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박지원 만찬 회동에서도 '같은 만남, 다른 설명'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태호 후보.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태호 후보.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4·29 재보선을 앞두고 동교동계의 지원을 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권노갑 상임고문 등 당 원로 간의 만남의 자리가 급거 취소됐다.

    당초 문재인 대표는 5일 오전 권노갑·임채정·김원기 상임고문과 함께 '원로와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서울 관악을에서 만남을 가질 예정이었다.

    이 지역에서 친노(親盧, 친노무현) 정태호 후보가 비노(非盧) 김희철 전 의원과의 경선에서 불과 0.6%p 차이로 승리하면서 당의 분열상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데다, 그 빈틈을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만남은 '최고위원단과 상임고문단의 간담회'로 명칭이 바뀌고, 장소도 관악을에서 여의도 당사로, 다시 국회 당대표회의실로 변경되다가 당일 아침 돌연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간담회가 취소된 표면상 원인은 "참석대상이 갑자기 변경되면서 상임고문단의 참석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핵심관계자는 이날 간담회 취소 직후 배경 설명을 자처해 "억측은 말아달라. 당초 문재인 대표와 권노갑·임채정·김원기 상임고문만 만나려다가 다른 이들도 함께 만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논의가 확대돼, 재조율 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재인 대표 측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2일 4·29 재보선의 초계파 지원을 위한 이른바 '원탁회의'를 소집할 때도, 회의 일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물론 의제와 다른 참석자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아 '불통' 논란을 자초했었다.

    이날 원탁회의는 비노 핵심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참석하지 않아 '반(半)탁회의'에 그친 바 있다.

    이번 간담회도 갑자기 상임고문단 전체와 최고위원단 전체로 참석 대상을 늘리려다보니 일정 조율이 원활치 않을 수밖에 없어, 결국 좌초되고 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 재보궐선거에서의 동교동계 지원 여부와 관련해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재보궐선거에서의 동교동계 지원 여부와 관련해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3일 채널A 〈쾌도난마〉에 출연해 불쾌감을 피력하며, 문재인 대표를 향한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재보선 지원과 관련해 문재인 대표의 전화 한 통을 받았을 뿐"이라며 "전당대회가 끝난 뒤 문재인 대표를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불쾌감을 내비쳤다.

    이어 "원탁회의 통보가 왔지만, 전남대 특강이 먼저 잡혀 있었기 때문에 선약을 지키러 갔다"며 "(문재인 대표를 돕는 것은 안 된다는) 동교동계 결의로부터 나도 자유로운 몸이 아니기 때문에, 명분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문재인 대표가 모양새를 만들어줘야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나아가 "나는 다른 사람 지원을 잘해 이름이 '지원'"이라며 "지난해 (6·4 지방선거) 광주시장 선거 때 윤장현도 힘껏 도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전략공천을 해,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후보가 자기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후보보다도 문재인 대표의 처신이 문제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셈이다.

    실제로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호남 민심은 친노에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정치는 정략보다 진정성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4일에도 KBS와의 통화에서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호남 민심에는 이른바 친노 진영이 선거 때 표만 달라고 할 뿐, 끝나면 등을 돌리는 세력이라는 불신이 있다"며 문재인 대표가 직접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액면 그대로의 설명을 넘어 문재인 대표와 동교동계 간의 접점 찾기가 난항을 겪고 있고, 이에 따라 새정치연합의 4·29 재보선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동교동계는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총력 지원했으나, 박 전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표에게 분루를 삼켰다.

    특히 전당대회 막판 이른바 '여론조사 경선 룰 유권해석 변경' 논란까지 벌어지면서 문재인 대표와 동교동계 사이에는 치유하기 어려운 앙금이 남게 됐다는 분석이다.

    관악을 후보 당내 경선에서 친노 정태호 후보에게 0.6%p 차이로 분패한 비노 김희철 전 의원이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정태호 후보를 돕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에도 김희철 전 의원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권노갑 상임고문이 직접 참석하는 등 동교동계는 김 전 의원에게 힘을 실었으나, 당내 경선 결과는 김 전 의원이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승리하고서도 여론조사에서 뒤집혔다.

    동교동계 등 비노 그룹은 번번이 친노의 '여론조사 장난질'에 농락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간담회의 급거 취소에 따라, 4·29 재보선에서 동교동계의 지원을 얻으려던 문재인 대표의 전략에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관악을에서 전통적인 '민주당' 성향의 호남 표심의 외면 속에 악전고투하고 있는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는 당초 이날 간담회에 직접 참석해 "'선당후사가 뭔지 보여주겠다'는 큰 결단을 내린 상임고문들을 만나서 고견을 듣고, 지난 27년간 지켜온 관악을 기필코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간담회 자체가 취소됨에 따라 '없던 일'이 됐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5일 저녁 여의도 모처에서 만찬 회동을 가졌으나, 회동 내용에 대한 설명이 엇갈리는 등 좀처럼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5일 저녁 여의도 모처에서 만찬 회동을 가졌으나, 회동 내용에 대한 설명이 엇갈리는 등 좀처럼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한편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5일 저녁 6시 40분부터 8시 20분까지 약 1시간 40분 동안 여의도 모처에서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표는 4·29 재·보궐선거와 관련해 간곡히 도움을 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회동 직후 브리핑을 통해 "상호 긴밀한 의견을 나눴고 이야기가 잘 됐다"며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렸고,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권노갑 상임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사들과 잘 의논해 (선거를) 돕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지원 전 원내대표 측의 설명은 달랐다. 둘이 같은 장소에서 함께 저녁을 먹은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측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대표가 여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설명하며 간곡한 협력을 요청한 것은 맞다"면서도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이른바 동교동계는 호남 민심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심각성에 대해서 설명했다"고 전했다.

    나아가 "오늘 논의된 사항에 대해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권노갑 상임고문 등 몇 분들과 협의해 명분 있는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로 정리해 연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의 브리핑과 비교하면 △오해가 다 풀렸다 △선거를 돕도록 하겠다 라는 핵심적인 내용이 빠져 있다. 이처럼 같은 모임에 대해 다른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현재 양 측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