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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캠프를 꾸리는 일은 당락을 결정짓기도 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선거캠프에 어떤 인사를 앉히느냐에 따라 표심은 요동친다.
선거사무소를 어떤 건물에 만드느냐도 이에 못지 않다. 선거사무소를 잘 고른 덕분에 당선됐다는 얘기나 잘 못 골라 낙선됐다는 징크스는 자주 회자되는 정치권 후일담이다.
정책보다 인물론이 부각되는 선거는 더 그렇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번화가에 걸린 선거사무소 외벽 광고는 유권자에게 후보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또 각인시킨다. 지방선거의 꽃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박원순·김문수·안철수 후보 역시 선거사무소 설치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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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조건 안국빌딩… 참여연대의 추억 박원순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선거 30일을 앞두고 안국역 인근 안국빌딩에 캠프를 차렸다. 박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압승했지만 시정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이유로 한 차례 캠프를 해산하기도 했다.
안국빌딩은 2011년 박 후보가 처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때도 캠프로 썼다. 과거 박 시장이 사무처장으로 이끈 참여연대가 있던 건물이기도 하다.
박 후보는 건물주와의 관계도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부동산 업자에 따르면, 해당 건물 주인은 참여연대 시절부터 박원순 시장과 맺어온 인연 때문에 다른 정치인에게는 일체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박 후보 측은 비교적 수월하게 캠프 자리를 잡았다는 후문이다.
박 후보는 해당 건물의 1층과 3층, 총 2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안국빌딩은 층당 479㎡(145평)로 지난 3일 기준 3.3㎡(1평)당 임대료는 6만1000원이다. 월 임대료를 단순 계산하면 885만원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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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과 마주 본 안철수, 동일빌딩 징크스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는 박원순 캠프 바로 맞은편 동일빌딩에 자리 잡았다. 두 캠프는 약 120M 거리로 걸어서 5분 거리다. 2011년 서울시장 양보를 두고 가진 악연이 이번 선거까지 이어진 셈이다. 안 후보는 캠프 개소식 때 건너편 박원순 캠프를 바라보며 "제가 그때 편지 들고 갔었는데…"는 혼잣말로 악연을 되새겨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선이 유력시될 정도로 높은 지지율의 안 후보가 전격적으로 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찾아간 곳이 안국빌딩이었다.
안 후보 선거사무소가 설치된 동일빌딩은 '모두 낙선한 후보들이 머문 자리'라는 징크스를 갖고 있다. 인근 부동산 업자에 따르면, 주로 민주당 후보들이 해당 건물에 캠프를 차렸는데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민주당 후보들은 이 건물을 꺼린다고 한다. 동일빌딩은 또 바로 앞에 차도가 있어 풍수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안철수 캠프는 2층, 4층, 7층, 10층 등 총 4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동일빌딩은 층당 297㎡(90평)으로, 지난 3일 기준 3.3㎡(1평)당 임대료는 9만3000원이다. 1개층 기준 월 임대료를 단순 계산할 경우 837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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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당사에 김문수 캠프… 일석이조 효과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는 한국당 당사 건물 여의도 한양빌딩에 캠프를 꾸렸다. 막대한 캠프 임대료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다.
한양빌딩의 한 층 한 달 임대료는 약 1천만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료는 당과 김 후보 측이 나눠 부담하고 있다.
김문수 캠프 측은 "캠프가 당사에 위치해 임대료 등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고, 당 결속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일석이조"라고 했다. 또 "김 후보가 '내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정상'이라는 말씀을 자주 한다"며 "자금력은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누구보다 청렴한 후보"라고 했다.
김 후보는 당사 3층과 10층, 총 2개 층을 사용하고 있다. 캠프가 당사에 위치한 덕분에 당직자들이 분주히 오고가는 모습은 눈에 띈다.
◆ 허리띠 졸라맨 김문수, 일단 지른 안철수
선거사무소를 임대하는 건물 위치가 중요한 점은 결국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선거공보물 인쇄 등 굵직한 선거운동을 제외하면 선거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게 선거캠프 임대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지율 15% 안팎을 보이는 후보들은 돈 문제에 더욱 예민하다. 선거결과 유효투표총수의 0~15%를 득표하면 선거 비용의 절반을 돌려받고, 15% 이상 득표한 경우 지출 선거 비용의 전액을 보전 받는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비용 책정액은 34억 9천400만 원이다.
김 후보와 안 후보 지지율을 고려하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안 후보는 월 1천만원에 육박하는 캠프 임대료를 흔쾌히 쓰고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공개한 내역에 따르면 안 후보의 재산은 약 1천 195억 원 정도다. 선거 비용 제한액 34억 9천 400만 원은 안 후보 전 재산의 3.4%에 불과하다.
반면 2014년 공직자 재산 신고액을 보면 김 후보의 재산은 약 4억 5천만 원으로, 당시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6위를 기록했다.
김 후보는 지난 대선 당내 경선에서도 중도 사퇴했다. 3억원에 달하는 기탁금(경선후보 등록비용)이 부담스러웠던 점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탁금은 법정 선거 비용에 포함되지 않아 설령 당선이 된다 하더라도 돌려받을 수 없다.
이들의 재산은 이번 지방선거 본후보 등록 기간인 24~25일 이후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