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현빈 ⓒ'어떤살인' 스틸컷
    ▲ 신현빈 ⓒ'어떤살인' 스틸컷

     

    영화 ‘어떤 살인’(감독 안용훈)만큼 처절하고도 슬픈 복수극이 있을까? 어릴 적 당한 사고로 말을 하지 못하는 지은(신현빈)은 이 억울한 사연에 더한 처참한 사건을 겪게 된다. 어느 날 세 명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말이다. 이후 지은은 자신의 사연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


    지은은 여성이자 노동자이자 언어장애자로서 사회적 약자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이 영화를 연출한 안용훈 감독의 세계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살인’의 메시지는 지은이 당한 사건으로 인해 시작되며 그가 선택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지은의 행동으로 가장 억울한 ‘어떤 약자’가 ‘어떤 강자’를 응징하는 구성을 띠게 된다.


    이 영화 중 특히 주목해야 될 부분은 약자인 지은이 한 번도 남을 먼저 괴롭힌 적이 없다는 점이다. 지은은 영화 속에서 ‘어떤 강자’들이 성폭행으로 대표되는 극악무도한 폭력을 ‘먼저’ 행사했기에 복수를 계획한다. 이는 세상 모든 폭력이 악의 시발점으로만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작용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작용 또한 그에 해당될 터.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일을 당한 사람은 누구든지 복수를 욕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살인’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보이던 ‘사이코패스의 살인극’이라는 도식화된 스릴러가 아닌 마음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인물에게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전투극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 극 중에서 살기 위해 죽이는 모습은 성폭력 피해자가 어디까지 처참하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트라우마를 겪은 한 명의 인간이 어디까지 극한의 행동을 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에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살인’처럼 그 가해자를 직접 살해하는 건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하지만 여성에게 ‘성(性)’은 대체 불가의 목숨과 동일시 될 수 있는 차원의 존재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 고귀함이 무너졌을 때에는 누구든지 참혹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여성에게 ‘성폭행’이란 몸은 살았어도 마음을 죽게 만드는 살인과 같은 것일 터.


    결국 ‘어떤 살인’은 ‘살인자들’에 의해 마음이 죽게 된 피해자의 ‘처절한 응징’이다. ‘어떤 살인’은 여성 관객들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남자친구, 삼촌, 아버지, 오빠, 남동생, 남편들이라면 더욱 시선을 모을 영화라고 평가된다. 영화 속에서 지은은 자신이 겪는 슬픔을 관객들에게 ‘차가운 울림’으로 줄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매우 그릇된 ‘성(性)문화’의 단면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우리들의 왜곡된 ‘성(性)’ 의식이 달라짐에 따라 아름다운 ‘성문화’는 확장될 수 있겠다. 세상 가장 슬픈 복수극인 ‘어떤 살인’은 28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