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혁신은 가죽 벗기는 것, 고통 없는 혁신은 없다"
  • ▲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작은 특권 하나도 내려놓지 못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내라고 닦달하는 모습을 어찌 바라봐야 할까.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은 17일 '보수혁신에 관하여'라는 글을 통해 김문수 위원장이 이끄는 보수혁신특별위원회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혁신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홍일표 의원은 특히 △체포동의 간주 △출판기념회 전면금지 △세비 문제 등 3가지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며 "(의원총회) 토론 과정에서 의원들이 제기한 문제 의식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고 자평했다.

    아울러 "보수혁신위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보고를 한다니, 데이비드 캐머런의 '진보적 보수'나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같이 통큰 미래 비전의 제시를 하는 줄 알았다"며 "너무 세세한 이야기를 했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세세한 것을 따지지 말고 통큰 혁신안을 제시하라'는 반발은 어쩐지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 7·14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이 당선된 뒤 새누리당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김무성 대표는 취임 이후 △관용차 교체 △음주문화 자제 △법인카드 내역 공개 등 '세세한' 혁신을 추진했다.

    지난 9월 2일에는 사무처 당직자 월례조회를 하면서 "낮술을 마시다 걸리면 그날로 제명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날 월례조회에 당직자 200명 중 80여 명 정도만 참석한 것을 꾸짖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당사 외진 곳의 소파를 "낮잠 자기 좋다"는 이유로 치우라고 지시하는 등 사무처 내부 구조를 바꾸는 일까지 일일이 챙겼다. 사무총장 전결사항이었던 당비 사용 내역 보고를 대표가 직접 받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의 이런 행보에 당시 "당 대표가 너무 자잘한 부분까지 일일이 지적한다"며 "사무총장이 할 일을 대표가 하고 있다"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낮술 마시지 않기 △업무 시간에 낮잠 자지 않기 △당비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 등은 따져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혁신인데도 당장 자기 몸이 불편해지니 반발한 것이다. '너무 세세하다'는 것은 마땅히 반발할 명분이 없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찾은 명분일 뿐이다.

    만일 기업이었다면 대표이사가 조회를 하면서 '낮술을 마시지 말라' '낮잠 자지 말라' '법인카드 막 쓰지 말라'고 하는데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대표이사가 소집한 조회에 200명의 사원 중 80여 명만 참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당직자들의 불만이 언론에까지 보도되자, 김무성 대표는 9월 11일 서울시당위원장 이·취임식에서 "거대 담론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게 아니라 당장 눈앞에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고쳐 나가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며 "그런데도 내가 몇 가지 이야기 했더니, 당 대표가 사소한 것을 챙긴다고 하더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혁신은 자기의 껍질을 벗기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작은 것부터 실천이 중요하다"며 "국민이 원할 때까지 변해 신뢰받는 당이 돼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하자"고 부르짖었다.

    애초부터 월례조회에서 앞의 말은 다 빼고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합시다"라고 추상적 구호 한마디 외쳤더라면, 당직자들도 우레와 같은 박수만 치면 될 뿐 힘들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무성 대표도 '뒷담화'를 안 들어도 됐을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반면 새누리당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당이 되는 길은 더욱 멀어졌을 것이다.

  •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2일 국회를 찾은 자리에서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2일 국회를 찾은 자리에서 "혁신이라는 것은 가죽을 벗기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김문수 혁신안에 대한 의원들의 집단반발도 다르지 않다.

    만일 홍일표 의원의 말대로 국회의원의 특권을 빼앗는 세세한 혁신안을 내놓지 않고 통큰 미래 비전 제시만 했더라면 일이 어떻게 전개됐을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하나도 없이 추상적으로 "제3의 길을 본받자"는 둥 "진보도 포용하는 보수가 되자"는 둥 이른바 통큰 미래 비전, 집권 전략만 제시했더라면 의원총회에서 격론을 벌일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면서 추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발표를 마치고 단상을 내려가는 김문수 위원장을 얼싸안고 '정말 혁신안 만드느라 수고하셨다'는 덕담이 오고 갔을 것이다.

    이런 걸 혁신이라 할 수 있을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 12일 국회를 찾은 자리에서, 혁신을 가죽 벗기는 것에 비유한 바 있다.

    홍 지사는 "가죽을 벗기면 얼마나 따갑고 아프겠느냐"며 "고통 없는 혁신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지금 새누리당 의원들이 반발하는 모양새는 마치 고통 없는 혁신안을 제시해달라는 것처럼 보인다.

    세세한 혁신안 하나 실천에 옮길 용기가 없으면서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모습을 보니, 걷기도 전에 뛰려고 한다는 옛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