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국제외교전략-자유독립정신,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제자리부터 복원하라!
  • 66년전 6월6일이 ‘현충일’로 정해졌다. 휴전3년후 1956년 4월19일 이승만 대통령은 순국장병 추모의 날을 특정하였다. 그때까지 육해공군의 추모행사가 매년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승만에게 6.25란 무엇인가. 전면남침이 터지자 이승만은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이 전쟁은 ‘자유통일전쟁’이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중공군이 가담하자 중국대륙까지 공산주의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대륙을 공산당이 지배하는 한, 세계 평화는 없다”며 미국의 일방적인 휴전을 결사반대하였다.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려 한국 야당과 공모, 국회 간접선거를 이용한 쿠데타를 추진한다. 이승만은 공산군과 싸우며 미국과 싸우며 “내 임기중 이것만은 이룩하고야 말겠다”며 3가지 목표를 관철한다.
  • ▶[이승만 현대사-위대한 3년: 1952-1953-1954]
    이 책 제목이 보여주듯 6.25전쟁이 한창일 때 이승만은 ’평생의 꿈‘을 이루어낸다. 왜 ’위대한 3년‘인가.

    ★1952년 부산정치파동=국회서 대통령 뽑는 간접선거제를 국민 직접투표로 바꾸는 ’‘직선제 개헌‘을 밀어붙여 성공한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완성이다. 대통령을 바꾸려던 미국과 집권을 노리던 야당은 두손 들었다.
    ★1953년 한미동맹 체결 쟁취=흔히 ’벼랑끝 전술‘로 부르는 이승만의 외교전쟁, 반공포로 석방이다. 경악한 미국은 이승만을 연금-추방하려던 작전을 포기하고 한미동맹 협상에 응한다. “이승만을 대체할 지도자가 없다”고 판단, ’외교의 귀신‘ 앞에 굴복한 것이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파동=휴전 직후 미국의 대규모 원조를 확보한 이승만은 건국헌법의 사회주의-공산주의식 통제경제 조항들을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전면 개헌한다. 야당은 이것도  반대하였다. 오로지 80세 이승만의 장기집권 기도만 규탄할 뿐.
  • ▲ 동작동 현충원의 이승만 대통령 부부 합장묘소.ⓒ뉴데일리DB
    ▲ 동작동 현충원의 이승만 대통령 부부 합장묘소.ⓒ뉴데일리DB
    ▶이 책은 건국후 이승만의 역사적 진실을 역사에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필자가 쓴 책이다. 

    동작동 국립묘지를 선정한 이승만도 거기에 부인과 함께 묻혔다. 일주일마다 전선을 돌아보며 통일전쟁을 지휘했던 자유전사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했던 장병들의 품에 잠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승만이 본 이승만의 현대사‘를 묶어 그해 현충일에 그 묘소 앞에 바쳤다.

    지난 대한민국 74년 역사는 파란만장 돌고 돌아 결국 ’이승만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직선제,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이 그렇지 아니한가. 이것은 20대청년 이승만이 80세까지 꿈을 실현해낸 제2의 ’건국 혁명‘이었다. 친북친중 정권을 엎은 국민선거 혁명으로 집권한 새 정권도 ‘한미동맹 복원’만 외친다. 이승만의 국제외교전략-자유독립정신을 복원하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제자리부터 복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