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6 돌맞이 문화행사를 돌아보며!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박정희 의장과 신상옥·최은희 부부 

    1962년 5월 16일 저녁, <제9회 아시아 영화제> 폐막행사가 개최된 서울 시민회관.
     박정희(1917-1979)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행사에 참석,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제작자인 신상옥(1926-2006) 감독에게 금상 트로피를 직접 수여했다. 

    신상옥 감독은 부인 최은희(1926-)씨와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최씨는 남편이 트로피를 받기 전에 박 의장에게 아름다운 자태로 절을 올렸다.
     뜻밖에 정중한 인사를 받은 박정희 의장은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고,
    이를 지켜보던 육영수 여사와 송요찬 내각수반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말로만 전해져 왔던 당시의 그 사진을 보기로 하자!


  • 이 사진은 ‘The Korea Information Service’(대한공론사: 1953년 8월에 창립된 해외홍보기관으로 영자 신문 및 해외홍보용 간행물 등을 발행하다가 1978년 9월에 폐간)가 발간한 영문 계간지 <Korea Photo News>(1962년 여름호)에 등장한다. 
  • <Korea Photo News> 1962년 여름호 표지

    <Korea Photo News>는 대한민국 공보부, 미 제8군, 미 공보원, AP통신 등으로부터 제공받은 사진자료를 활용해서 제작됐으며, 1부당 70센트에 시판됐다. <Korea Photo News>는 1962년 봄호와 여름호만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요즘 찾기 힘든 매우 희귀한 간행물이다. 이 사진자료집 1962년 여름호에 실린 사진들을 중심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군사혁명 1주년 기념 산업박람회>

  • <군사혁명 1주년 기념 산업박람회> 개막식의 테이프커팅을 하는 박정희 의장

    1962년 4월 20일부터 6월 5일까지 경복궁에서 <군사혁명 1주년 기념 산업박람회>가 개최됐다. 정부 각 부처가 후원하고, 한국산업진흥회 주최로 개최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산업박람회였다.

    ‘혁명기념관’, ‘반공관’, ‘경제5개년계획관’, ‘국제관’, ‘기계관’, ‘농림관’, ‘수산관’, ‘공예관’을 비롯하여, 각 지방자치단체관 등 총 36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된 박람회는 관람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 국제관에 전시된 우주비행사 존 글렌 중령의 우주복 모형

  • 1960년대 신혼살림의 필수품 중 하나였던 재봉틀


    <제1회 국제음악제전>

    1962년 5월 1일부터 16일까지 <제1회 국제음악제전> 겸 <5ㆍ16혁명 돌맞이 축하음악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경비는 우리 정부가 부담했지만 외국 음악가 초청을 비롯한 기획은 애국가 작곡가이자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안익태씨가 담당했다. 

  • <제1회 국제음악제전> 개막행사(1962년, 안익태 지휘)

    <제1회 국제음악제전>은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국제음악제 중 가장 호화로운 행사였지만, 소규모의 예산으로 개최됐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행사에는 성악가 게르하르트 휘쉬(아래 사진 참조), 하프 연주자 자바레타, 첼리스트 나바라, 바이올리니스트 오드노포소프 등 세계 정상급 음악가들이 26명이나 참가했다.  

    국내에서는 KBS교향악단 및 합창단, 서울시립합창단, 서울시 음악대학 합창단, 국립가극단 및 국악원 연주자 등이 참가했으며, 5월 2일 안익태의 지휘로 총 650명이 출연한 <교향악의 밤>이 개최됐다. 특히 5월 7일과 9일에는 국내 최초로 외국인 지휘자, 연출자, 성악가들을 초청해서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를 공연했다. 남장(男裝)을 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남편을 구출하는 여성의 정의감과 용기를 다룬 <피델리오>는 관객의 큰 환호를 받았다. 

  • 독일 성악가 게르하르트 휘쉬

    <피델리오>를 연출한 인물은 바로 독일의 전설적인 성악가 게르하르트 휘쉬(Gerhard Huesch, 1901-1984)였다. 그는 오페라 연출이외에 가곡발표회를 개최함으로써 국내 팬들에게 독일 가곡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잠시 휘쉬가 부른 슈베르트의 ‘비둘기 전령(Die Taubenpost)’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http://www.youtube.com/watch?v=PRi1tmrXxog

    ‘비둘기 전령’은 슈베르트의 최후 작품이며, 인간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비둘기의 선행(善行)을 빌려 자기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된 세태를 준엄하게 꾸짖는 노래로서,
    가사는 아래와 같다. 

    난 편지배달 비둘기 한 마리를 고용 했다오. 
    이 녀석은 헌신적이고 충실하지요. 
    목표물에 도달 않고는 결코 중간에 서지 않고,
    또한 목표물을 지나치는 법도 없지요.
    난 매일 메시지를 달아 수없이 심부름 시킨다오.
    아름다운 여러 곳을 지나, 애인의 집까지 가도록
    그곳에서 녀석은 창문으로 은밀히 들여다보고,
    조심스러운 눈빛과 걸음으로 그녀에게 
    익살스레 내 인사를 전하고, 그녀 인사도 받아 온다오.

    이제 더 이상 글로 편지를 쓸 필요가 없다오.
    눈물이 담긴 편지를 그녀에게 전달하려 하오.
    오, 비둘기는 내 눈물의 의미를 모른 채
    아주 바쁘게 내 안부를 전할 것이오. 
    낮이나 밤이나, 깨어 있건 꿈이건,
    비둘기에게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라오.
    이동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오!

    피곤하지도 지치지도 않는 비둘기에게 
    길은 항상 새롭다오. 
    비둘기는 먹이나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오.
    비둘기는 내게 너무도 충실하다오!
    때문에 나도 비둘기를 가슴속에 품고 산다오.
    하늘이 준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동반자를.
    녀석은 바로 그리움이라오! 그리움을 아시나요?
    참된 사랑의 메신저를 아시나요?

  • 게르하트트 휘쉬가 연출한 베토벤의 가극 <피델리오> 서울 공연 실황(1962년)


  •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리카르도 오드노포소프의 서울 공연 실황(1962년)

    <제9회 아시아 영화제>

    1962년 5월 12일부터 16일까지 5일간 <제9회 아시아 영화제>가 서울 시민회관에서 개최됐다. 

  • 1962년 5월 12일 <제9회 아시아 영화제> 개막행사

    영화제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폴 등 6개국에서 극영화 21편, 기록영화 15편을 출품했다. 극영화 부문에서는 한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일본의 <위를 보고 걸어라>, 대만의 <태풍> 등이 대상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시사회는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었으며, 5월 16일 저녁 7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 내외와
    많은 영화인이 모여 폐회식을 열고, 우수작품을 시상했다.
     22개 부문의 상 가운데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최우수작품상,
    <상록수>가 남우주연상(신영균) 등 4개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 

    우리 정부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기리고자 세종상 트로피를 제작했다.
    금·은·동 트로피에 김기창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전신상을 자개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 <제9회 아시아 영화제> 트로피와 수상작

    시상식에서 육영수 여사도 기록영화 부문 수장자인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여배우에게 상패를 수여했다. 

  •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배우에게 상패를 수여하는 육영수 여사

    제1회 국제패션쇼

    1962년 5월 19일, 서울의 반도 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는 <제1회 국제패션쇼>가 개최됐다. 1953년 미스 프랑스였던 마리 팔라디를 비롯한 14명의 모델이 70여 벌의 의상을 선보였다.

    1950년대부터 우리나라에도 국내 패션디자이너의 발표회가 있기는 했지만, 국제적인 패션쇼가 국내에서 개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 <제1회 국제패션쇼>에 참가한 한국인 모델

  • <제1회 국제패션쇼>에 참가한 외국인 모델


    박근혜 정부의 문화홍보를 위한 교훈

    1990년 문화공보부를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된 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과거에 비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산과 인력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삶의 질 향상과 비례해서 국민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 과거에 비해 크게 증대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지난 7월 문화융성의 실현과 문화적 가치의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위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문화융성위원회>를 발족시켰다. 

  •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이 정부 기구를 발족시키는 것을 넘어서,
    국민 모두에게 삶의 생기를 북돋우고 행복을 선사하는 다양한 문화의 향연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 정책담당자들은 경제적으로 오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반세기 전, 5.16혁명 1주년을 계기로 국민총화와 문화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기획되고 실천에 옮겨졌던 문화이벤트들을 한 번쯤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