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영웅, 인터뷰 마치고 식사하는데 미군들은"여기 제네럴 팩이 계신다. 어서 와서 경례를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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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방영될,
    <자유광장TV> [사람인트로] 백선엽 장군님 편을 촬영하기 위해
    약 한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왔다.

    오늘까지 총 네번 백선엽 장군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과거 <한국대학생포럼> 대표 때는
    주로 대학생 단체 행사나 안보 강연 등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뵐 기회가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내가 직접 인터뷰어로서
    백선엽 장군의 생생한 역사적 증언과 말씀을
    영상으로 남길 수 있었기에 더더욱 뜻깊은 만남이었고,

    내 개인의 삶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영광스러운 경험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재작년 여름에 6.25 기념 골든벨 행사 준비 당시
    백선엽 장군님께 행사 참석 요청을 드리러 갔었다.

    장군님이 제 손을 꼭 잡으시고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잘 이끌어가야 합니다"라고
    부탁의 말씀을 하실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참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오늘의 주제가 경제발전과 산업화 과정이었던만큼,
    뭉클함을 참기가 더욱 어려웠다.

    인터뷰어로서 냉정과 침착을 지킨 채
    묵묵히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지만,
    백선엽 장군님의 진심어린 호소와 눈빛을 바라볼 때마다
    조금씩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직 내가 나이가 너무 어려서일까?

    "오늘의 대한민국은 절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백선엽 장군님의 이야기는,
    특히 내 마음을 아주 심하게 흔들었다.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쟁영웅에서,
    산업화 과정 당시 전세계를 누비며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몸바친 외교관,
    그리고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산업인 백선엽.

    그 분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되도록이면 논쟁을 피하시려는 그 분의 절제 속에서도,
    안타까움은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대한민국,
    오로지 대한민국만을 위해
    살아온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이라도 쏟아져나올 듯한 눈물을 참으며
    간신히 한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아... 조금이라도 더 담았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고령의 백선엽 장군님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 인터뷰 후에는 특별히 식사 시간을 마련해주셨다.

    백선엽 장군님의 삶을 기사와 책으로 엮으신
    유광종 기자님과 출판사 사장님,
    그리고 백선엽 장군님과 보좌관님과 함께 다섯명은
    미군 영내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용산 미군 영내로 들어가본 경험이 없던 나에게는
    다소 신기한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마치 작은 미국에 온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건장한 미군들이 줄지어 식사를 하러 가는 모습을 보며
    군 복무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늘 인터뷰를 하러 온 나와 유광종 기자님을 위해서
    특별히 점심 식사를 예약해주셔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 곳에서 아주 특별한,
    아니 [이상한] 경험을 했다.

    백선엽 장군님이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그 짧은 동선에서도,

    수많은 미군들이 앞다투어 백선엽 장군님께
    경례를 올렸다.

    뿐만 아니었다.

    레스토랑에 앉아서 식사를
    하기 전,
    하는 중,
    그리고 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미군들이 와서 경례를 올리고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영광스럽습니다"라는 말과 건강-안부 등을 물으며
    진정으로 존경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제네럴 팩"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그들은,
    백선엽 장군님을 마치 미국 장성처럼 대했다.

    물론 미군 역시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백선엽 장군님을 알아보고 경례를 올릴 가능성이 크긴 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군인이어서였을까?

    미군들은 주변 동료에게 손짓하며,
    "여기 제네럴 팩이 계신다. 어서 와서 경례를 올려라"라고
    소개까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창한 영어로 화답하시는 백선엽 장군님과,
    장군님 앞에서 마치 같은 나라의 하급군인처럼
    존경을 올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순간 멍해졌다.


  • 작년 선거철 당시,
    젊은 모 국회의원은
    백선엽 장군을 "민족반역자"라고 지칭했다.

    물론 그 국회의원과 국민 모두에게는
    백선엽 장군을 [민족반역자]로 평가할 [자유]는 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6.25 영웅이든 산업화의 주역이든,
    비판하고 비난할 자유를 허락하는 체제다.

    나는 결코 그러한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든지
    혹은 묵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존중한다.
    그들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러나 그 자유를 과연 누가 쟁취해주었는가?

    수많은 인물들이 오늘의 풍요와 자유을 얻기 위해 희생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6.25를 빼놓고,
    오늘의 자유를 논할 수 있을까?

    김일성의 권력적 탐욕으로부터 휴전선 이남을 지켜내고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기반을 닦은 백선엽 장군에게
    과연 우리 국민은 빚진게 없는가?

    백선엽 장군이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의 값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전쟁 영웅으로서,
    그리고 산업화의 리더로서 앞장선,
    백선엽 장군에게,
    과연 우리는 고맙다는 말을 아껴야만 할 것인가?

    야당 모 국회의원이 당당하게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고
    나아가 전쟁 영웅을 민족반역자로 칭할 수 있는 그 자유,
    그 뜨겁고 소중한 자유의 씨앗을,
    과연 누가 대한민국 땅에 심었는가...

    대한민국 국민은 망각의 국민이 되려는 것일까.
    만약 백선엽 장군님이 명동의 거리를 나선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몇명이나 백선엽 장군님을 알아보고,
    먼저 다가와 경례를 올리고 악수를 청할까?

    아니.
    별탈이 없다면 다행일 것이다.
    혹여나 누군가가 와서 해코지를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미군이 앞다투어 경례를 올리는,
    한 시대의 영웅이,
    대우는 커녕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그런 망각의 사회에 살고 있다.

    망각의 사회 속의, 망각의 국민이 되어버리고 있다.

    과거에 대한 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망각의 국민은,
    미래가 없는 국민,
    비전이 없는 국민,
    성장이 없는 국민이
    되어버린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를 잊어버린 국민이,
    또 다시 전쟁과 비극의 늪에 빠졌던
    숱한 역사적 사례를,
    직접 우리가 경험해야만
    망각의 비극으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