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창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연결하고 소통하고 싶다."

    나는 보지만 나는 보이지 않는다. 진짜 있고 없고를 떠나 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뭔가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미술작가 오병재(45)의 이야기다.

    '역원근법' 회화로 중용의 미덕을 드러내는 오병재 개인전이 5월 18일까지 서울 신사동 애술린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적인 선과 도상, 선명한 색채로 표현한 그의 대표작들을 선보인다.

    동네 건축물을 주제로 한 '문양화된 장소(Patterned Place)', 책이 가득 꽂힌 책장 그림 '문양화된 지적 이미지(Patterned Intellectual Image)'을 비롯해 신작 '하이힐'과 '컴퓨터 서버' 작업이 소개된다.
  • ▲ '컴퓨터 서버'  2019 | Acrylic on canvas | 43cm x 34cm.ⓒ애술린 갤러리
    ▲ '컴퓨터 서버' 2019 | Acrylic on canvas | 43cm x 34cm.ⓒ애술린 갤러리
    '역원근법'이란 원근법으로 고정된 시선을 뒤집어 후경의 입체를 전경의 입체보다 같거나 크게 그리는 방식이다. 오 작가는 질서를 벗어난 역원근법 구성으로 다양한 시점을 화면에 투입,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그는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했다"며 "나는 다름과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려워 하지만 다른 시선들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마다의 건물은 도시의 풍경이자 얼굴이다. '문양화된 장소'는 1980년대 많이 지어졌던 붉은 벽돌 건물을 소재로 일상의 풍경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겼다. 특히, 블록을 쌓는 레고처럼 캔버스를 이어 붙여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하얀 캔버스는 뭐든지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도시가 어떻게 변하고 소멸해가는지에 대해 생각하다 블록화된 캔버스 유닛의 결합으로 확장시켰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타인의 도시를 나의 도시로 만드는 일이다."
  • ▲ '컴퓨터 서버'  2019 | Acrylic on canvas | 43cm x 34cm.ⓒ애술린 갤러리
    책을 소재로 한 '문양화된 지적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책걸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적인 책의 의미가 사라지고 계산적으로 문화 가치를 산술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넣었다.

    하이힐이나 컴퓨터 서버 또한 나 혼자만의 시선과 생각이 아닌, 다른 이의 시선과 생각이 섞여 모일 때 조화로운 세상 속 본질을 찾을 수 있다는 작가의 세계관인 '중용'과 연결된다. 하이힐은 남자인 자신이 바라보는 여성, 자신이 알 수 없지만 공감하기 위한 오브제다. 컴퓨터 서버는 작가가 모르는 세계와 소통하는 의미로 작동한다.

    오병재는 2006년 1월 타계한 오승윤 화백의 둘째 아들로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3년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에서 석사를 마쳤다. 조부는 호남 화단의 대표화가이자 근대 서양화의 주요 작가인 오지호(1905~1982) 화백이다.

    오 작가는 "연필을 잡을 때부터 화가가 되려고 했다. 어렸을 때 모든 사람들의 직업이 화가인 줄 알았다"면서 "미술은 고상한 예술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매개체다. 사람들이 집에 걸어 두고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전시 종료를 앞두고 "최근 홍콩 PMQ 전시의 높은 호응도에 이어 국내에서도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고 싶었다. 5년 만에 가진 개인전에 보내주신 많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꾸준히 새로운 작품으로 인사드리고싶다"며 소감을 덧붙였다.
  • ▲ '컴퓨터 서버'  2019 | Acrylic on canvas | 43cm x 34cm.ⓒ애술린 갤러리
    [사진=애술린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