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질랜드 존스턴 목장을 시찰하는 박 대통령 내외와 박근혜. (1968년 9월 21일)   ⓒ 소장자 이현표
    ▲ 뉴질랜드 존스턴 목장을 시찰하는 박 대통령 내외와 박근혜. (1968년 9월 21일) ⓒ 소장자 이현표


    朴槿惠는 朴正熙의 실질과 능률의 리더십을 배울 때

정보를 장악해야 상황을 장악한다

李東昱 (평론가)  
   
  法家型 지휘통제력의 근원
  
  지휘(Command), 통제(Control), 통신(Communication), 컴퓨터(Computer), 정보(Intelligence)를 요약한 C₄I는 원래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인 1970년대 중반에 空地합동작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고안된 ‘전술지휘자동화 체계’(당시엔 C₃I) 였다. 그렇기는 해도 실제로는 아주 오래 전부터 兵家(法家)의 세계에서 살아온 군인들은 이 개념을 터득하고 실제에 적용해 왔었다. 朴正熙 少將과 육사 8기생들이 주축이 된 5󈽌 혁명과 조국 근대화의 핵심 요체도 C₃I를 바탕한 조직력이었다. 훗날 세계 여러 개발도상국가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새마을 운동’을 배워 가지만 그들이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흉내 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1961년 5월16일 새벽에 朴正熙 少將이 지휘하는 반란군의 지휘, 통제, 통신과 정보력이 政府軍보다 약했다면 그 날의 쿠데타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다.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군복을 벗고 출마한 朴正熙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신생정당인 공화당의 선거캠프가 지휘, 통제, 통신, 정보력을 제대로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에 15년간 선거판을 휘저었다는 야당을 따돌리고 승리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중화학공업 육성을 필두로 하는 조국근대화의 길목에 선 朴正熙 대통령은 C₃I를 유지하기 위해 독재자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維新을 단행했다. 그 維新의 시대에 정부는 ‘민주주의’라는 名分으로 공격해오는 儒家的 민주화 세력을 軍 출신들로 형성된 法家的 국가주의 세력의 힘으로 침묵시키고 본인이 직접 國政을 지휘·통제했다. 
  
  1974년부터 박정희 대통령은 매일 ‘시국대책회의’를 주재했다. 5공 시절의 ‘관계기관대책회의’의 前身인 이 기구가 바로 정권의 의사결정기구였다. 국무총리, 당의장, 정보부장,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고 정보부의 1일정보가 회의의 주요 아젠다가 되곤 했다. 지시가 내려가면 이행 과정이 중간 중간 보고되었고, 점검과 수정과 조율이 소통되었다(Plan-Do- See). 통제력과 통신력은 정보기관에 의해서 작동됐다. 이해가 상충하는 정부 부처 간 회의에서는 정보기관원이 調整官(조정관)이란 이름으로 끼어들어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부처 수장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정돈했다. 정보력은 조정관들의 업무상 도구였다. 
  
  이 당시 공직사회는 공무원을 조선조의 科擧처럼 考試를 통해 임용했으나 그들의 규율은 조선조의 儒家的 통치술과 달리 軍 출신들에 의한 法家的 통치술인 C₃I에 영향을 받았다. 가족주의에 함몰돼 국가관이 없는 儒家的 통치술의 결정적 단점을 박정희 대통령은 法家的 통치술로 보완했다. 朴 대통령은 공직사회를, ‘예의’와 ‘충성’을 기치로 내건 선비집단이 아니라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들로 채웠다.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한 때는 경호실장과 정보부장의 ‘예의’와 ‘충성’ 경쟁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공직사회는 상층부에서 하층부에 이르기까지 ‘능률’과 ‘실질’의 경쟁 터였었다. 선비와 관료가 아니라 기능공과 기술자, 문학자와 문인이 아니라 과학자와 군인들이 1392년 이후 처음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만들어 졌었다. 이것이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바탕이었다.
  
  이제 와서 이 제도의 결점만을 이야기 하지는 말자. 당시 대한민국은 오일쇼크의 풍랑을 뚫고 중화학 공업과 방위산업, 포항제철 건설과 새마을 운동 등 거대 國策사업들을 부단히 추진하던 시절이었다. 월남의 공산화와 김일성의 局地戰 및 땅굴 도발, 영부인 陸英修의 암살과 판문점 도끼 만행 등을 겪던 시절이었다. 1주일이 멀다하고 무장공비와 무장간첩이 출몰하던 시절, 건설과 전투가 병행했던 시절, 대한민국과 국민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놓여 있었던 시절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朴槿惠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여겨졌던 50대 이상의 국민들 중 일부가 세월호 침몰사건과 서울시 지하철 사고로부터 정부의 지도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고 발생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감정적 처사가 아니라 사고 직후부터 보여주는 정부의 매끄럽지 못한 사태수습 능력에 회의를 품기 시작한 것이다. 이념과 철학이 부재한 親朴 진영과 그들이 옹위하는 朴槿惠 대통령이 위협받는 모습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2002년 미선 효순 양 사건과 2008년 광우병 선동 사건을 겪은 愛國-보수 진영이 매우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만약, 작금의 청와대가 조금이라도 위기의식을 갖는다면 이제라도 눈 비비고 박정희 시절의 정책결정구조인 C₃I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朴槿惠 대통령이 부친인 故 朴正熙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자산 제1호가 바로 法家的 지도력의 요체인 C₃I이기 때문이다.

  • ▲ 베를린 장벽을 시찰하는 박 대통령 내외 (1964.12.11)   ⓒ 소장자 이현표
    ▲ 베를린 장벽을 시찰하는 박 대통령 내외 (1964.12.11) ⓒ 소장자 이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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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의 실패는 대부분 정보(Intelligence)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C₃I나 C₄I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코 ‘정보(Intelligence)’이다. 인문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학문으로 哲學을 꼽고, 哲學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과목으로 認識論을 든다. 그 認識論이 현실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의미한다.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대응책이 달라지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흔히 정보를 information이라고 하지만 유독 정보기관과 연관되어서는 Intelligence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 최고 통치권자를 위한 정보는 知性(Intelligence)이 필요한 심도 깊은 판별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송어와 숭어를, 산소통(Oxygen Tank)과 공기통(Air Tank)을 구별할 줄 모르는 자가 정확한 정보 수집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C₃I나 C₄I가 제대로 발휘되는 조직이 작금의 우리 정부에 있었더라면 세월호 사태에 이 정도로 무기력하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정상적인 조직이었다면 우선 Intelligence(정보) 수집 담당자가 가장 먼저 현장에 접근해 디테일한 정보를 채집하고 이를 최고의사결정자의 정책결정과정에 포함되도록 신속조치 했을 것이다. 이때 현장은 사고 현장인 바다 뿐 아니라 선박회사가 보유한 세월호 관련 제반 정보를 의미한다. 특히 乘船인원, 구조와 실종자 수, 화물의 내용, 선박의 내부 구조, 사고 海域의 水溫과 潮流의 특성 등등 사태수습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들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수집되었을 것이다. 책임추궁을 위한 원인분석은 나중의 일이다.
      
      국가기관에 의해 수집된 정보는 정부의 최고결정권자나 최고정책기구에 우선적으로 배포된다. 이유는, 정보가 힘을 갖기 때문이다. 정보를 장악하면 지휘(Command), 통제(Control)에 이어 통신(Communication)도 쉽게 장악할 수 있다. 나아가 컴퓨터(Computer)를 통한 SNS로 각종 유언비어가 난립하는 상황도 통제가 된다. 
      
      사태수습을 책임질 당국이 정확한 정보를 장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차적으로 무식한 언론과 방송들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된다. 어떤 방송사가 헛소리를 보도해도 당국에 의한 정정보도가 나가게 되면 이로 인해 대중의 신뢰도는 달라진다. 全국민이 주시하는 대형사건에서 어떤 방송사가 엉터리 보도를 했다는 사실이 당국에 의해 신속하게 밝혀지면 당국과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축척해 가는 반면, 해당 방송사는 신뢰도를 급속히 잃어버린다. 신뢰를 잃어버리면 煽動力도 잃어버린다. 이는 시청률 저조로 이어지고 광고수입의 급락과 동시에 방송사는 存廢 위기를 맞는다. 이는 능률과 실질이 통하는 시장원리와 동일하다. 정보가 정부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는 일처리의 능률과 실질을 도모한다. 비극적 사건을 능률적이고 실질적으로 수습하면 개인과 국민과 국가의 품격은 높아지고, 선동에 휘둘린 채 감정적으로 처리하면 개인과 국민과 국가의 품격은 추락한다. 외교무대에서 朴槿惠 대통령의 활약으로 국가의 품격을 높여왔으나 이번 비극적 사건의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정보의 실패로 인해 우리의 C₄I가 함량미달임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과 국민의 품격도 디스카운트 되고 있을 것이다.
      
      당국이 정확한 정보를 장악했더라면 민간인 잠수사의 죽음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격앙된 유가족들에게 심리 치료적 접근법을 통해 그들을 진정시키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객선 船體의 특성상 에어포켓이 존재할 가능성이 희박하며, 저체온증의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11도의 수온에서 4시간 이상 생존은 불가능함을 설득해 생존자가 있을 것이란 헛된 기대를 접게 했을 것이다. 17세기의 발명품인 다이빙 벨이 강한 潮流에서는 빈 깡통과 다름없다는 사실도 일치감치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뻔히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악조건 속으로 구조대원들을 몰아넣지 않도록 당국이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그러한 정보기관이 없는 듯하다. 멋들어진 말과 글로 치장한 관료들만이 폼을 잡고 있다가 사건이 발생하자 침묵하는 중이다. 사태 수습을 책임진 당국자는 傷心(상심)한 유가족과 국민들 앞에서 현장을 장악하는 당당함을 보여주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정보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당국자는 엉터리 언론과 방송에 휘둘렸다. 관료들이 유족들에 대한 예의 지키기에 급급해 하는 동안 잠수 전문가와 救難 전문가들만이 떠밀리듯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중이다. 화려한 여객선이 폭풍도 없었던 바다에서 뒤집어질 정도로 내부가 엉터리였듯이 전문가들을 운용하는 관료조직 내부도 예의와 충성 경쟁에 익숙한 엉터리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우리가 승선중인 ‘대한민국 號’가 다시금 말과 글로써 기술자와 전문가들을 푸대접 하던 士農工商의 바다로 진입한 것은 아닐까.
       
      김정은의 오해가 없기를......
      
      敵과의 격투 중에 나의 눈이 일시적으로 멀어버린 사실을 敵이 알아차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북한의 김정은은 현재 대한민국의 視力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여객선 참사에 대한민국 정부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지휘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김정은은 예의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屍身이 인양되어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儀典(의전)절차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연일 천포 두른 막사 안으로 운구하는 모습에서 김정은은 우리정부의 사건 인식 능력과 지휘 통제 능력을 채점하고 있을 것이다. 자질 미달의 언론과 방송의 보도행태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知力과 청와대의 홍보능력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아울러 朴槿惠 대통령이 선친과 같은 法家的 지도자인지, 민주화 계열의 儒家的 지도자인지 혹은 요설로 혹세무민하는 道家的 지도자인지 김정은은 유심히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부디 그의 판단에 오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