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유해용 전 연구관, 법정서 "헌법소원 고려" 밝혀
  • ▲ 유해용(53·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2차 공판에서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피신) 증거능력을 문제삼았다.ⓒ정상윤 기자
    ▲ 유해용(53·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2차 공판에서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피신) 증거능력을 문제삼았다.ⓒ정상윤 기자
    “일부 조서(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진정성립을 부인한다. 헌법소원도 고려 중이다.”

    유해용(53·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신의 2차 공판에서 한 말이다.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은 것이다.

    피의자신문조서는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하고 그에 따른 진술내용을 기록한 문서다. 유 전 연구관이 말한 ‘진정성립’은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즉 자신의 진술과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성립을 부인한다”는 유 전 연구관의 발언은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다. 유 전 연구관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대법원 문건을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고 지난 3월 불구속 기소됐다.

    현행법상 적법한 절차와 요건 등이 갖춰졌다면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형사소송법 312조 1항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됐는지 △피고인 진술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됐다는 사실이 피고인 진술에 의해 인정됐는지 등에 따라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피의자(피고인)가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을 부인하는 경우에도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졌음이 증명됐는지’ 등 요건을 갖춘다면 증거능력은 있다.

    피의자신문조서 진정성 폭넓게 인정… 최근엔 기류 달라져

    문제는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대한 법적 해석이다. 이는 피의자(피고인)가 피의자신문조서의 진정성을 부인하는 경우 그 증거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다. 그동안 사법부는 피의자신문조서의 진정성을 폭넓게 인정했으나, 최근 내용이 모호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1995년과 2005년 두 차례 있었다. 헌재는 1995년 6월29일 ‘형소법 제312조 제1항 단서 위헌소원(93헌바45)’에 대해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피의자 인권보호와 실체적 진실 발견, 신속한 재판 등 사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10여 년 뒤 나온 헌재 판단도 합헌이었다. 헌재는 2005년 5월26일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위헌제청(2003헌가7)’에 대해 5 대 4 의견으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형소법 312조 2항이 모호하다는 보충의견도 냈다.
  • ▲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5년  ‘형사소송법 제312조1항 위헌제청’에 대해 5대 4 의견으로 피신의 증거능력이 있다고 인정했다.ⓒ뉴데일리 DB
    ▲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5년 ‘형사소송법 제312조1항 위헌제청’에 대해 5대 4 의견으로 피신의 증거능력이 있다고 인정했다.ⓒ뉴데일리 DB
    당시 헌법재판관 중 2명(김경일·전효숙)은 “아직도 이 사건 법률조항의 명확성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형사재판에서의 직접주의·공판중심주의가 강조되는 현실을 감안해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요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입법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라는 요건에 대해 “피의자의 변호인 참여 요구권에 대한 고지 절차 등을 통해 변호인 참여의 실질적인 보장이 증거능력 부여의 전제조건임을 명백히 해야 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피의자신문조서가 증거능력으로 인정받으려면 진정성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진정성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유 전 연구관의 발언에 대해 “다퉈볼 만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 인정 여부 핵심은 진정성립”

    서울 서초동의 김모 변호사는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면 사용할 수 없도록 돼있는데,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 진정성립만 인정되면 (증거능력 인정이) 다 된다”면서 “물론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에 대한 사실 판단 여부는 판사가 한다”고 말했다.

    양모 변호사 역시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위법한 절차가 없었다면 특별히 증거능력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유 전 연구관이) 문제를 삼은 진정성립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퉈볼 만하다는 의견이다.

    우리와 같은 대륙법 체계인 독일·일본에서도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우리나라보다 엄격하게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헌재 판례집(17-1, 558)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형소법 제250조, 제254조 제1항 등 규정에 따라 법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만 증거능력을 지닌다. 사법경찰관이나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그 자체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직접자료로서의 증거능력이 없는 셈이다. 일본은 형소법 제322조를 통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다만 피고인의 서명이나 날인이 있어야 하는 등 엄격한 조건이 수반된다.

    미국의 경우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자백하면 사실심리가 끝난다. 이 때문에 피의자의 수사기관 자백진술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대부분 문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