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전날 제시한 '평화·번영' 다음날 되풀이… '한반도 이슈 주도권' 김정은에 내줘
  •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신년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신년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2019년도 신년회에서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화답하는 성격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새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이미 제시한 '평화와 번영'이라는 키워드를 되풀이했고, 신년사를 전하는 모습을 언론에 비춘 것도 뒤늦어 '따라가기'를 하는 모양새로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날 오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기해년 신년회에는 약 300여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 한해 우리는 평화가 얼마나 많은 희망을 만들어내는지 맛보았다"며 "새해에는 평화의 흐름이 되돌릴 수 없는 큰 물결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면 평화가 번영을 이끄는 한반도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실현하고, 북방으로 러시아, 유럽까지 철도를 연결하고, 남방으로 아세안, 인도와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년회 전날, 김정은 신년사 대대적 보도

    문 대통령이 언급한 '평화가 번영을 이끄는 한반도 시대'는, 전날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화 번영 역사를 쓰기 위해 마음을 같이 한 남쪽 겨레에 인사를 보낸다"고 말한 것에 대한 화답으로 읽힌다. 하지만 '평화·번영'은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됐다. 새해 아침부터 조선중앙TV로부터 녹화 중계된 김정은 신년사가 주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기 때문이다. 2019년도 남북관계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북한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먼저 국민들에게 각인된 셈이다.

    김정은 제시 과업, 南이 '뒷받침' 해줄 판

    문 대통령이 뒤늦은 신년사를 밝힌 의도에 일각에서는 또 다른 해석이 뒤따르기도 한다. 김정은을 돋보이게 해주려고 일부러 한발 늦은 태도를 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김정은 신년사가 방송과 인터넷 뉴스 지면을 장식했던 1일, 문 대통령도 대국민 새해 인사를 전했다. 페이스북을 통한 덕담 성격의 짧은 메시지였다. 해당 글엔 "평화가 한분 한분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돌이킬 수 없는 평화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겼지만, 남북관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준비된 메시지는 없었다.

    국민들은 TV를 통해 문 대통령이 새해 하루 동안 2018년을 빛낸 의인들과 등산 해맞이를 하는 모습을 봤다. '등산 마니아'로 알려진 대통령의 친숙한 모습이었다. 청와대는 김정은 신년사 직후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고 본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을 뿐, 이날 저녁에도 대통령의 발빠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반면 김정은 신년사는 선(先)공개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언론들은 앞다퉈 김정은이 양복 입고 소파에서 앉아서 진행됐다는 점을 들어 '파격'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김정은 신년사가 갖는 남북관계·동북아 안보 변화에 대한 정치 평론가들의 각종 분석이 뒤를 이었다. 새해 첫날 하루 종일 인터넷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랐다. △한미군사훈련 중단 △9·19 남북군사합의 적극 실천 등 민감한 메시지들이 포함돼 있었지만, 정작 부각된 건 평화와 비핵화에 관한 김정은의 '의지'였다. 

    김정은의 '한반도 이슈' 선점... 文, 조수석으로

    지난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평창 올림픽 동참'이 대한민국 정부가 받아주면서 실현됐듯이, 이번에 제시된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가동 재개'도 북측의 요구를 남측이 받아주게 되는 연출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비핵화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제재 압박 시 새로운 길 모색'이라는 김정은의 전제 조건이 이슈를 선점해버렸다. 북한 핵문제를 우리가 주도해서 풀어나가겠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설파한 문재인 대통령의 위치가 조수석으로 나앉은 격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