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성택 숙청]은

    김정은을 조종한 배후세력의 작품인가

    김정은은 왜 [장성택 숙청]이 한참 벌어질 때 삼지연에 있었는가?


    장진성(뉴포커스)    

    정치국 회의 사진에는 김정은의 절대적 유일영도가 없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가 공개한 정치국 회의 사진을 보면,
    간부들이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것도 지명된 한 사람이 아니라 4인이 동시에 들고 있다.
    똑같은 질문 내용에 포함된 4인의 동시 반응일 수도 있지만,
    어떤 확인 절차를 위해 묻고 답하는 장면인 것만은 틀림없다.
    혹은 연단에서의 유도 질문에 4인이 동시에 저마다 발언을 요구하는 손으로도 보인다. 
      

  • 김정일 生前(생전)에는,
    김정일이 참석하는 간부 회의란
    결과의 법적 강제성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형식일 뿐이었다.
    지도자의 위대한 領導(영도)를 높이 모신 연단을 향해
    누가 감히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구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구태여 객석을 향해 질문하는 불필요한 절차란 있을 수도 없었다.
    그 순종에 훈련된 북한 간부들이기에 저마다 대답하겠다고 손을 들 담력도 없었다.
     
    달라진 정치국 회의 분위기는 그 뿐만이 아니다.
    김정일이 연단에 앉아있는 회의에서는
    간부들이 함부로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거나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뗄 수가 없다.
    노트에 손으로 뭘 써야 할 때에는 똑같이 쓰고
    귀로 들어야 할 때에는 하나같이 정자세여야 한다.
    그것은 최고 권위를 모시는 북한 간부들의 양심의 자세이기도 하다.
     
    김정일의 눈에 한 번 잘못 찍히면 아침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눈의 동공조차 굳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정은의 정치국 회의에서는
    듣는 사람-쓰는 사람-몸을 돌리는 사람 등 제 각각이다.
    이 사진은 김정은의 유일영도에 집중하지 않고,
    오직 회의 주제에만 집중하는
    現 북한 핵심 권력층들의 과감해진 배짱과 담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국 회의를 며칠 앞둔

    김정은의 평양이탈


    장성택의 행위가
    북한의 발표대로 그렇듯 엄중한 反黨(반당)·反혁명적 종파행위였다면,
    장성택 구속을 결정하는 정치국 회의를 며칠 앞둔 11월 말,
    김정은은 평양을 이탈하여 추운 북방의 먼 삼지연 지역에 가 있어선 안 된다.

    김정일이라면,
    평양에서 장성택 일당의 소탕 작전을 진두 지휘했을 것이다.
    아마 그 전에 장성택을 직접 호출하여
    정치국 회의라는 절차 따위는 필요 없이 수갑을 채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점 김정은은 평양을 이탈하여 삼지연으로 갔다.
    11월30일字 <조선중앙TV>는,
    이를 현지시찰 관행 정도로 보도했다.

    장성택 실각을 국정원이 공개 발표한 날짜는 12월3일이다.
    국정원이,
    다른 문제도 아닌 장성택 실각과 같은 엄청난 소식을
    당일첩보로 무책임하게 공개할 수 없다.
    정보부서의 命運(명운)이 걸려있기에,
    최소 일주일 이상 이중삼중의 확인을 거쳤을 것이다.

    그 설정을 전제로 추론해 본다면,
    장성택 실각은 이미 11월23일 경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쿠바와 말레이시아에 나가있던 장성택의 친인척들을 평양으로 소환한 시점도 바로 그때이다.
    그때는 장성택 최측근들인 리룡화-장수길이 공개처형 된 뒤이다.

    김정은이 삼지연으로 간 11월30일은,
    평양에서 장성택이 실각되어 가택연금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張의 측근들이 잘려나가는 살벌한 숙청이 한참 벌어질 때란 이야기이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삼지연에서 장성택 해임을 결정하는 회의를 진행했다고 했지만,
    이는 장성택 실각과 맞물려 있는 친인척 소환시점과 어긋난다.

    굳이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北方(북방)의 끝자락에서 회의를 할 이유도 없다.
    김정은은 무엇이 두려워서 평양을 이탈했을까?
    혹시 김정은과 장성택을 떼어놓기 위해,
    멀리 삼지연으로 옮겨 놓은 배후세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 객석 절반이 비워진 것은

    김정은 신격화 공백 



    북한이 공개한 정치국 회의 사진에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 메시지가 있다.
    객석이 절반이나 비워진 것이다.

    김정일 때에는 지도자를 모시는 회의는,
    어떤 주제이든 사소한 것까지 무조건 완벽해야 한다.
    최소의 형식인 빈 자리란 있을 수 없고,
    더구나 그런 절반 짜리 회의장면을 對外(대외)에 노출시킬 수 없다. 
     
    그 어떤 회의라도
    전체 인민의 지지와 찬성을 조작하기 위해서라도 객석을 모두 채운다.
    그런데 장성택 구속을 결정짓는 정치국 회의실에는
    앞 부분만 채워져 있고 뒷 부분은 텅 비어있다.
    최고위급 간부들로 한정된 회의라면 더 문제가 된다.

    장성택을 제거하는 정치국 회의는 왜 절반의 객석만 채워져 있었을까?
    북한정권은 권력의 핵심 인물들을 외부에 공개하면서까지 정당화하려고 했을까?
    김정은의 정치국 회의는 왜 최소한의 회의 규율과 원칙을 지키지도 않은 채
    장성택 숙청을 서둘렀을까?
     
    그 결론은 이렇게 단정지을 수밖에 없다.
    최고위급들에게만 한정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장성택 온건파 일당의 숙청을 주도한 강경파 세력의 과시용이다.
    경제 竝進(병진) 정책의 한 軸(축)이었던
    장성택 일당(온건파)를 지워낸 흔적이란 뜻이다.
    그 조급함과 은밀함-결집력만 계산했지,
    김정은 따위의 [神格化](신격화),
    [절대주의]는 저 뒤의 텅 빈 객석으로 밀어버린 것이다. 


    [국내최초 탈북자신문 뉴포커스=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