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인공씨감자 전문가인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이 지난 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나라 생명공학연구에서 가장 권위있는 국가 연구기관의 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일생을 연구밖에 모르고, 성실하게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거둔 과학자가 왜 스스로 비극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 원인을 밝혀 재발을 막아야 할 때가 왔다.

    정 박사는 1992년 세포조직 배양기술을 이용해 어른 주먹 만한 씨감자를 콩알 만한 크기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세계 32개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세계 4대 식량인 감자 재배 분야 녹색혁명의 신호탄으로 평가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1998년 ㈜미원 계열 대상하이디어가 200억원을 들여 제주도에 세계 최대의 인공 씨감자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2002년 말 대상하이디어가 대상식품에 흡수 합병되면서 이 공장은 문을 닫았다.

    지난해 8월엔 인공씨감자 상용화를 위해 생명연구원 제 1호 연구소기업인 ㈜보광리소스를 설립했다. 하지만 이 회사 전 대표가 국내외 투자 계약 분쟁에 휘말리면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관리 감독 책임을 물어 생명연 측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사 문제와 관련한 투서가 이어지는 등 안팎으로 시달려왔다고 한다.

    결국 그는 스트레스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5월 21일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틀 만에 퇴원해 업무에 복귀했으나 근무 중 낙상사고를 당해 또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정 박사를 보면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상용화하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와 함께 고질적인 ‘연구원장 흔들기’ 풍토를 정화할 때가 왔음을 느끼게 해 준다.
     
    예전에 연구원장을 하던 한 과학자는 “연구원장이 된 다음 각종 시설 공사건과 보직을 놓고 얼마나 치사한 로비가 들어오는지 일일이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압력을 거절하자 음해성 투서에 이은 감사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과학계가 이렇게 외풍을 타서야 어떻게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느냐”고 울분을 터트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 원장을 괴롭힌 것은 자신이 세운 연구소 기업에 대한 투자를 둘러싼 잡음과 투서 등 연구의 본질과는 크게 관계없는 일이었다. 정 박사를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든 것은 말하자면 인재(人災)에 해당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선 세계적인 과학자가 세운 연구소 기업을 통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외부압력은 없었는지 철저하고 객관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두 번째는 연구원장을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몰아넣은 투서는 누가, 어떤 이유로, 누구에게 던졌는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투서에 이은 부당한 압력이 없었는지도 돌아보아 관계자들을 엄격히 다뤄 다시는 연구자들을 뒤흔들며 괴롭히는 일이 종결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만이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고 연구자들의 의욕을 되살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