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國式 진보(進步)세력은 자유민주주의의 적(敵)

    북한에서의 자유란 ‘탈출의 자유’ 뿐이다.

    김필재   

    영국의 보수주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정당을 “여러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는 어떤 특정원리에 입각해서 그들의 합치된 노력을 ‘국가의 이익’에 헌신하기 위해 결합된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버크의 논리를 한국의 역대 ‘진보정당’에 적용하면, 이들 정당은 대개 국시(國是)인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추종했기 때문에 ‘급진․좌파’(radical left) 정당으로 규정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진보’(進步)라는 용어를 정치적으로 쓰면 공산주의 또는 친공(親共)이란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대 진보정당은 크게 ▲초창기(해방~1959년) ▲침체기(1960~1986년) ▲준비기(1987년~1996년) ▲활성기(1997년~현재)로 구분되며, 활동 형태상으로는 ‘공개’(합법 정당) 조직과 ‘비공개’(비합법 정당) 조직으로 나누어져 이중적 구조를 띄어왔다.

    건국 이후 북한과의 직․간접적 연계 속에 활동해온 진보정당의 계보와 활동은 아래와 같다.
  • 작성자/김필재 
    [해외칼럼] 한국 진보는 민주주의의 敵
    한국은 현재 확장일로에 있는 진보세력들에 의해 언론의 자유, 관용의 정신, 그리고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잔악무도한 정권을 피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에게 공격(attack)을 가하기 시작했다. 
  • ▲ 아이단 포스터 카터
    ▲ 아이단 포스터 카터
    “나는 당신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말할 권리는 끝까지 보장한다”는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의 명언이 있다.
    이 말속에는 계몽주의와 근대 시민 사회의 기본 가치가 된
    두 가지 핵심 가치가 담겨있다.
     바로 ‘언론의 자유’와 ‘관용의 정신’이다. 
    언론의 자유란 현대 민주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다는 권리이며
    관용이란 나와 타인의 생각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원리이다. 
    이에 대한 논쟁과 토론의 과정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더 살찌우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성숙한다.

    北, 공산주의-왕조체제 중간국가 한국은 지속적으로 민주화되어 왔다. 
    1987년을 기점으로 군 출신 정치가들은 정계에서 물러났다.
    이후 반체제 인사였던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특히 탄핵에서 기사회생한 아웃사이더(outsider)노무현이 돌아옴으로써 한국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시험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와 반대로 북한 사람들의 경우 지도자를 마음대로 뽑을 권리도 없다.
    북한은 현재 공산주의와 왕조체제의 중간 단계에 있는 국가이다. 
    언론의 자유, 관용의 정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북한에서의 자유란 ‘탈출의 자유’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직한 궁핍과 학대에 시달려온 탈북민들이
    한국에서는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4월 20일 탈북민들은 서울에서 ‘자유북한방송’이라는 인터넷 방송국을 개설했다.
     
    그러나 탈북민들 이 300만원을 모금해 만든 이 방송국은 한 달도 안돼 문을 닫을 상황에 처해있다. 최근 자유북한방송이 입주한 건물의 주인이 외부 압력으로 인해 문을 닫을 것을 종용했으며 이 달 말까지 방송국은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일은 놀랍고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건물주중 한 사람인 김창순 북한연구소 이사장은 최근 끊임없는 협박전화와 인터넷 비방메일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방송국의 대표 김성민씨의 경우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어느 여자로부터 “이 반역자, 조심해야 할 거야” 혹은 “없애 버리겠어”등의 협박전화를 끊임없이 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진보는 민주주의의 敵 볼테르의 명언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탈북민들에게도 언론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실제 상황은 이와는 매우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적(foe)들이 언론의 자유, 관용의 정신, 그리고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 술 더 떠 이미 적들은 승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그들의 고루한 가치관(old values)을 밖으로 표출했을 뿐이지 진정한 진보라고 할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김정일에 대한 비난을 하면 반역자로 간주되는 상황이다. 왜 한국인들은 독재자를 비호하고 피해자는 공격하는가?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계속 자신들에 대해 정당화하라. 그러나 세계는 당신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원제] Double jeopardy for North Korean defectors 
    [필자] 아이단 포스터 카터(Aidan Foster-Carter) 영국 리즈(Leeds)대 명예선임연구원 
    [출처] 홍콩 인터넷 언론 '아시아 타임즈', 2004년 4월17일

    번역/정리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