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趙甲濟  /조갑제닷컴 대표
     
       한반도가 分斷(분단)되어 김일성의 亂(6·25사변)을 겪은 가장 큰 이유는 민족이 달라서도 종교분쟁이 있어서도 아니다. 공산주의가 우리 공동체에 들어와 同族(동족)의 마음속에 증오와 저주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살인을 가르친 '카인의 후예들'이다.
      
      따라서 한국인은 정치인을 평가할 때 반드시 이념검증을 해야 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大明天地(대명천지)의 한국에서 반역자들이 정치권 속으로 들어와 寄生(기생)하게 된 것은 이런 사상검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상검증을 하지 않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것은 세균검사를 하지 않고 날 것을 먹는 것과 같다.
      
      국민의 당연한 권한인 公職者(공직자)에 대한 사상검증을 '색깔론', '매카시즘'이라고 비방하는 자는 反대한민국적 사상의 소유자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억울한 사람을 빨갱이로 만드는 용공조작은 없어진 지 오래이다. 요사이는 간첩을 민주화운동가로 추앙하고 좌익일수록 판사들로부터 우대를 받는 세상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빨갱이'라고 부른다. 빨간 색을 상징으로 쓰고 '赤軍(적군)' '紅軍(홍군)' 'Reds'라고 자신들을 호칭한다. 우리가 저들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정확하다.
     
      언어혼란 전술을 활용, 正義(정의)-민주-진보-평화세력으로 위장하여야 생존할 수 있는 빨갱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名詞(명사)를 정확하게 쓰는 正名(정명)사상이다. 2012년 4·11총선 이후 크게 우회전하는 民心(민심) 속에서 국민들의 약 3분의 2가 公職者에 대한 사상檢證(검증)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도 나왔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드러냄으로써 어둠의 세력을 일소하는 데 가장 유효하였던 무기가 '빨갱이'란 낱말이고 그래서 빨갱이들이 '빨갱이'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이 쓴 불후의 명작 《1984》는 大兄(대형, Big Brother)이 다스리는 오세아니아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眞理省(진리성)에 근무한다. 보도, 연예, 예술을 관장하는 부처이다. 이 부처 곳곳에는 黨(당의)의 구호가 붙어 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無知(무지)는 힘」
      
      오세아니아의 국방부는 平和省(평화성)이라 불린다. 가난이 찌든 나라의 재정경제부는 豊富省(풍부성)이다. 주민들의 사상통제를 전담하는 부처는 愛情省(애정성)이라 한다. 아우슈비츠 같은 집단 강제수용소는 쾌락수용소(Joycamp)이다.
      
      이런 언어는 新語(신어)라고 불린다. 新語는 사회주의의 이념적인 필요에 따라 오세아니아가 창안한 언어이다. 1984년 현재로는 혼용되고 있으나 2050년부터 舊語(구어)는 없어지고 新語만 쓰일 것이다. 이 나라의 黨에선 略語(약어)를 많이 쓴다. 오웰에 따르면 略語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의도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眞理省은 眞省, 平和省은 平省, 愛情省은 愛省이라고 불린다. 이 略語의 원리는 이렇다.
      
      예를 든다. 「국제 공산당(communist international)」이란 말은 보편적인 인류애, 붉은 깃발, 바리케이드, 칼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를 줄인 「코민테른」이란 말에선 그런 연상이 중단된다. 단지, 엄격하게 조직된 기관과 명백하게 定義(정의)된 강령체가 떠오를 뿐이다.
      
      「국제 공산당」이란 단어는 사람을 순간적으로 머뭇거리게 한다. 구체적인 연상과 思惟(사유) 기능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코민테른」에선 그런 사유와 고민이 중단된다. 眞理省이란 말보다는 眞省으로 줄일 때 연상작용이 더 약하고 따라서 통제하기도 쉽다. 즉, 略語를 정치적으로 많이 쓰면 대중을 맹목적으로 선동, 조종하기가 쉽다는 이야기이다.
      
      선동기관을 眞理省이라 부를 때는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진리가 아니라 거짓을 알리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인데」 하는 반발과 의심이 생긴다. 眞省이라고 하면 하나의 부호가 된다. 연상과 주저가 사라진다. 「이회창을 사랑하는 모임」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창사랑」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보다는 「노사모」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모임」보다는 「조아세」가 연상과 懷疑(회의)를 줄인다.
      
      「한민전」은 「한국민족민주전선」이란 정식 명칭보다도 북한 정권의 공작에 유리하다. 그들은 「한민전」이란 애국단체가 서울에 있고 이들이 지하방송 「구국의 방송」을 운영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민족민주전선」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 그런 단체가 있다고? 뭐 그들이 민족이고 민주라고?』라고 비웃는다.
      
      「韓民戰」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한민전」이 더 간편하다. 한글 전용에 의해 의미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철부지들과 無知한 사람, 열등감과 증오감을 품은 대중을 속이고 포섭하고 동원하는 데 효과적이다.
      
      殺人(살인)이라고 漢字(한자)로 쓰면 단순 교통사고를 낸 미군을 「殺人미군」이라고 호칭하는 데 주저하게 된다. 殺人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한글로 「살인미군」이라고 하면 선동 구호가 된다. 그때부터 「살인미군」은 言語(언어)가 아니라 외침이 된다. 저주와 증오를 부르는 「얏」, 「씻」 같은 수준의 네 마디 부르짖음이다.
      
      反美(반미)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많은 識者(식자)들이, 박사도, 교수도, 사장도 미군의 교통사고를 「살인미군」이란 말로 표현하는 데 놀란 적이 있다. 略語가 이들의 분별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 때문이다. 「조아세」란 단체가 朝鮮日報(조선일보)를 비방하는 책자를 만들어 돌리고 있는데 책 제목이 「딱」이다. 딱은 「조선일보를 딱 끊는다는 뜻입니다」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방부를 戰爭省(전쟁성, War Ministry)이라고 정직하게 표기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선 전쟁을 하는 부서를 平和省이라 부르는데, 이는 의도적이다. 오세아니아가 벌이는 모든 전쟁은 평화를 위한 것이다. 이를 의심하거나 반대하는 자는 사상범으로 처단한다는 의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북한정권을 「민주체제」로 보지 않는 자는 처단한다는 의미이다.
      
      아우슈비츠를 방불케 하는 「양심수 강제수용소」를 북한 정권은 「14호 관리소」란 부호로 부른다. 그 수용소 안에는 「독재 대상 구역」이 있다. 내용을 따져 보면 「민주 대상 구역」이다. 즉, 金正日(김정일) 독재에 반대하거나 불평한 북한판 민주투사들이 붙들려 와 있다. 「독재 대상」이란 말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반대하는 소위 「계급의 원쑤들」에게는 독재를 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북한 정권이 말하는 民主(민주)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한, 계급의 원수들에 대한 독재」이다. 북한 정권은 「民主」란 말과 「독재」란 상반된 의미의 말을 같은 뜻으로 사용, 인민들을 혼란시켜놓고는 黨의 의도대로 이들의 생각을 이끈다.
      
      《1984》의 주인공인 眞理省 근무자 윈스턴은 일기장에 유명한 말을 남긴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다. 이것만 허용된다면 그밖의 모든 것도 이에 따르게 마련이다」
      
      윈스턴은 줄리아란 여자와 연애한 죄로(오세아니아에선 아이를 낳기 위한, 쾌감 없는 섹스만 권장한다) 사상경찰에 체포되어 愛情省의 고문실로 끌려간다. 심문관 오브리언이 묻는다(김회진 번역, 범우사 출판본 인용).
      
      
      『자네 기억하나? 일기장에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된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자유다」고 쓴 것 말이야』
      『예』
      
      오브리언은 엄지손가락을 감춘 채 네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내가 몇 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지?』
      『네 개입니다』
      
      『그럼 만약 黨이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라고 한다면, 그럼 몇 개가 되지?』
      『네 개입니다』
      
      오브리언은 고문 기계를 돌린다. 그 후 다시 묻는다.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지?』
      『네 개입니다』
      
      다시 고문기계를 돌린다.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냔 말이야』
      『네 개입니다. 네 개요!』
      
      다시 고문 뒤 질문.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지?』
      『네 개요! 어쩌자는 겁니까. 네 개요, 네 개라니까요!』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냔 말이야?』
      『다섯, 다섯 개! 다섯 개요!』
      『자네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아직도 네 개라고 생각하고 있어. 손가락이 몇 갠지 말해 봐!』
      『네 개! 다섯 개! 마음대로 해요. 제발 그만해요』
      『윈스턴, 자네는 배우는 게 느리군. 윈스턴 손가락이 몇 개지?』
      『네 개요. 네 개 같아요. 다섯 개로 보고 싶어요. 다섯 개로 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다섯 개로 보인다고 말만 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진정 그것을 다섯 개로 보고 싶은 거야?』
      『정말, 다섯 개로 보고 싶습니다』
      
      『다시』(고문기계 돌림)
      
      『윈스턴, 내가 지금 손가락을 몇 개 펴고 있지?』
      『몰라요, 모르겠어요. 차라리 나를 죽여요. 넷, 다섯, 여섯, 정말이지 난 모르겠어요』
      
      『좀 나아졌는데』
      
      사상 심문관 오브리언(영화에선 리처드 버튼 扮)은 윈스턴에게 말한다. 『종교재판은 회개를 받아내지 못하고 이단자를 죽였기 때문에 실패한 거야. 그들은 순교자로 만들어졌고 많은 추종자들이 들고 일어났어. 나치와 소련은 강제로 자백을 받아낸 뒤 죽였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나자 그들이 순교자가 되었어. 우리는 그런 식의 실수는 하지 않아. 우리는 자유의지에 의한 항복을 받아낼 거야. 자네가 저항하는 한 우리는 처형하지 않아. 자네를 깨끗이 만들어 놓은 뒤 총살할 거야. 자네는 大兄을 사랑하게 될 것이야. 자네가 항복한다고 살아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아. 우리는 자네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멸시킬 것이네. 사랑, 우정, 삶의 기쁨, 웃음, 호기심, 용기, 성실성 등을 절대로 다시는 가질 수 없게 될 걸세. 자네는 텅 비게 될 거야. 우리는 자네를 텅 비게 만든 다음 우리 자신의 것으로 자네를 채워 줄 거야.』
      
      오브리언은 『자네는 복종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 大兄을 사랑해야 돼』라고 말한다. 그는 『진정한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어야 그 존재가 입증된다』고도 말했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썼을 때는 1948년이었다. 그는 스탈린의 소련을 염두에 두고 썼다. 그러나 1984년 소련에는 이미 강제수용소가 없어졌다. 당시 이 소설과 90% 이상 비슷한 체제는 金正日과 金日成(김일성)이 공동으로 통치하던 북한뿐이었다. 金氏朝鮮(김씨조선)의 왕은 신민들이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어버이 수령」이라고 부르짖으면서 매일 아침 일어나 벽에 걸어 놓은 大兄 金日成 초상화를 향해서 경배를 올리게 했다. 《1984》의 가장 유명한 상징물은 大兄이 노려보는 텔레스크린인데, 金日成 초상화처럼 집집마다, 방마다 걸려 있고 국민들은 이 화면의 視野(시야) 속에서 살아야 하며 이를 끌 수 없다.
      
      인간성과 진실을 死守(사수)하려 했던 윈스턴은 결국 오브리언에게 굴복하고 大兄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 태어난다. 그는 먼지 쌓인 탁자 위에 손가락으로 이렇게 쓴다.
      
      「2+2=5」
      
      그 직후 무장한 간수가 그의 뒤에 나타난다.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이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윈스턴은 大兄의 미소를 바라다보면서 행복감에 넘쳐 죽어 간다.
     
      이런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들을 우리는 '빨갱이', '종북주의자', '주사파'라고 부른다. 김대중, 노무현 세력은 이들과 손을 잡았거나 이들을 감쌌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은 赤化(적화)되지 않았을까? 또다른 '漢江(한강)의 기적'이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