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아, ‘여수장우중문시’를 배웠느냐?

    이현오 /칼럼니스트


     “김정은, ‘여수장우중문시’를 알 리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예견되는 後果를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줄 안다면 바로 지금 물러서는 것이 상책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엄포인가? 허풍인가? 아니면 선제공격을 위한 선전포고 전조 위압(威壓)? 북한의 개성공단 출경 금지조치에 이른 현 남북 관계를 보면서 내외의 시각이 양분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은 5일 북한의 잇따른 호전적 발언과 미 공격 위협에 대해 "여러 이해를 고려할 때 상황이 우려스럽다"며 그러나 "전쟁으로 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발레리 슈냐킨 국제문제위원회 부위원장은 5일 “북한이 한국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며 “북한 외무성이 평양 주재 외국 공관 직원 철수를 권고하고 동해안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이동 배치한 것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고 외신보도가 이를 전했다.

    지금 한반도 상공을 비롯한 육지와 바다, 원해(遠海)와 근해(近海), 평양과 서울의 최고 지도부와 정보기관, 군 지휘부 등 국가 보위의 최고 핵심 기관은 보이지 않는 기(氣)싸움에 막전막후(幕前幕後) 치열한 심리전까지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최근 한 설문조사(북한미래포럼 주최. 3.24, 19세 이상 1,000명)에 의하면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해 우리 국민의 절반이상(51.3%)이 ‘전쟁가능성이 없다’고 해 ‘전쟁가능성이 크다’(43.0%) 를 앞서고 있다. 전문가들 또한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도발 보다 확대수준의 국지전 가능성은 열어두지만 전면전으로의 비화는 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북한은 지난 3월 26일 ‘1호 전투근무태세’(군이 무기에 실탄과 탄약을 장착하고 완전군장을 꾸린 뒤 진지에 투입되는 단계)를 발표하면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에 최고 수준의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언제라도 실전상황으로 돌입하겠다는 의중을 보인 것이다.

    평양이 ‘서울 불바다’와 ‘섬멸적 타격’ ‘벌초대상’을 주장하면 서울은 ‘도발 원점과 지원세력 선 타격 후 나중 보고’ ‘지휘세력까지 타격’ 발언이 불을 뿜는다. 정승조 합참의장은 지난 2월 북한의 거듭되는 공세적 위협에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할 징후가 포착되면 자위권 차원에서 전쟁을 감수하고라도 선제 타격할 것"이라고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반드시 배가되는 전력으로 보복응징을 가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북한군 연합훈련을 참관한 자리에서 “인민군의 본때를 보여주어 원수들을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모조리 바닷 속에 처넣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우리 군 당국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대한 미사일 정밀타격’ 과 같은 발언에 맞불을 놓는 격이다. 군사적 위협과 더불어 고강도 심리전이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남북한은 1950년 6월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 집단의 광기어린 6․25한국전쟁으로 국토가 피폐되고 국민이 도륙된 이후 숱한 고비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1968년 1월 청와대 기습을 노린 1․21무장간첩 사건, 미군 장교 2명이 살해된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해외 순방 중인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노린 1983년 10월9일 아웅산(현 미얀마)테러 사건이다.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되었다. 그리고 다시 2012년, 2013년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로 위협하며 군부 강경 실세들에 좌지우지 되고 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릿광대 같은 스물아홉 김정은 집단에 의해 한반도가 거센 전운(戰雲)에 휩싸이는 양상이다.

    이처럼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상승작용하고 있음에도 서울은 조용하다. 이전과 달라 보이는 게 전혀 없다. 아니 서울만이 조용한 게 아닌 모양이다. 전쟁시발의 심장부가 되어야 할 평양도 매 일반이라고 한다. 오히려 서울에서, 언론 방송이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형국이지 어디에서도 북한의 전쟁 관련 엄포, 협박,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미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장난기에 만성적으로 적응되어서인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둔감해져서인가? 그도 아니라면 위기와 고난이 닥칠 시 조건반사적 위기극복 역량을 갖추어서임인가?

    정전 60년 이래 상상을 초월하는 초긴장 조성이 연일 계속되는 상황 아래서 우리 국민이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까?

    1997년 12월 초유의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한 IMF 구제금융과 2008년 5월 전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뉴욕 발 금융대란에서도 대한민국은 의연했다. 아니 돌파구를 찾기에 전체가 뭉쳤다. 국가와 국민은 고통 속에서 오히려 하나 된 민족으로서 더 강하게 밀착(密着) 되어갔다.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기에 이르렀다. 위기 앞에 지레 겁먹고 두려움에 떨 필요 없음이 입증된 것이다.

    ‘비개인 후 햇살이 더 영롱하고 땅은 더 굳어진다’고 했던가! 최근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의 부국(富國)들이 재정위기로 거덜 국면에 처한 국가들을 보면서 눈앞에 닥친 국난 앞에서 한 치의 동요나 흔들림 없이 위기를 극복해 내는 국민적 의지에 세계인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우리는 그렇게 경이적인 행동, 신기원을 이룩해 냈다.

    그 뿐 아니다. 위기를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 국제무대에서 정치, 외교력을 발휘하고 경제발전을 견인하면서 문화, 스포츠 전 분야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어쩌면 오늘의 이 현상이 짧은 역사이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 속에서 단련되고 문화강국, 문화민족으로 숙성되어 온 우리 민족의 현명함과 강인함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반도에서 결코 전쟁의 비극이 재연되어서는 안 된다. 공멸(共滅)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적에게 평화를 구걸하는 방법으로는 더더욱 안 된다. 빗장을 단단히 잠궈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며 담대하게 나아갈 때 적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고래(古來의 전사가 일깨워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401년 전인 고구려 영양왕 23년 612년 수나라 양제가 3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총사령관 을지문덕 장군은 패퇴하는 척 하면서 적장 우중문 진영으로 들어가 유명한 시(詩) 한수를 남겼다.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다.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귀신같은 꾀는 천문을 구명하고 신묘한 셈은 지리에 통달했네. 전승의 공은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았으면 그치기를 바라오.”

    5언 4구 고체시의 마지막 구절은 앞날을 예측하는 예지와 더불어 강한 자신감으로 적장을 힐문하는 반어법이 나타나 있다. ‘전쟁을 끝낼 것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그만두지 않으면 혹독한 대가를 치룰 것이라는 강력한 의사를 전달’ 하고 있는 것이다.  

    적장(敵將) 김정은이 ‘여수장우중문시’를 알 리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예견되는 後果(후과)를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줄 안다면 바로 지금 물러서는 것이 상책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을지문덕 장군의 시구(詩句)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현오(객원기자,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