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살인' 스틸컷
    ▲ ⓒ'어떤 살인' 스틸컷

     

     

    지은(신현빈)이 겨눈 총구는 과연 가해자 남성 셋만을 향한 것이었을까? 신체적 장애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돈, 가족조차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지은은 살면서 여성으로서 당하면 안 될 참혹한 일을 경험하고 말았다. 게다가 경찰이란 공공기관은 오히려 그녀를 ‘꽃뱀’ 취급하며 ‘요즘 년’이라 칭하기까지 한다. 유일하게 가족 같던 오랜 친구마저 남자친구에게 매일같이 처참하게 폭행을 당하며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단지 여자여서만은 아니리라 본다. 지은이 스스로 가해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약자’에 대한 세상의 불온당한 태도 때문이다. 성폭력 범죄가 23분 35초마다 1건씩 발생하고, 해당 범죄율이 10년 사이에 3배로 급증한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이제는 피해자가 아닌 이들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뉴스를 통한 성폭행 보도가 범람하는 수준까지 이른 요즘, 사람들은 이 끔찍한 사건들에 둔감해질 대로 둔감해진 듯하다. 아무리 지인이 그런 비참한 일을 겪어도 한 다리 건넌 관계라면 “어떡해...”라는 짧은 위로밖에 건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 ▲ ⓒ'어떤 살인' 스틸컷
    ▲ ⓒ'어떤 살인' 스틸컷


    “강간당한 여자 태도는 어때야 되는 건데?”

    여 형사 자겸이 동료 형사의 지은에 대해 “피해자처럼 보이진 않는데요?”라는 말에 발끈한다. 피해자를 오히려 가해자로 의심하고 보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지은은 이럴 바엔 가해자로 나서기로 결심한다. 지은의 “이미 전 그날 죽은 거예요”라는 힘없는 한 마디 속 ‘그날’은 단순히 그녀가 참혹한 일을 당한 때만을 일컫는 것은 아닐 터다. 사회로부터 비꼬는 듯한 눈초리를 받고, 가시돋힌 무의식의 한 마디를 들었던 ‘날들’에 대해 지은은 주체적 심판을 내리려 한다. 리볼버를 능숙한 자세로 꺼내드는 그녀의 태도는 현실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적극적이다.


    지은의 반 공개처형이 정당방위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언쟁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 유사 복수 사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피해 여성이 되레 가해자로 형사처벌을 받은 판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은의 복수극을 관찰자적 시점으로 담담하게 따라다니며 그녀 행동에 당위성을 시사, 간접적으로나마 실제 피해 여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해소해주는 대변 역할을 한다. 지은이 거침없이 당기는 방아쇠는 굳이 피해 여성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여성이 아닌 남성들에게도 그 카타르시스가 관통한다.


    나약했지만 반전을 시도하는 지은은 배우 신현빈의 사슴 같은 눈망울과 가녀린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멍울 가득한 에너지로 사뭇 아이러니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그래서 더 호소력이 있다. 신현빈의 외모와 극중 상황은 야생에서 사자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사슴’ 그 자체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그녀의 세상을 향한 매서운 눈빛만큼은 맹수 그 이상이다. 신현빈은 자신을 괴로움과 고통의 극한으로 몰고 가는 상황 속에서도 크게 인상 찌푸리지 않는다. 그녀는 과정 자체에 충실할 뿐 결과 따위는 걱정치 않았던 것이다. 


    일단 지은은 세상에 사연을 터놓았다. 이제 그 한 많은 이야기를 우리 개개인이 얼마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단계가 남아있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어떤 살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닌 '말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내용을 단순히 지나가는 하나의 유사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지은들’이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발생할지 모르는 현실이 너무나 소름끼치지 않은가. 28일 개봉.

  • ▲ ⓒ'어떤 살인' 스틸컷
    ▲ ⓒ'어떤 살인'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