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적 3/5 이상 요구하는 법률안에 비해 더 중차대한 조약 비준·동의는 미적용… 여권 강행 가능
  • ▲ 국회 본회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국회 본회의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회가 '비준 정국'으로 경색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자유한국당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공동 발표한 이른바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5월 임시국회에서 중점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정치 상황이 바뀌더라도 합의 내용을 영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국회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 것의 연장선상이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도 이러한 청와대의 뜻에 따라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판문점 선언이 불가역적이고 실질적인 제반 조치가 되도록 국회 비준을 준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반대 입장이지만, 국회 여건이 녹록치 않아 고민이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상국가가 아닌 국가와 이뤄진 회담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를 운운하는 것은 국회를 이만저만 무시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문제는 민주당·한국당 양당이 모두 원내 다수 의석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조약의 비준·동의와 법률안 의결에 각각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어, 여건 자체가 한국당에 불리하다는 점이다.

    조약의 비준·동의에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의 찬성이 필요하다.

    이날 현재 재적 의석은 293석으로 과반은 147석이다.민주당(121석)·민주평화당(14석)·정의당(6석)·민중당(1석)에 당적은 바른미래당에 있지만 실제로는 평화당과 당론을 함께 하는 비례대표 박주현·장정숙·이상돈 의원, 그리고 무소속 이용호·손금주 의원을 합하면 정확히 147석으로 과반이 달성된다. 1명 정도가 이탈하더라도 정세균 국회의장도 있기 때문에 일단 본회의에 상정되면 국회 비준·동의를 강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야3당이 지난 23일 공동으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원 등의 대통령선거 댓글공작 및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일명 '드루킹 특검법'은 명칭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법률안'이다.

    법률안의 의결 절차에는 국회선진화법이 전면적으로 적용된다.신속처리 안건 등을 통해 의결하려고 해도 재적 5분의 3 이상의 의석(176석)이 필요한데, 한국당(116석)·바른미래당(30석)·민주평화당(14석)을 합해도 크게 못 미치는 형편이다.

    19대 국회 내내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의 발목을 잡았던 국회선진화법이, 여야가 바뀐 20대 국회에서는 야당으로 전락한 한국당의 발목을 다시 잡는 기이한 현상이 초래되고 있는 셈이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특검이 받아들여지면 언제라도 국회를 즉각 정상화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한 것에도 이와 같은 고민이 묻어난다는 분석이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동의와 '드루킹 특검법'은 그 속성상 '딜'을 할 수도 없지만, 설령 '딜'을 시도한다고 해도 저쪽(민주당) 입장에서 (득실이) 맞지가 않는다"며 "비준·동의는 본회의만 열면 당장이라도 의결할 수 있고, 특검법은 본회의를 열더라도 의결할 수 없는 형편이니 민주당만 느긋한 상황"이라고 답답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