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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만만회' 의혹을 처음 제기한 뒤, 최근 이른바 '정윤회 파문'이 불거지자 "김기춘 실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며 대여(對與) 공세의 최전선에 나선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그리고 그 '정윤회 파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수첩을 보고 문체부 국·과장의 인사를 지시했다는 것은) 대충 맞는 정황"이라고 폭로함으로써 의혹을 크게 키운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그런데 유진룡 전 장관이 장·차관의 지위에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발탁한 사람이 다름아닌 박지원 의원이라는 점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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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룡 임명은 칭찬, 면직은 비난했던 박지원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은 현 정부 들어 마치 변사가 무성극 해설하듯 유진룡 전 장관의 진퇴(進退)에 맞춰 평을 해왔다.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초대 문체부 장관으로 유진룡 전 장관을 내정했을 때, 박지원 의원은 "아주 잘한 인사"라고 호평했다.
이어 올해 7월 정성근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해 후임자가 미처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이례적으로 유진룡 전 장관이 면직됐을 때, 이를 강하게 비난한 것도 박지원 의원이었다.
박지원 의원은 당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소신 장관은 면직하고 예스 장관만 필요하다면 왜 장관직을 두느냐"고 비난했다.
장관직 면직 사태 때 이를 비난한 것은 대여 공세의 차원에서 그렇다 치더라도, 임명 때 "아주 잘한 인사"라고 칭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둘 사이의 인연이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각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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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천됐던 유진룡, 문화부 공보관으로 전격 발탁한 박지원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 국립국어연구원 부장으로 발령난 유진룡 전 장관.
행시 출신이 산하 기관 부장으로 좌천됐다는 점에서 그의 커리어도 정리되는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정권 실세였던 박지원 의원이 2000년 문화부 장관을 맡으며 산하 기관에 좌천돼 있던 유진룡 전 장관을 대변인 격인 공보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최초에는 이 둘의 사이가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문화부 차관 시절 청와대의 인사 청탁을 들이받고 "배 째 달라는 말씀이냐"는 말을 들으며 물러났던 습성대로, 유진룡 전 장관은 자신을 발탁한 박지원 의원도 들이받았다.
박지원 의원이 "당신은 일은 잘하는지 몰라도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꾸짖자, 유진룡 전 장관은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날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에 박지원 의원은 화를 버럭 내면서 나가라고 했지만, 30분 후에 유진룡 전 장관을 다시 불러들여 "내가 생각해보니 당신 말이 맞다"고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 기회 있을 때마다 주거니받거니 칭찬… 돈독한 관계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둘 사이의 관계가 매우 돈독해진 것은 그 때부터였다는 평이다.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박지원 의원과 유진룡 전 장관은 사석에서나 인터뷰 등을 통해 기회 있을 때마다 서로 "정말 소신 있는 친구", "가장 존경하는 역대 문화부 장관"이라며 주거니받거니 칭찬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정윤회 파문'과 관련해 박지원 의원과 유진룡 전 장관이 뜻하지 않게 '공동 전선'을 취하는 듯한 모습을 띄게 된 것에는, 이러한 사사로운 돈독한 관계가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