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일방적으로 구성하려던 이정현 구상에 제동… '동반 사퇴' 압박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국회에서 전격적으로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로, 마침내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원내대표 사퇴를 전격 선언함으로써 친박계의 '비대위 구성 일방통행' 수순에 제동을 거는 한편 계파 간의 세 대결을 '링' 위로 끌어올렸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2일 오후 국회에서 김광림 정책위의장,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와 함께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데 대해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지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했다"며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의 전격적인 사퇴는 이정현 대표에게 일격을 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사퇴 선언에 앞서 이정현 대표와 사전 조율이나 의사 연락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9일, 이정현 대표는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진석 원내대표와 동반 사퇴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역시 정진석 원내대표와는 사전 조율이 없는 발언이었다.

    탄핵소추안 의결으로 사실상 소속 의원들로부터도 불신임을 받은 당 지도부와, 수 차례의 의원총회를 통해 여러 번 확고한 재신임을 받아온 원내지도부는 처해 있는 상황과 여건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정현 대표가 정진석 원내대표와 함께 물러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의아하다는 비판이 당시에도 있었다.

    그러더니 이정현 대표는 12일 당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시간이 없으니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겠다"며 "당대표로서 당헌·당규와 관행을 포함한 방식으로 비대위원장을 전국위에서 선출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불신임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당 지도부가 비대위 체제 전환에서까지 '일방통행'하겠다는 뜻이다. 당이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정현 대표를 앞세운 친박계가 일방적으로 비대위원장을 선출하고 비대위를 구성하는 것은, 분당(分黨)을 부추기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움직임을 더 이상 눈뜨고 지켜볼 수 없던 정진석 원내대표가 선제적으로 '사퇴 카드'를 던지면서, 앞서 "동반 사퇴"를 공언했던 이정현 대표에게 '당신도 사퇴하라'는 식으로 압박을 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사태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지려 한다"며 "보수정치의 본령은 책임지는 자세라 배웠다"고 밝혔다. 정국이 점차 위중한 국면으로 향하고 있는데도, 끝까지 당대표직에 연연하고 있는 이정현 대표에게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라고 우회적인 비판을 한 것으로 읽힌다.

    아울러 이정현 대표의 뒤에 버티고 있는 친박계를 향해서도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정현 대표가 지난 9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동반 사퇴하겠다"고 한 것은, 친박 핵심들 사이에서 합의된 지령이라는 관측이 파다했다.

  •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12일 오후 국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한 뒤 고개를 깊이 숙여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김광림 정책위의장,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12일 오후 국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한 뒤 고개를 깊이 숙여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당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친박계의 입장에서는, 당의 단합과 단결을 위해 어느 한 계파에도 치우침이 없이 동분서주하는 정진석 원내대표의 행보가 못마땅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이정현 대표 사퇴 시에 정진석 원내대표가 권한대행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도로 '동반 사퇴'를 종용했다는 분석이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불쾌한 일이다. 애초부터 원내대표직에도 연연하지 않는다고 수 차례 밝혔는데, 당대표 권한대행에 욕심이 있을 리 없다. 보수정당의 분열을 막기 위한 진정성 있는 행보였는데, 순식간에 '자리 욕심내는 사람'으로 몰아가버리니 불쾌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해석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5월 3일 원내대표에 당선된 뒤, 당의 새로운 출발과 당의 단합을 위해 몸을 던져 뛰었다"고 회상하면서도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는 내 마음은 가볍지 않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맥락으로 보인다.

    또 "우리 당은 하루속히 책임있는 집권여당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며 "의원 하나하나가 계파를 떠나서 국가적 대의를 쫓고, 서로 자제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도, 친박계를 향한 일침이라는 평이다.

    '자제'와 '양보'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측에서 해야 할 일이다. 당권을 쥐고 있는 친박계가 책임있는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되레 '혁신과 통합을 위한 보수연합(구당 모임)'이라는 미명 하에 계파 모임을 결성해 당권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에둘러 꾸짖은 것으로 읽힌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날 "새 원내대표를 조속히 뽑아달라"며 "그 때까지만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극심한 내홍에 빠져 있는 새누리당은 돌연 원내대표 경선 구도에 돌입하게 됐다.

    이를 두고 정진석 원내대표가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는 시점마저 당의 단합을 위해 슬기롭게 고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퇴조차 당의 단합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해석이다.

    현재 새누리당 친박~비박 간의 계파 갈등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친박계와 비박계가 각자 계파 모임을 결성하고, 서로 "의원 60명 이상을 확보했다"고 공언하고 있다.

    원외(院外)의 광역자치단체장들까지 서로 끌어들이려 광분하고 있다. 세(勢) 유지에 열을 올리는 친박계는 '구당 모임' 결성 명단에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본인의 양해도 없이 집어넣었다가, 12일 오전 이를 부인당하는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했다.

    장외에서 무규칙의 혈투가 벌어지면서 결국 당이 쪼개지는 길로 속절없이 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싸움을 '링' 위로 끌어올려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겨뤄보도록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국면이라는 해석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 쪼개지는 소리가 저잣거리에서까지 들리는 상황"이라며 "서로 세(勢)가 '의원 몇 명'이라고 공언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밀투표를 통해 다시 한 차례 분명히 당내의 세를 가려 결착을 짓는 게 내홍 국면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