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계 불문율 보수와 연관되면 ‘사망’  

    ‘일베式 어법’ 사용한 전효성 직격탄
    ‘육영수 영화’도 제작 난항

     
     이원우  m_bishop@naver.com 
     

  •  
    지난 14일 오후부터 15일을 넘어서까지 포털 검색창을 뒤흔든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
    4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이었다. 지난 4월말 신곡을 발표한 시크릿은 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던 터였다.

    사달은 시크릿이 SBS FM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하면서 났다. 방송 중 전효성은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 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것은 ‘민주화’라는 단어의 용법이었다.

    민주화라는 말을 ‘시키다’라는 동사와 결합하는 것은 우파 성향으로 알려진 유머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자주 쓰는 어법이다. 일베에서 민주화는 곧 ‘비추천’과 동일하게 사용된다. 재미가 없거나 팩트와 동떨어진 자료가 올라올 때 “민주화 시킨다”는 말이 나온다.

    이 용법을 걸그룹 멤버 전효성이 사용하자 사람들은 그녀를 일베와 연관시키며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전효성은 곧바로 트위터를 통해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한 단어를 사용한 점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불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한동안 시크릿과 전효성의 연관 검색어로 ‘일베’가 뜨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일베가 여전히 ‘상종 못할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크릿에게는 씻을 수 없는 이미지의 실추인 셈이다.

    ‘일베式 민주화’ 확산 계기는 광우병 … 민주주의 과잉 풍자


    정작 전효성이 일베를 이용할 확률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민주화’라는 말이 일베에서 표준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들만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10~20대 사이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포함, 채팅 기능이 탑재된 거의 모든 온라인 게임에서 ‘민주화’는 곧 패배나 일방적인 괴롭힘을 의미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민주화의 의미가 비틀어진 연원을 찾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예를 들어 2004년 7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미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간부들의 사망을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죽음’으로 인정해 줬다. 국가기관이 대법원의 판결과 상반되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한총련은 시위 과정에서 경찰을 실명시키는 등 과격 시위의 ‘아이콘’으로 통용되는 비상식적 집단이다. 그런 그들이 민주화 투사로 인정된 시점부터 이미 ‘민주화’라는 단어는 오염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당시에 일베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민주화’의 의미를 가장 먼저 오염시킨 것은 노무현 정권이다.

    이적단체가 국가기관으로부터 민주화 공로를 ‘인정’ 받은 사례는 한총련 이외에도 많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위대가 극렬 투쟁을 하고 있다 → 민주화가 진행 중이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온라인에서 관찰되기 시작했다.

    다만 자신이 보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보다도 더욱 밝히기 힘들었던 분위기였기에 ‘그들만의 알고리즘’으로 남아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2008년의 광우병은 ‘민주화’의 제2용법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온 국민이 ‘MB OUT = 민주주의 확산’으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대세(大勢)와 다른 의견을 토로했던 인터넷 사이트가 바로 ‘디씨인사이드’, 그리고 거기에서 분화한 ‘일베’다. 광풍이 거셌던 만큼 ‘민주화 장난’은 더욱 자주 시도됐고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오기에 이른다.

    일베가 여전히 고인비하, 지역차별, 19금 발언 등을 ‘작정하고’ 내뱉고 있는 문제 많은 사이트임에는 틀림이 없다. 허나 스스로 ‘루저’임을 인정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그들의 일탈은 ‘왼쪽이 아니면 작정하고 따돌림 당하는’ 민주주의 과잉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좌편향과 민주화가 혼탁한 경계 속에 뒤섞여 있는 한국의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보수임을 밝히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미지가 전부인 연예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종북자 무리들이 싫어요”라고 말했던 배우 배슬기, “책으로만 배우고 입으로만 전해들은 세대들이 왜 그리 그 분(박정희)을 욕하는 건지…”라고 말한 이선진, 2005년 한 인터뷰에서 ‘멋지다고 생각하는 남자’에 박정희 前 대통령을 포함시킨 배우 공유 등은 모두 온라인에서 테러 수준의 매도를 당했다.

    ‘그녀에게’로 가는 험난한 길

    상황이 이러하니 보수적 뉘앙스를 풍기는 작품에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것은 매우 눈치 보이는 일이다. 이른바 진보적 색채가 강했던 ‘화려한 휴가’, ‘26년’ 등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개념 있다’는 말을 손쉽게 듣는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흐름이다.

    故육영수 여사의 일생을 다루는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의 제작 난항은 일련의 상황을 잘 요약해서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박정희보다는 육영수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박정희 역에 배우 감우성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은 들썩거렸다.

    특히 “인간 박정희에 끌렸다”는 감우성의 한 마디는 많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실망했다”, “대선 개입이다”는 식의 반응을 끌어냈다. 제작자와의 마찰로 결국 작품에서 하차한 감우성은 “대선시기 중 특정후보 지지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공인으로서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상당 부분 누명(?)을 벗었다.

    배우 한은정이 육영수로 분해 정한용, 가수 김동준 등과 함께 연기하는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는 육 여사가 사망한 8월 15일 개봉을 목표로 현재 제작 진행 중이다. 벌써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작품은 개봉과 함께 다시 한 번 첨예한 논쟁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지만 한 가지는 이미 확실하다. 보수와 ‘스치기만 해도 사망’인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이 작품은 출생과 동시에 ‘이단아’가 될 것이란 사실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