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改新敎의 역사적 사명

    反共자유민주체제의 수호와 자유통일은 신도들의 의무



  • 趙甲濟   
      
    헌법 속으로 들어온 성경

    改新敎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이유는?

    독일 학자 막스 베버가 쓴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The Protestant's Ethic and Spirit of Capitalism)》이라는 책은 1905년에 나왔다. 수필체로 쓴 이 책은 자본주의의 발전이,
    종교개혁 후 루터와 칼빈의 사상이 퍼진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였다.
    특히 칼빈의 神學(신학)을 계승한 장로교와 청교도 등 개신교가 淸富(청부) 사상을 확산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사상적 근거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맡은 바 일을 天職(천직)으로 여기고 신앙적 열정으로 몰입하여 돈을 벌고 근검절약의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인간은 아무리 착하게 산다고 해도 천당에 간다는 보장은 없다. 구원받을 사람인가, 아닌가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결정하고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세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누가 구원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구원받지 못할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사치하고 낭비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런 생활태도는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이런 긍정적 人生觀(인생관)과 직업관 및 구원관이 자본주의 정신의 기초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서 개신교가 퍼진 나라에서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그리고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점을 드는 이들이 많다.

    국가적 차원에서 改新敎(개신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는 지금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이다. 이어서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영국, 미국이 칼빈주의를 主流(주류) 신학으로 수용하였다. 이들 나라는 지금도 一流(일류)국가이다. 아시아에서 보수적 改革(개혁)신앙으로 불리는 칼빈주의가 主流的 위치를 차지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최근 연구는 文盲率(문맹률)에 초점을 맞춘다. 改新敎가 번성한 나라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이유는 성경의 보급으로 文盲率이 낮아진 것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 지배 아래에선 평신도는 聖經(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1229년 툴루즈 종교회의는 가톨릭의 평신도는 聖經을 소지해선 안 된다는 결정을 하였다.
    타라곤 종교회의는 성직자들에게조차 聖經의 소지를 금지시켰다.
    1408년 영국 옥스퍼드 종교회의는 성경의 번역도 금지시켰다.
    종교개혁가들은 이 금지령을 거부하였다.
    改新敎는 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신앙인의 의무로 규정하였다.

    마틴 루터는 1522-34년 사이 新舊約(신구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改新敎가 퍼지는 나라에선 문맹률이 낮아졌다. 문맹률이 낮은 나라에선 새로운 기술과 과학을
    배우는 이들도 많아졌다. 자연히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문맹률이 낮아진 것과 改新敎의 확산은 관련이 있다.
    특히 여성文盲率이 낮아진 데는 성경읽기가 큰 역할을 하였다.
    改新敎의 확산이 한국의 근대화(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승만, 김일성, 기독교

    마태복음 6장33절은 이렇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義(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는 영어 성경에서는 His Kingdom, 즉 하나님의 나라로 적혀 있다. ‘구하라’는 말은 구출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추구한다는 뜻, 찾는다는 뜻인 Seek로 되어 있다. 義는 正義(정의)라는 의미인 righteousness로 적혀 있다. 이 正義는 인간의 정의가 아니라 His righteousness, 즉 하나님의 正義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로움을 찾으면 너희들이 갈구하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正義가 바로 서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로마서 14장17절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義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正義 있는 평화 속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평화만 있고 정의가 없으면 그 평화는 독재자의 평화가 될 뿐이다. 반대로 正義만 있고 평화가 없다면 살벌해서 살 수가 없다. 정의, 평화, 행복이 성령 가운데서 조화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일 것이다.

    그런 나라를 이 땅에 세우겠다는 일념을 가진 분이 바로 140년 전 한국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건국-호국의 지도자 李承晩(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뒤에는 기독교인 학살자가 되었지만 북한의 수령 金日成(김일성)도 기독교 집안에서 났다.
    아버지 김형직은 1911년 미국의 기독교 단체가 만든 미션 스쿨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은 창덕학교 교장 강돈욱 장로의 둘째 딸이었다. 반석이란 이름도 성경(베드로가 盤石이란 뜻)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강반석은 고향인 칠골교회의 집사로 봉직했다. 金日成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매주 교회에 나갔다. 주일학교에서 金日成의 외할아버지 강돈욱은 성경을 가르치고, 그의 육촌동생 강양욱은 소년 金日成의 주일학교 담당 교사였다.

    북한정권을, 주체사상이란 종교를 믿는 사교 광신집단으로 해석하여 신도 수 기준 세계 제10위의 종교단체로 올리는 통계도 있다.

    초대 대통령 李承晩 박사는 원래 전주 李씨 양녕대군[태종의 長子(장자)로서 세종대왕에게 王位(왕위)를 양보한 사람]의 후손으로서 끈질기게 과거 시험에 도전했으나 낙방을 거듭한 사람이었다. 李承晩이, 갑오경장으로 과거 시험이 없어지자 좌절해 있을 때 친구의 소개로 배재학당에 나가면서 미국인 선교사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李承晩이 守舊(수구)세력에서 급진 개화세력으로 바뀌는 매개 역할을 기독교가 수행한 것이다.

    남북한 두 지도자의 기독교적 공통점은 여기서 끝난다.
    김일성은 만주로 가서 공산주의와 만나고 李承晩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가서 자유민주주의와 만나기 때문이다.  

    사랑과 생명의 신념으로 무장한 사람

    李承晩 대통령은 미국에서 명문 대학을 나오고 지도층 인사들과 대등하게 교제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나라를 잃은 이 젊은이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한국 독립의 문제를 놓고 담판했고, 프린스턴 대학교의 대학원생 시절에는 미래의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총장의 총애를 받았다.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프린스턴 대학에서 한국인 최초의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은 서양과 동양의 사상을 통합한 바탕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투시하고
    대한민국 建國(건국)의 날을 내다보면서 그 미래를 설계하였다.
    그는 미국 문명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지 않은 무서운 자주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추대됨으로써
    한민족의 모세 역할을 하게 된다.

    1945년 8월15일 한민족은 미국 젊은이들의 피로써 해방되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은 20만 명이 넘는 戰死者(전사자)를 내는 희생을 치른 끝에 日帝(일제)를 무찌르고 한민족을 해방시켰다.

    1945년 해방 직후 이승만, 김일성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귀국하였다.
    김일성은 증오의 과학(공산주의)으로 무장한 스탈린의 꼭두각시가 되어 돌아왔다.
    李承晩은 사랑과 생명의 종교(기독교)에 바탕을 둔 人權(인권)과 자유의 이념(자유민주주의)을 신념화한 지도자가 되어 돌아왔다.

    李承晩 박사는 한국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의 속삭임에 넘어가던 1920년대부터 벌써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간파하였다. 그는 “공산주의는 콜레라와 같다. 인간은 콜레라와 함께 살 수는 없다”고 말하곤 했다. 李承晩 대통령이 이렇게 빨리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독교인의 눈으로써 공산주의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덕분일 것이다.

    이러한 李 박사는 건국할 때 한국을 미국과 같은 기독교 사상에 기반을 둔 민주국가로 만들려는 꿈을 지녔다. 반면 스탈린식 최악의 공산주의에 혼을 판 김일성은 인간생명을 하나의 물건으로 보는 唯物(유물)사상에 젖어서, 外勢(외세)를 끌어들여 同族(동족)을 치는 민족반역의 남침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기도로 시작된 나라

    1948년 5월31일 制憲(제헌) 국회 제1차 회의, 즉 開院式(개원식)에서 임시의장으로 추대된 독실한 기독교 신자 李承晩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李允榮(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기도로 시작된 나라가 되었다.
    李承晩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建國된 것은 자신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소련 군대가 북한을 해방시켜준 것을 말하지 않고 김일성의 抗日(항일)유격대가 북한으로 진공하여 해방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李承晩의 겸손과 김일성의 오만과 날조가 대조적이다.

    북한에서는 스탈린이 써주는 시나리오대로 서양 사상사의 쓰레기통에서 끄집어낸 사회주의를
    교리로 삼고 狂信(광신)과 증오와 분열과 거짓선동의 범죄단체를 만들어 여기에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간판을 달았다. 북한의 헌법과 국호는 북한사람들의 참여 없이 스탈린과 소련 정치국이 만들어준 것이다.

    李承晩은 미국을 설득하고 때로는 맞서기도 하면서 건국을 주도하였고,
    같은 시기에 김일성은 스탈린의 면접시험에 합격하여 지도자로 선택되었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남북한의 건국을 주도하면서, 기독교 사상에 뿌리를 둔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증오와 선동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 독재 체제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두 개의 이념, 두 개의 종교 대결 시대로 들어간 것이다. 공산주의 對 자유민주주의,
    주체 광신교 對 기독교, 즉 증오와 사랑, 거짓과 진실의 대결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主流가 기독교

    지금 많은 한국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김일성·김정일을 ‘사탄의 세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父子(부자)가 하나님을 僭稱(참칭)하고 기독교인들을 학살하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김일성 김정일은 인간이 가진 善惡 兩面(선악 양면) 중에서 惡의 성질을 자극하여 인간을 凶器(흉기)로 만들었다. 흉기로 돌변한 인간들이 이 강토를 피로 물들였다. 서양처럼 同族(동족)학살의 전통이 없었던 한국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고 죽이는 同族相殘(동족상잔)의 피비린내가 공산주의가 퍼지는 곳마다 풍기게 되었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힘을 빌려 주일 새벽에 동족을 치는 6·25 南侵(남침)전쟁을 도발하여 약 300만 명의 人命(인명)을 희생시켰고, 그의 아들은 장기집권의 편의를 위하여 개혁 개방을 거부함으로써 약 300만 명의 주민을 사실상 굶겨죽이고도 호화와 사치를 극한 생활을 했다. 100만 명은 유태인 수용소보다 더 지독한 강제수용소에서 사라졌다. 父子가 합쳐서 700만 명의, 지구보다도 더 무겁다는 인간생명을 앗아갔다.

    이 사탄의 세력에 魂(혼)을 판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거짓 선지자가 되어 남한에서 국가를 분열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악용하여 파괴의 논리를 확산시키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풍요를 누리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敵(적)그리스도에게 바친 채 대한민국을 멸망으로 몰고 가려 한다.

    김일성·김정일 父子의 惡行(악행)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이 健在(건재)하고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 덕분이다. 우리 기독교는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의 역사 속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의 기적, 그 주체세력은 바로 기독교인들이었다.

    1. 기독교는 開化(개화)의 主役(주역)이었다: 주로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개신교가 선교와 교육과 의료 활동을 통하여 한국인들과 손잡았다. 기독교를 매개로 하여 韓美(한미) 우호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런 관계 속에서 李承晩이란 기독교적 자유민주투사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2. 기독교는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3·1 독립선언문 서명자 33명 중 16명이 기독교도였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日帝의 우상숭배 강요에 반대했고 순교함으로써 암흑시기에도 기독교 정신의 불씨를 지켜냈다.

    3. 기독교는 建國의 主體(주체)세력이었다: 李承晩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기독교 정신, 반공정신, 자유민주주의의 터전 위에 세웠다. 制憲국회 개회식은 기도로 시작되었다.

    4. 기독교는 反共(반공)의 중심이었다: 북한 무신론 정권은 기독교를 박해하고 교인들을 남쪽으로 추방한 뒤 괴뢰 정권을 세웠으나 기독교는 남한에서 강력한 반공민주의 요새를 건설하였다.

    5. 기독교는 護國(호국)의 보루였다: 6·25 때 한국을 지킨 핵심 세력은 기독교적 민주주의로 무장한 서방의 자유진영이었고, 북한 출신 기독교 장교단이었다.

    6. 기독교는 근대화의 생활철학을 제공했다: 기독교 정신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좋은 곳에 쓰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행위라고 가르쳤다. 한국 기독교는, 16~17세기 유럽에서 칼빈주의가 그러했던 것처럼 근대화시기에 필요한 자본주의의 직업 노동 윤리를 제공한 것이다. 위선적인 淸貧(청빈)사상이 아닌 기독교적이고 적극적인 淸富(청부)사상이 근대화 시기 한국인들을 부지런히 일하도록 만들었다. 淸貧사상은 가난한 것이 善(선)이라고 가르쳤지만 淸富사상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더욱 善한 일이라고 가르친다.

    7. 한국의 기독교는 민주화운동의 요람이었다: 기독교 정신의 자유, 평등, 인권 사상은 한국의 근대화와 함께 진행된 민주화의 논리적 바탕이 되었고 교회는 민주화의 중심이며 민주화 운동가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였다.

    8.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의 기독교는 다가오는 자유통일의 시기에는 십자가 軍兵이 될 것이다. 사탄의 세력인 김정은 정권을 無力化시키고 북한주민들을 구출하여 북한을 민주화함으로써 한반도 전체를 자유화하는 역사적 임무를 기독교가 맡고 있다.

    9. 한국의 기독교는 一流국가와 一流시민을 양성하는 정신적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빌라도式 방관의 죄

    한국 기독교의 이런 역사적 사명과 역할은 오늘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하나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탄의 세력임이 분명한 김정은 정권과 그 추종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하나님을 僭稱(참칭)하는 김일성 一家(일가)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사탄의 유혹이 기독교 내부에까지도 번지고 있다. 기독교인이 김일성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북한동포를 외면하고 대한민국을 敵으로 돌리는 것이며, 사탄과 친구가 되어 하나님과 敵對(대적)하겠다는 것이다. 김일성과 친구가 되겠다는 것은 또한 한민족의 해방자였고 대한민국의 구원자였던 미국과 원수가 되겠다는 뜻이다.

    김정은을 싫어하지만 그와 싸울 필요는 없고 그냥 이웃처럼 지내자는 평화공존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다수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악과 싸우지 않는 크리스천은 크리스천이 아니라 빌라도이다. 로마 총독 빌라도가 여러 번 예수님을 살려주려고 애썼다는 사실을 참고한다면 사도신경의 빌라도 비판은 너무 가혹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예수님의 生殺(생살)여탈권을 쥔 사람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로마 총독 빌라도였다. 그가 비록 예수님을 살려주려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만한 용기만 있었다면 예수를 보호할 수 있었다. 그는 대중선동에 맞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良識(양식)을 갖고 있었으나 그 良識은 신념화되지 못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예수의 살인자로 빌라도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9장12절은 이렇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었다가는 자신이 로마 황제에 반역하는 자를 도운 것으로 될까봐 예수를 처형하기로 한다. 유대인들의 선동에 굴복한 것이다.

    빌라도가 범한 죄과는 ‘방관의 죄’라고 불린다. 방관하지 않고 행동했다면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힘센 자가 비겁하여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억울한 사람들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을, 기독교는 가장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예배 때마다 이 사실을 想起(상기)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잔인하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김정은을 동정함으로써 북한동포들에게 잔인한 자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스스로의 얼굴을 성경의 거울에 비쳐봐야 할 것이다.  

    헌법과 성경

    대한민국 헌법과 성경은 중심 가치가 비슷하다. 인간의 존엄성과 진실, 정의, 자유를 강조한다. 이승만을 매개로 하여 대한민국 헌법 속으로 들어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은 개신교의 개혁 정신을 토양으로 발전해왔다.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의 유명한 구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실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神聖(신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창조되었으며, 그런 평등한 창조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받았는데 생명의 保全(보전)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거기에 속한다.>

    *1904년 李承晩(이승만)이 獄中(옥중)에서 쓴 ‘독립정신’의 한 구절: <부디 깊이 생각하고, 고집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힘껏 일하고 공부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자유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스스로 活力(활력)이 생기고, 관습이 빠르게 변하여 나라 전체에도 活力이 생겨서 몇 십 년 후에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나라를 세우는 根本(근본)이다.>

    *李承晩 대통령의 건국 선포일 연설(1948년 8월15일):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러는 더디기도 한 것이지마는 義(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惡(악)을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民權(민권)과 개인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민주政體(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사상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기본적 요소이므로 남과 대치되는 의사를 발표하는 사람들을 포용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분자들이 民權(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정부에서 가장 專力(전력)하려는 바는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근로하며 고생하는 동포들의 생활정도를 개량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국제通商(통상)과 공업을 발전시킬 것입니다. 농장과 공장의 소출을 외국에 수출하고, 우리에게 없는 필요한 물건을 수입해야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위의 역사적 文書(문서)들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기본권을 定義(정의)하고 있다는 데 공통점이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 토마스 제퍼슨은 인간의 기본권을 생존권, 평등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으로 규정하였다. 국가도 개인의 이런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고 人權의 바탕이 되는 人間觀(인간관)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이런 思想(사상)은 그 뒤 後發(후발)국가가 민주제도를 건설할 때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19세기 말 시작된 한국의 開化(개화)운동은 미국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자유민주주의를 理想(이상)으로 삼게 된다. 그 理想을 가장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가장 줄기차게 실천하였던 이가 李承晩이었다. 그가 온 몸으로 담아내었던 開化의 꿈은 韓日倂合(한일병합)으로 좌절되었으나 그 불씨는 이어졌고 三一 독립선언서로 재확인되었으며 드디어 대한민국 헌법에 자리 잡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다.

    제퍼슨-李承晩-3·1운동-建國(건국)-憲法(헌법)의 연결망에서 빠져버린 것이 북한이었다.
    북한은 인간생명의 신성함, 人權의 존중, 자유-평등-행복의 세계에서 제외됨으로써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고모부를 처형하는 굿판을 全세계 앞에서 펼친 북한에 비교하면 한국은 천국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번영은 美國과 李承晩, 그리고 기독교적 토양에서 커온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합작품이다.

    위의 4大 문서에 등장하는 키워드는 자유, 생명, 평등, 존엄, 행복, 풍요, 삶의 즐거움 등등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삶을 긍정한다. 인간으로 태어나면 행복해질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오늘날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불행해질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민주공화국의 완성

    우리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民主共和國이다’고 선언하였다. 민주는 국민이 主權者(주권자)로서 선거를 통하여 정부(대통령)를 선택하고 국회의원을 뽑는 代議(대의)민주제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공화국(Republic)’은 뭔가? 한국인들은 국민의 권리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민주주의를 숭배한 반면 체제의 다른 반쪽인 共和主義(공화주의)를 잊고 산다.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과 운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모델은 1776년에 등장한 미국의 정부형태였다. 미국 독립의 영웅들은 대체로 ‘민주주의자’라기보다는 자유와 책임을 重視(중시)한 ‘공화주의자’였다. 그들은, 민주주의 권력의 담보자인 大衆(대중)의 분별력을 의심하고 그들의 변덕을 두려워하였으며, 정부 권력(특히 큰 정부)은 부패하며 억압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경계한 이들이었다.

    토마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공화국이 유지되려면 국민들의 정치적 신념, 관심, 그리고 시민윤리가 함양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시민의 권리 이상으로 시민의 책임과 교양과 자질을 중시하였다.
    시민적 德性(덕성, civic virtue)이 약하면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로 퇴보하거나 선동자들의 노리개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한 여인이 프랭클린에게 물었다.

    “박사님, 우리가 가진 체제가 공화국입니까, 君主國(군주국)입니까?”

    프랭클린의 답은 이러하였다.

    “공화국이죠. 단 여러분들이 지켜낼 수 있다면 말입니다.”

    공화국은 국민들의 것이므로 국민들의 德性과 敎養(교양)과 노력이 있어야 유지된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君主國은 통치자인 君主의 德性에 좌우된다. 共和國에선 주권자인 국민의 자질에 의하여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군주국이나 독재국에선 백성들이 위로부터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권위에 순종, 체제를 유지한다. 공화국은 法治(법치)와 法 집행자인 정부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순종하여야 유지되는 제도이다.

    李承晩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을 ‘제퍼슨 민주주의자’라고 부를 만큼 미국 독립의 정신을 만든
    제퍼슨의 사상을 신생 대한민국에 적용하려 하였다. 미국의 3代 대통령이자 독립선언 기초자인 토마스 제퍼슨은 知人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유라는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를 마심으로써 원기왕성해져야 한다.
    이는 자유의 근본 속성이자 거름이기도 하다.> 

    그는 1810년에 知人(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강조했다.  

    <成文法(성문법)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선량한 시민의 고귀한 의무 중의 하나임을 의심할 바 없지만 그것이 가장 고귀한 것은 아니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지켜내는 것이 더 고귀한 의무이다.>  

    제퍼슨은 자신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한 사회의 궁극적 권력을 안전하게 예치할 수 있는 곳은 국민들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국민들이 충분히 開明(개명)하지 못해 신중하게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는 그 권력을 그들로부터 뺏을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하여 그들에게 신중함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李承晩 대통령은 그 어려운 시기에도 교육, 특히 민주주의 교육에 주력하였다. 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4·19를 통하여 그를 몰아낸 것이다. 李 박사는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다.

    기독교 정신에 뿌리를 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선 모범 기독교도가 되는 길이 모범 국민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헌법 1조, 3조, 4조는 평화적 방법으로 북한노동당 정권을 해체, 한반도 전체에 민주공화국을 완성,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보장할 것을 국민들에게 요구한다.
    기독교인은 국가와 종교 사이에 不和(불화)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문제는 핵무장한 공산당의 선동과 폭력으로부터 이 체제를 어떻게 지킬 것이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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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中道 노선 비판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趙甲濟  

    <라오디게아 교회의 使者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證人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富饒(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困苦(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金을 사서 富饒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羞恥(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眼藥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요한계시록 3장 14~19절)
      
       서울시 서대문구 靈泉교회 이용호 목사는 최근 설교에서 이 성경귀절을 갖고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비판하였다.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한 태도'는 每事에 소극적인 자세이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高神派 총회장 출신인 李 목사는 '자신에게 소극적인 태도는 그렇다 치고, 공동체에 소극적인 자세는 惡이다'고 했다. '함께 하는 일에서 소극적인 자세', 즉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자세는 공동체를 망치고 공동체의 정신을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세를 우리는 흔히 '어중간하다'고 표현한다. 정치적 용어로는 中道가 여기에 해당한다.
      
       '음식에 비유하면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맛이 납니다. 과일은 차야 맛이 납니다. 국은 더워야 맛이 납니다. 국이 식으면 맛을 잃듯이 사람은 미지근하면 자신의 역할을 상실합니다. 인간은 차야 할 때가 있고 뜨거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차고 냉철해져야 분별력과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열정이 있어야 추진력이 생깁니다. 엔진은 加熱되어야 차를 앞으로 가게 합니다. 생각할 때는 차게, 일할 때는 뜨겁게 해야 합니다.'
      
       李 목사는 냉철해야 할 때 미지근한 사람, 즉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물가에서 노는 아이처럼 위태위태하여 일을 함께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머리는 차게, 가슴은 뜨겁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대한민국이 미지근한 나라가 아닌가 생각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북한정권에 대하여는 분노하고,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는 북한동포에 대하여는 눈물을 흘려야 하고, 대한민국에 대하여는 고마워해야 하는데 차지도 덥지도 않는 자세, 즉 뜨뜻미지근한 것이 한국인들의 살아가는 방식 아닌가?
      
       요한계시록은 그런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그런 이들을 입에서 토해버리고싶다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富者이고 紳士라고 自慢한다. 하나님 눈에는 그런 자들이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은 자들'로 보인다. 성격이 뜨뜻미지근하면 善과 惡을 분별할 줄 몰라 자신의 수치를 모른다.
      
       김정일이 惡黨이고, 북한동포가 동정받아야 할 사람이며, 대한민국이 고마운 존재임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아무리 잘 살아도 마음이 메마른 진정한 가난뱅이이고 인격적으론 벌거벗은 자인데 그럼에도 부끄럼을 모른다. 이런 상태는 차야 할 때와 뜨거워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여 늘 미지근한 자세를 취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李明博 정부는, 法治와 교육과 安保문제에까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中道노선을 적용하려고 한다. 그런 국가 지도층이 통일문제에 대하여도 미지근한 자세를 취하게 되면 김정일 정권이 무너져 내리는 지금의 이 결정적 순간에서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싸움에 몰두함으로 大局과 大勢를 놓치고 역사의 罪人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