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안박 연대 딱 잘라 거절한 뒤 광주행, 언행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아
  •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의원회관에서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단호한 표정으로 자리를 나서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의원회관에서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단호한 표정으로 자리를 나서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달라졌다. 중대 국면에서 단호한 표정으로 예리하게 상대방을 베고, 쉽게 대응할 수 없는 어려운 수를 두는 등 정무 감각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는 분석이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제안에 대해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전당대회 소집 요구'라는 카드로 '멍군'을 외쳤다.

    도중에 국가장(國家葬)까지 겹치면서 안철수 전 대표의 장고(長考) 기간이 열 하루에 이르자, 정치권에서는 온갖 예측이 분분했다. 안철수 전 대표가 결국 수락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상당했다. 친노(親盧) 측도 중진의원 성명에 홍위병(紅衛兵)인 초·재선 의원들을 동원해 압박하는 등 그간 안철수 전 대표를 무릎꿇려온 전통적 수단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철수 전 대표는 보기좋게 딱 잘라 문재인 대표의 굴종 요구를 거절하고, 되레 문재인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전제로 하는 역(逆)제안을 내놓았다. 이 대목에서 많은 국민과 당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음은 물론이다.

    신속(臣屬) 압박을 거절당한 문재인 대표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

    문재인 대표는 1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재선 의원모임 '더좋은미래'에 참석해 "(안철수 전 대표가 내 제안을) 거부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플랜B'나 별도의 시나리오는 따로 없었다"며 "안철수 전 대표가 단결이 아닌 대결을 선택해 당혹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전 대표를 얼마나 '호구'로 보고 있었는지 드러난 대목이다. '네가 감히 나와 대결하자 할 수 있겠느냐'라는 생각을 했다는 뜻이다. 간만 보다 철수(撤收)해서 내게 붉은 목도리를 매어주는 역할을 하지 않겠는가 라고 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철수 전 대표가 이번에 문재인 대표의 목에 매어준 것은 붉은 목도리가 아니라 밧줄이었다. 4·29 재보선과 10·28 재보선에서 연이어 참패하고, 이기는 정당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며 시도한 혁신에도 실패한 문재인 대표의 책임을 묻겠다며 예리하게 찌르고 들어간 '혁신전대 소집 요구'. 문재인 대표로서는 거절했다가 당이 쪼개지면, 야권 분열의 책임을 온통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정치권 관계자는 "상대방을 당혹스럽게 하는 게 정치고, 하자는대로 하면서 주도권을 다 내주는 것은 하수의 행태"라며 "예전의 안철수 전 대표에게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면모"라고 혀를 내둘렀다.

    문재인 대표의 제안을 단칼에 잘라버린 안철수 전 대표가 직후 광주에 내려간 것도 탁월해진 정무 감각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표 사퇴 요구를 견인하고 있는 게 호남 민심이다. 광주는 호남 민심의 심장부다. 호남 민심이 원하던 '문안박 연대 거절'이라는 수를 둔 뒤,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에 내려가 민심을 수렴하며 자연스레 호남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됐다.

    기실 안철수 전 대표가 처음 정치권에 대두됐을 때만 해도 호남권이 '호남의 사위' 안철수 전 대표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높았다. 그러던 것이 연이은 '철수(撤收)의 정치'로 실망감만 키워왔다.

  •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의원회관에서 단호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가 의원회관에서 단호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를 되돌리기 위함일까. 이번 안철수 전 대표의 광주행에서 내지른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다. 단호한 표정까지 곁들여 철저히 정치적으로 계산된 발언을 담고 있다는 평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광주행 2일차인 1일 광주방송 '모닝와이드'에 출연해 "문재인 대표 체제로는 총선을 못 치른다는 결론이 나온 상태에서 혁신전대 아니면 다른 안이 있겠느냐"며 "이번 주내로는 결론을 내는 게 좋다"고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

    그러면서도 전날 광주 혁신토론회에서 한 청중으로부터 "'간철수(간보는 철수)'가 아니라 이제 '강철수(강한 철수)'가 된 걸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평가받은 것을 소개하며 "(광주가) 과분한 사랑을 주는 데 대해 항상 빚진 마음을 갖고 있다"고 호남 민심 앞에서 자세를 낮췄다.

    아울러 "왜 호남만 물갈이돼야 하느냐"며 "수도권을 포함, 모든 곳에서 공정하고 투명히 평가해서 공천을 주는 게 옳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남권의 불만 여론을 낳고 있는 비노(非盧) 표적 학살용 '호남 물갈이'에 각을 세움과 동시에, 수도권의 친노·운동권·486이야말로 진정한 혁신 대상이라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친노 일각에서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는 '문안박 연대'에 대해서는 재치 있는 말로 '확인 사살'하기도 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광주 포장마차에서 청년간담회를 가진 뒤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 연대' 제안에 대해 "본인 입으로 이야기할 때는 자기 이름을 맨 뒤에 넣어 (안박문 연대라든지) 불러야 하지 않느냐"며 "(제안을 듣자마자) 그 생각부터 들었다"고 대번에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강철수'로 거듭난 안철수 전 대표의 행보가 '중대결단'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문재인 대표는 '총기난사' 김상곤 혁신위의 실패한 혁신안에 대한 고집스러운 미련을 갖고 있다. 그 길만이 공천권을 전횡해 친노 계파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안철수 전 대표의 혁신전당대회 소집 요구를 받을 수가 없다. 양측이 강대강(强對强)으로 맞설 경우, 안철수 전 대표가 끝까지 '강철수'의 면모를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정치권 관계자는 "안철수 전 대표는 과거에는 당내에서도 친하다 싶은 의원이 없고, 의총장이나 본회의장에서도 홀로 우두커니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곤 했다"면서도 "이제는 다르다. 의원회관에서도 다른 의원들과 잦은 만남을 갖고 있고, 정무 감각이 빼어난 정치인들로부터 두루 조언과 자문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안철수 전 대표가 탈당한다고 하면 따라나설 의원들이 원내교섭단체 수준은 될 정도까지 왔다"며 "'강철수' 평가에 스스로 흡족해 해도 될 정도로, 이제 정치를 좀 알게 되신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