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 체결 후 랜스·퍼싱Ⅱ·핵장착 토마호크 모두 폐기… 중국 겨냥한 신무기에 관심 쏠려
  • ▲ 중거리 핵전력 감축조약(INF) 파기를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 ⓒ연합-로이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거리 핵전력 감축조약(INF) 파기를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 ⓒ연합-로이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1987년 12월 러시아와 맺었던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밝힌 뒤 러시아는 여유로운 반응을 보였다. 반면 중국은 전전긍긍하며 미국을 향헤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북한은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다.

    INF 파기 후 러시아 “새 조약 기대” 트럼프 “중국 들어와”

    10월 29일 日NHK의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마치 트럼프 美대통령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니콜리아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를 내세워 “우리 러시아는 미국과 협력해 INF 내용 가운데 서로 불만이 있었던 요소들을 없앨 준비가 돼 있으며, 미국과 새로운 군축조약을 체결하는 것을 포함해 대화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INF 파기 선언을 한 속내는 며칠 뒤에 드러났다. 지난 10월 23일 英BBC는 “러시아는 합의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정신 차릴 때까지 무기를 늘릴 것”이라는 트럼프 美대통령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위협은 푸틴을 향한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 美대통령은 “중국이 될 수도 있고, 러시아가 될 수도 있다. 우리와 ‘게임’을 원하는 누구든 포함된다”고 답했다.

    美워싱턴 포스트도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은 INF 당사국이 아니다’라면서도 ‘(새로운 INF에) 중국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美대통령은 “우리는 세상 누구보다 돈이 많다”면서 “그들(러시아와 중국)이 (INF) 조약을 지킬 때까지 핵무기를 만들어 쌓아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美워싱턴 포스트는 “중국이 INF 가입국이 아니어서 아무런 제약 없이 상당수의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배치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도 “중국군의 미사일 전력 90% 이상이 중거리 미사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 또한 트럼프 美대통령이 원하는 새 INF의 대상이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중국이 자랑하는 탄도미사일 DF 시리즈 모두 INF 대상

  • ▲ 2015년 9월 전승절 열병식에 등장한 DF-21D. 대함 탄도미사일(ASBM)로도 알려져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5년 9월 전승절 열병식에 등장한 DF-21D. 대함 탄도미사일(ASBM)로도 알려져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중국군은 탄도미사일에는 ‘둥펑(東風)’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영어로는 DF라고 쓴다. 중국군이 보유한 탄도미사일 가운데 주변국을 위협하거나 미국을 겨누는 것에는 ‘DF-15(600km)’, ‘DF-16(800~1,000km)’, ‘DF-17(1,800~2,500km)’, ‘DF-21(1,450~2,100km)’, ‘DF-25(3,200km)’, ‘DF-26(3,500km)’이 있다. 모두 INF에서 중거리 미사일로 규정한 사거리(500~5,500km)에 포함된다. 게다가 전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다.  

    1987년 12월 미소 간의 INF 체결로 미국은 갖고 있던 퍼싱-Ⅱ, 핵탄두 장착 지상 발사형 크루즈 미사일(GLCM) BGM-109G ‘그리폰’ 등을 모두 폐기처분했다. 소련 또한 SS-4 샌달(Sandal), SS-5 스킨(Skean), SS-12 스케일보드(Scaleboard), SS-20 세이버(Saber), SS-23 스파이더(Spider), SSC-X-4 슬링샷(Sling shot) 등 다양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폐기했다. INF 1차 일몰 기한인 1991년 6월까지 미국은 846개, 소련은 1,846개의 핵탄두와 미사일을 해체·폐기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과 소련은 1990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중간거리 탄도미사일을 폐기 또는 해체 보관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2000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강한 군사력 건설을 표방하면서 신형 크루즈 미사일 개발을 시작했다. 미국은 2008년 러시아가 개발하던 SSC-8 신형 크루즈 미사일이 INF를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이에 아랑곳 않고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도 개발했다.

    미국이 보기에 러시아는 45년 동안 대립해 왔던 소련의 계승자이고, 냉전 해체 후에는 그 속을 낱낱이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무기를 만든다고 해도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어 보였다. 반면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조용히 신형무기를 계속 개발·생산한 중국은 위협으로 보였다. 美군사전문가들과 미군은 중국군의 신형 무기가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량 생산 규모, 기술 발전 속도 등은 아시아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으로 봤다. 게다가 관련 기술이 북한에 넘어간 뒤 이란, 시리아로까지 공유된다는 첩보가 들어가자 미국의 위기감은 커져갔다.

    10년 넘는 테러와의 전쟁, 핵없는 세상을 선언했던 오바마 정부를 거치는 동안 중국군의 군사력은 급성장했다. 2017년 1월 들어선 트럼프 정부는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국 및 그 주변세력과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트럼프 美대통령이 INF 파기 선언과 함께 “새로운 조약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해당되는 모두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중국과 북한과의 정면대결을 위한 하나의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없는 미국, 어떻게 대응할까
  • ▲ 미국이 소련과의 INF 체결 이후 폐기한 BGM-109G 그리폰.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베이스로 해 사거리 2,500km의 초정밀 타격 무기로 만들었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 미국이 소련과의 INF 체결 이후 폐기한 BGM-109G 그리폰.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베이스로 해 사거리 2,500km의 초정밀 타격 무기로 만들었다. ⓒ위키피디아 공개사진.

    현재 미군은 공식적으로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갖고 있지 않다. 중거리 미사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BGM-109 토마호크, JASSM-ER 정도다. 舊소련과의 군축협상을 통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공중발사순항미사일(ALCM) 등을 제외한 모든 탄도미사일을 폐기했다. 한때 2만여 기에 달했던 핵탄두도 실전배치한 1,700여 기와 전시대비 보관 중인 5,800여 기를 제외하고 모두 폐기했다.

    미군은 냉전이 끝난 뒤에는 더 이상 탄도미사일을 써가며 싸울 상대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테러와의 전쟁 때는 적과 민간인이 구분되지 않는 전장에 적응하느라 핵무기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전 세계 비핵화를 내세웠던 오바마 정부는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라면 기겁을 했다. 극초음속 비행기술을 응용해 대륙간 타격을 할 수 있는 무기에도 재래식 탄두를 사용하라고 할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미국의 전력으로는 DF-21 같은 대함 탄도미사일(ASBM)에다 DF-17 같은 극초음속 크루즈 미사일까지 가진 중국군을 못 막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게 간단히 볼 나라가 아니다. 그 동안에도 미국은 차세대 순항 미사일과 스텔스 폭격기, 신형 전투함을 개발하고 있었다. 적의 탄도미사일을 막을 수단도 차근차근 개발했다. 냉전 때는 소련과 서로 창을 들고 찌르기만 형국이었다면 미국에게는 이제 방패가 생긴 셈이다. 미군은 이미 지상기반 요격체계(GBI)와 종말고고도요격체계(THAAD), 패트리어트 PAC-3, 이지스 시스템과 SM-3, 지상기반 이지스 어쇼어 등을 골고루 배치해 놓고 있다. 중국이 보유한 핵무기가 300기도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의 탄도미사일 방어망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미군이 언론에 슬쩍 공개했던 X-51 웨이브 라이더

    여기서 “막기만 하면 뭐하나”라고 지적할 수 있다. 미군은 지난 20년 동안 다양한 차세대 무기를 개발했다. 한국 언론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 2~3년 사이에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시험에 성공했다는 소식, “미국 고위 장성이 우리 미사일 방어망으로는 이런 무기를 막을 수 없다고 인정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은 중국, 러시아 같은 무기를 못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 ▲ 2009년 7월 에드워드 美공군기지에서 시험비행을 위해 B-52H에 장착된 X-51 웨이브라이더.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모델이다. ⓒ美공군 공개사진.
    ▲ 2009년 7월 에드워드 美공군기지에서 시험비행을 위해 B-52H에 장착된 X-51 웨이브라이더.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모델이다. ⓒ美공군 공개사진.

    미국은 대륙간 재래식 타격수단 개발 계획이나 신형 스텔스 폭격기 B-21 계획 등을 소리 없이 계속 추진 중이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 美항공우주국(NASA)이나 美국방부 무기개발 기획담당자 등은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실험에만 그쳤던 개념적 무기들의 실증 시험이 늘어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졌다. ‘스페이스 닷컴’ 같은 우주항공 매체는 “美공군이 새로운 초음속 무기 개발을 위해 록히드 마틴과 14억 달러짜리 계약을 했다”는 보도를 최근 내놓았다.

    ‘레이더에 보이는 스텔스 전투기’를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중국이나 대통령이 자랑한 무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차세대 무기를 개발할 때 실증 실험을 매우 오랫 동안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무기가 잠깐 노출될 때도 있다. 美공군과 NASA, 보잉社에서 개발했던 ‘X-51 웨이브 라이더’도 그렇다. 2005년 처음 설계를 했다는 X-51은 첫 시험비행을 2010년 5월에 했다. 극초음속을 내기에 적합한 스크램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X-51은 시험 비행에서 ‘공식적’으로 마하 6을 기록했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 모습을 슬쩍 슬쩍 보여주는 X-51이기에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실제로 개발 중인 극초음속 무기의 성능은 더욱 뛰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국은 20년 전부터 우주와 대기권을 오가는 극초음속 비행체와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1991년 2월 공식 데뷔를 했던 F-117 나이트 호크 스텔스 전폭기의 첫 비행은 1981년 6월이었다.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의 첫 비행은 1997년 9월, 첫 실전 배치는 2006년 1월이었다. 물론 미국에게 중국군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막을 방법도, 공격할 방법도 정말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미국의 무기개발 패턴을 생각하면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특히 미국이 “중국군 탄도미사일을 못 막는다”고 말한 것은 일종의 도발로 풀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