디아 공개사진-美해군
    ▲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위키피디아 공개사진-美해군

    이런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 뒤 ‘9.11 테러 보고서’를 받아 본 美정부는 이전 60년 동안 정보기관을 통제하던 ‘분리 및 통제(Devide & Control)’의 룰을 바꾼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표적인 정보수입 및 사법집행 기관이 ‘국토안보부(DHS)’와 ‘국가대테러센터(NCTC)’다.

    이 가운데서도 ‘국가대테러센터’는 9.11 테러 이전까지 CIA의 한 부서에 불과했다. 하지만 테러 이후에 NCTC는 별도 기관으로 독립했다.

    NCTC는 국가정보장(DNI) 직속 기관으로 美본토에서의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FBI와 DHS, 해외에서의 테러관련 정보 수집을 맡은 CIA, NSA, 정보수집과 관련한 지원활동을 하는 NRO, NGA 등의 협조를 받는다. DIA, ONI, AFIA와 같은 군 정보기관, DCHC와 같은 군 대테러 첩보 및 집행기관도 마찬가지다.

    특이한 점은 NCTC는 ‘두뇌’가 아니다. 다른 정보기관들의 협조를 얻으면서도 상호 간의 테러 관련 정보 소통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신경 중추(Nerve Center)다.  

    美정부는 이런 NCTC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새로운 개념을 내놨다. 바로 ‘대테러(Counter-Terror)’가 아니라 ‘반테러(Anti-Terror)’다.

    ‘반테러’는 테러조직이 테러행위를 일으킬 때까지 감시하다 대응하는 게 아니라, 테러조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거나 테러조직과 자금세탁, 무기거래, 이념교육 등 ‘비전투적 지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해, 아예 ‘테러의 싹’을 잘라 버리는 전략을 말한다.

    美정부가 처음 ‘반테러’ 개념을 소개했을 때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은 미국이 이 개념에 따라 테러 용의자나 관련자들을 ‘관타나모 수용소’에 무기한 수감하고 심문하는 것을 비판하며 “인권은 개나 줬냐, 너희가 무슨 이스라엘이냐”며 비웃었다.

    하지만 2004년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 테러, 2005년 7월 7일 런던 연쇄 테러 등이 일어난 뒤에는 이들 국가 모두가 미국을 따라 ‘반테러’ 개념을 도입했다.

    2005년 7월 7일 런던 연쇄 테러 이후 영국 MI5를 주축으로 MI6, GCHQ, 경찰 대테러부서(스코틀랜드 야드), 독일의 BND, 이스라엘의 모사드, 미국 CIA와 NSA 등이 참여한 국제 반테러 작전 ‘오버트(Operation Overt)’ 또한 ‘반테러’ 개념을 적극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후 ‘오버트’ 작전에 참여한 국가들에서는 여러 건의 대규모 연쇄 테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영국 경찰청이 발표한 내용만 봐도 ‘오버트’ 작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영국 경찰에 따르면 ‘오버트’ 작전팀은 1년 동안 2만 6,000여 명의 입국자를 조사했고, 102곳의 거주지와 시설 등을 압수수색했으며, 226곳의 인터넷 카페를 압수수색하고 80대의 PC 등 IT 기기, 1만 5,000 장의 CD, 500개의 플로피 디스크 등을 압수했다.

    21세기형 테러에 맞서는 서방, 20세기형 테러 생각하는 한국


    한편 한국 정부는 서방 진영을 대상으로 한 테러조직들의 공격이 이어져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대응해 왔다. 이는 2001년 11월 23일 국가정보원이 ‘대테러법’을 제정하려고 시도한 이래 14년 넘게 이어진 ‘반대파’들의 정치적 공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국 사회 전반이 ‘테러는 남의 일’이라는 사고방식에 빠진 탓이라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러 명의 안보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테러 대응이란 정보기관이 테러 임박 정보를 입수하고, 테러 조직들이 테러를 저지를 낌새가 있으면 대테러 부대나 경찰, 군 병력을 동원해 진압하는 형태”라고 지적한다. 실제 전두환 정부 때인 1982년 1월 27일부터 지금까지 사용 중인 대통령 훈령 제47호 ‘국가대테러지침’을 봐도 그렇다. 

    앞서 말한 이노근·이병석·송영근 의원이 발의한 테러방지법 3가지와 특정금융거래정보법 개정안, 사이버 테러 관련법 등은 이런 ‘국가대테러지침’에 비해서는 월등히 발전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20세기형 테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테러 조직과 조직원에 대한 규정도 유엔을 따르고 있어 ‘선제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테러 조직원에 대한 처벌은 서방 국가들과 비교하면 매우 약하다. 체포영장 없이 강제구금을 한다는 조항도 없고, 테러 첩보가 있을 때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압수수색 또는 정보열람을 하는 조항도 없다.

  • ▲ 지난 11월 30일 국회 정문 앞에서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시위를 벌이는 '자칭 시민단체들'의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1월 30일 국회 정문 앞에서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시위를 벌이는 '자칭 시민단체들'의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 정치권이 이런 ‘반쪽짜리 테러방지법’을 내놓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권’ 때문. ‘인권’을 앞세운 좌익 성향 단체들의 반대운동은 14년 째 힘을 잃지 않고 있고, 이들에 공감하며 앞장서는 야당 의원들이 있다 보니 한국의 ‘테러방지법’은 ‘20세기형 대테러’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권·언론이 좋아하는 ‘해외 선진국 사례’


    현재 세계의 테러방지법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9.11 테러 이후에 제정된 미국의 ‘애국법’이다.

    국내의 ‘자칭 인권단체’와 좌파진영이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떠드는 국가보안법도 애국법(Patriot Act)에 비교하면 ‘흡연 과태료 규정’에 불과하다.

    애국법의 정식 명칭은 테러대책법(Anti-terrorism legislation). 애국법은 ‘미국의 안보와 사회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때문인지 테러 예방을 이유로 기존의 법 권한을 넘어서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美정보기관은 애국법 적용대상이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도 종교시설과 정치단체, 각종 결사조직을 감시하고 수사할 수 있다.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면 기본권도 제한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과 비슷한 조항도 있다. 만약 미국인이나 미국에 사는 외국인이 테러 용의자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거나 그의 의도를 알고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한다. 테러 용의자를 위해 돈세탁을 해주거나 자산관리를 해주면 모든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

    유럽도 미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영국은 2000년 2월 반테러법(Terrorism Act 2000)을 제정했다. 여기에도 불고지죄, 테러 용의자 재산 몰수, 영장 없는 체포 및 구금 등이 포함돼 있다. 2001년 12월 이 ‘반테러법’을 개정한 ‘반테러, 범죄 및 보안법’은 정부가 외국인 테러 용의자를 긴급 구속할 수 있게 하고 계좌까지 감시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했다.

    ‘반테러, 범죄 및 보안법’은 테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배치한 군인에게 일정 범위의 사법 경찰권을 부여하고 테러 관련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정부에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테러, 범죄 및 보안법’은 또한 테러 용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해 3주 동안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테러를 사주하거나 방조한 사람은 체포는 기본이요 그의 재산까지 압류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정부는 2008년 6월 11일 이 법을 다시 개정해 ‘테러 용의자’일 경우 구속영장 없이도 6주 동안 구금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2015년 1월 7일 ‘샤를리 엡도’ 테러에 이어 지난 11월 13일 연쇄 테러를 당한 프랑스는 1986년에 이미 ‘테러 자금과 국가안보에 관한 법’을 마련했다. 프랑스에서 공안사범의 긴급구속기간은 일반 범죄자의 2일보다 긴 4일이다. 프랑스조차도 테러리스트에게는 관용이 없다.

    평화로운 나라라는 캐나다도 9·11테러 발생 직후 ‘반테러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테러 예비, 음모, 방조, 교사, 범인은닉 및 불고지 행위 등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호주는 ‘사이버 범죄법’과 ‘정보업무법’을 강화해 테러 용의자와 공안사범 처벌을 강화했다.

    일본도 9·11테러 이후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생물병기에 관한 법’을 개정했다. 90년대 창설한 대테러 부대 SIT와 SAT의 병력과 장비도 대폭 강화했다. 최근에는 총리 직속 NSC 산하에 테러통합정보기구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를 ‘일본판 NCTC 창설을 위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 ▲ '바비(Bobby)'로 불리던 영국 경찰도 2005년 7.7 테러 이후 별도의 대테러 특공대 CO19를 만들어 테러에 대응 중이다. ⓒ엘리트 폴리스 닷컴 화면캡쳐
    ▲ '바비(Bobby)'로 불리던 영국 경찰도 2005년 7.7 테러 이후 별도의 대테러 특공대 CO19를 만들어 테러에 대응 중이다. ⓒ엘리트 폴리스 닷컴 화면캡쳐

    러시아도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연방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뉴질랜드, 키프러스, 남아공조차도 공안사범까지 그 대상에 포함시키는 ‘대테러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테러방지법’만 이런 게 아니다. 세계 정보기관 가운데 금융거래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기관은 한국 국정원이 유일하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중국 국가안전부(MSS), 호주 보안정보부, 불가리아 국가안보청은 돈세탁방지기구가 보유한 개인들의 금융거래내역을 마음대로 열람하고 사용할 수 있다.

    미국은 법무부 산하 연방수사국(FBI)와 재무부 산하 돈세탁 방지기구인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 사이에 ‘정보 장벽’이 없다. FBI가 국내 방첩 및 테러 예방 책임기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NCTC가 DNI 직속이다 보니 ‘테러 관련 자금정보’에 대해서는 우선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수사권이 없는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각 군 정보기관은 개별적으로 정보를 신청해 받아본다. 하지만 정보제공을 거절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역 검찰도 정보기관의 요청에는 적극 협조한다.

    영국 국내정보국(MI5)이나 캐나다 정보국(CSIS),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브라질, 멕시코, 헝가리, 체코, 싱가포르, 태국,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남아공, 페루도 미국과 비슷하다.

    테러조직원 잡아도 ‘증거’ 없으면 풀어줘야 하는 ‘테러방지법’


    앞서 언급한 세계 강대국 또는 서방 선진국들은 자국의 정보망이 걸러내지 못한 테러조직이나 조직원이라 해도 우방국 정보기관과의 정보 공조를 통해 자국에 입국하려는 테러조직원을 붙잡아 구금한다. 우방국의 요청이 있으면 그대로 해당 국가로 보내버린다.

    반면 한국 정치권이 갑론을박 중인 ‘테러방지법’은 ‘유엔이 지정한 29개 조직 이외에는 ’테러조직‘으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한국 정치권이 내놓은 ’테러방지법‘이 이처럼 허술한 이유는 입법 목적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해당 구절이다.

    “…유엔은 9·11테러 이후 테러근절을 위해 국제공조를 결의하고 테러방지를 위한 국제협약 가입과 법령 제정 등을 권고해 OECD 34개 국가 대부분이 테러방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했으며, 지난해 9월 유엔안보리에서는 ‘외국인테러전투원(FTF)’ 규제를 위한 결의(2178호)를 채택하고 회원국의 국내법상 처벌 의무화 등을 결정했음.”


    즉 한국 정치권의 태도는 “유엔의 권고와 다른 OECD 회원국들이 이미 ‘테러방지법’을 만들었으니까 우리도 만들자”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다른 나라들은 나름대로의 개념으로 테러조직 지정 규정을 갖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유엔이나 해외의 데이터베이스를 따라만 간다. 참고로 美국무부는 2015년 11월 말 현재 219개의 해외 단체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이러니 테러조직의 수괴와 간부를 제외한 일반 조직원들의 경우 해외에서 테러 조직에 가담한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다면, 구금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자칭 인권단체’와 ‘자칭 종교단체들’이 “외국인의 인권을 침해한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큰 소리를 치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한국 정치권이 제정하려는 법안만 문제가 아니다. 법 집행은 더 큰 문제다.

    한국 정보기관에는 기소권이 없다. 정보기관에 파견 나간 검사가 기소권을 맡아 처리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한국 검찰 가운데 ‘테러조직 수사’를 위해 교육을 받은 검사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서야 서울중앙지검에 ‘테러수사 전담부서’를 만들었다. 이러니 해외 테러수사 기관과 공조를 해 본 경험자를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경찰 또한 문제다. 현재 한국 경찰의 정보국은 대공 수사와 시중 정보수집, 폭력시위 관련자 수사에 특화돼 있다. 경찰청 및 각 지방경찰청 외사국에서 테러조직에 대한 감시 및 정보 수집을 맡고 있지만 인력도, 감시 장비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경찰과 국민안전처가 운영하는 대테러 부대의 경우에는 인질구출 작전 및 테러조직원 제압 작전만을 훈련할 뿐이다. ‘위장수사’나 ‘잠입수사’는 현행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군? 군은 아예 테러에 대한 대비책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군 소속의 대테러 특임대나 수방사 35특임대 같은 경우도 경찰 대테러 부대와 같은 역할을 할 뿐 테러조직에 대한 정보수집 등은 하지 않는다.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령부, 정보사령부, 합참 정보본부(DIA) 또한 테러 정보 수집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인 ‘특정 금융거래 정보’를 다루는 금융정보분석원(FIU) 또한 유엔 제재결의안과 한국 내의 범죄와 관련한 정보 수집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 세계 각국의 테러조직이나 범죄조직 관련 금융정보 수집은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지금 여야 정치권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너무 약하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것이다.

    테러조직들이 한국을 건들지 않는 이유? "너무 좋아서"


    안보 전문가들이 “한국도 테러에 대한 대응책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난 14년 동안 외쳐왔음에도 여론은 “아니, 테러조직들이 한국에서 테러를 일으키지 않는데 그게 필요하냐”는 반론들이 숱하게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런 여론을 조성한 사람들은 국제테러조직이 ‘왜 한국에서는 테러를 제기하지 않느냐’ 하는 이유를 모르고 떠드는 것이다.

  • ▲ 9.11 테러 이후 美CIA는 알 카에다의 테러 계획 '보진카 작전'을 공개했다. 당시 美CNN을 포함한 세계 언론들은 관련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美CNN 보도화면 캡쳐
    ▲ 9.11 테러 이후 美CIA는 알 카에다의 테러 계획 '보진카 작전'을 공개했다. 당시 美CNN을 포함한 세계 언론들은 관련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美CNN 보도화면 캡쳐

    ‘월간조선’에서 보도했던 특종 가운데 ‘보진카 계획’에 대한 기사가 있다. 알 카에다 조직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일명 KSM)’이 90년대 중반 한국 김포공항 등 동아시아에서 민항기 14대를 납치, 공중에서 폭파시키거나 주한미군 기지에 자폭한다는 계획이었다.

    KSM은 ‘보진카 계획’의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알 카에다 두목 오사마 빈 라덴에게 제출했고, 빈 라덴과 2인자 아이히만 알 자와히리는 이를 수락해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KSM의 계획은 엉뚱한 데서 틀어졌다.

    주한미군 기지를 염탐하러 한국에 입국한 조직원은 불법체류자로 경기도의 한 영세업체에서 근무했지만 업체 사장의 잦은 구타를 못 이기고 경찰에 탄원했다 강제추방을 당했고, 폭탄을 만들던 필리핀의 조직원은 마닐라의 한 아파트에 차려놓은 작업장에서 작업을 하다 실수로 액체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모조리 사망했다. 조직원들의 실수 덕분에 ‘보진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9.11 테러가 일어난 뒤 美CIA가 알 카에다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드러나 한국 국정원에 알려준 것이었다. 당시 CIA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 국정원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의 한국 생활을 재확인하면서 강제추방 당한 조직원이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을 하고 한국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는 ‘우스개’로 돌기도 했다.

    ‘보진카 계획’이 공개된 이후에도 국제테러조직이 한국을 건들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치안이 철저해서라기보다는 서방 국가들 가운데 한국만큼 테러조직에 무신경하고 외국인을 우대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2004년 한국 내 무슬림 환치기 조직 ‘하왈라’를 조사하면서, 서울에만 이런 조직이 3곳 이상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하왈라’는 알 카에다를 포함한 이슬람 테러조직들이 즐겨 사용하는 외환거래 창구였다.

    2007년에는 소말리아 해적 문제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납치 문제를 조사하면서, 한국 내에 이들을 돕는 정보원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는 해외 관련기관에 의해 사실로 드러났다.

    2010년에는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사건들이 있었다. 당시 대구 이슬람 성원에서 ‘이맘(성직자)’로 근무하던 ‘안와르 울라키’의 경우 ‘파키스탄 탈레반(TPP)’ 조직원으로 드러난 것이다. 또 다른 TPP의 핵심 조직원 ‘살림 모하메드’는 밀입국 과정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국정원은 이미 파키스탄 정보부 등으로부터 관련 첩보를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살림 모하메드’는 재판을 받은 뒤 강제추방 조치만 당했고, ‘안와르 울라키’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미국이나 유럽이었다면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혔을 텐데 말이다. 

    2014년과 2015년에는 국회 정보위에서 다른 이야기도 나왔다. 국제테러조직과 연계된 외국인이 현재 국내에 30여 명이나 있음에도 ‘테러조직’을 처벌한 법이 없어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회 정보위 의원들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 6월까지 국제 테러조직 관련 혐의로 강제추방 된 외국인이 56명이라고 했다. 또한 국제마약조직, 국제범죄조직 관련자로 적발된 외국인은 같은 시기 5,574명에 이른다고 했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테러조직 ‘대쉬(ISIS)’나 9.11 테러 등을 저지른 ‘알 카에다’, 파키스탄 군인 자녀학교에서 집단 학살극을 벌인 ‘파키스탄 탈레반(TPP)’ 등은 국제범죄조직, 국제마약조직을 통해 거액을 벌어들인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도 사법처리를 하지 못하는 나라, 외국인이라고 하면 정부가 나서서 각종 지원을 해주는 나라, 결혼을 통해 국적을 얻으면 전 세계에서 못 가는 나라가 없는 한국이야말로 국제 테러조직들에게는 ‘신분세탁’과 ‘작전지원’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테러를 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한국 정치권은 ‘국정원의 권한 확대’ 문제를 놓고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느냐 마느냐 입씨름 중이다. 이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17세기 말 왕실의 상복 문제로 몇 년을 싸우며 허송세월을 보낸 조선 수구세력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