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나주서 발생한 민간학살 피해자, 국가 상대 손배소서 승소국가, 통지서 송달된 지 14년 지나서야 소송… 시효완성 지났다고 주장법원 "경찰공무원들, 위법한 직무 집행… "국가는 손해배상 책임 있다"
  • ▲ 서울중앙지법. ⓒ정상윤 기자
    ▲ 서울중앙지법. ⓒ정상윤 기자
    6·25전쟁 발발 직후 북한의 '부역 혐의자'로 몰려 사살된 민간인 피해자 유족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게 됐다. 이웃주민이 유족을 대신해 통지서를 수령할 권한이 없고, 통지서 수령 이후 이웃이 유족에게 제대로 전달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도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단독 김민정 판사는 지난 4월26일 유족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국가가 피해자에게 8000만원, 그 자녀에게 800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군·경의 소개 명령으로 전남 나주군으로 피난을 떠난 주민 10여 명은 북한 인민군의 부역자로 몰려 경찰에 적법한 절차 없이 사살됐다. 

    이에 진실화해위원회는 민간인 희생사건 등에 따른 관련자들의 진실규명 신청을 접수했고, 2007년 2월 말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후 진실화해위는 목격자·참고인 조사 등을 거쳐 2008년 10월21일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원고인 유족 A씨는 당시 사살된 10명의 피해자 유가족 중 한 명이었다. 망인은 사망 당시 혼인을 해 자녀 1명을 둔 상태였다.

    진실규명결정통지서는 2008년 10월31일 우편으로 발송됐다. 해당 통지서는 2008년 11월3일 원고의 옆집에 거주하던 B씨가 수령했다. 

    진실규명결정통지서가 전송된 지 14년이 지난 2022년, 유족 A씨 측은 뒤늦게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는 "원고는 망인이 경찰에 의해 살해 당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늦어도 통지서가 송달된 2008년 11월3일에는 소를 제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해당 사건 소는 3년이 지난 후인 2022년 8월11일 제기돼 손해배상청구권은 시효 완성으로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사라진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 통상적으로 국가를 상대로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서는 개별 당사자가 해당 사건의 희생자가 맞는지 증거를 통해 확정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조사보고서 자체로 판단한 내용에 모순이 있거나 참고인 진술의 구체성이나 관련성 또는 증명력에 부족함이 있는 경우에는 정리위원회의 원시자료 등에 관한 증거조사 등을 통해 사실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상당수 참고인들의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진술 등으로 망인의 희생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보인다"며 "참고인의 진술 내용의 구체성, 관련성, 증명력이 논리 부분에 있어 부족함이 없어 사실 확정을 짓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경찰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망인을 사살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 이상 이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로 인해 망인과 유족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은 명백하고, 피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진실규명 결정일을 단기 소멸 시효에 있어 '손해 발생 및 가해자를 안 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옆집에 살던 B씨가 원고를 대신해 통지서를 수령할 권한이 있다거나, 통지서 수령 후에 B씨가 원고에게 제대로 전달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원고가 진실규명결정통지서를 송달받았다고 해서 해당 사건의 손해 발생 및 가해자를 알게 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부연했다.

    손해배상책임의 범위와 관련, 재판부는 "망인과 원고가 사건의 불법행위로 인해 겪었을 정신적 고통,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불법행위의 내용과 정도, 불법의 중대함, 유사 사건에서 확정된 희생자들과 그 유족에 대한 위자료 금액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했다"며 "이 같은 희생사건은 전쟁이라는 국가 존망의 위급시기에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망인에게는 8000만원, 그 자녀에게는 800만원의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가 없으므로 기각하기로 했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