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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총선때 '반국가단체'총책 영입하려고..

김필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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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7-07 10:53 수정 2012-07-07 11:19

새누리당, 4.11총선 당시 '反국가단체' 총책 영입시도 
  
 문재인 대항마로 '사노맹' 총책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부교수 지목
金泌材    
  
 
[1] 새누리당은 4.11총선에서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反국가단체) 사건 연루자로 박노해 씨와 함께 조직의 총책이었던 백태웅(사진) 하와이대 로스쿨 부교수를 영입하려 했었다.

<문화일보> 2012년 2월6일자 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백씨를 영입하려 했던 이유는 그의 출신 고교가 있는 부산에 출마시켜 민통당 문재인과 맞서게 한다는 것이었다. 

백씨의 영입은 불발로 끝났지만 뚜렷한 이념과 지향점이 없는 새누리당의 행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백씨의 영입을 시도한 새누리당 인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경남 거창 출신의 백씨는 1981년 부산성동고를 졸업, 서울대공법학과에 입학, 1984년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NDR운동권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백씨가 이정로(이것이 정통 정치노선)라는 가명으로 발표했던 ‘한국사회의 성격과 노동자 계급의 임무’ 등의 논문은 NDR파의 교과서로 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좌파 운동권의 한 계파인 NDR파는 민족민주혁명에 의해 남한사회를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을 지칭한다. 이 파는 과거 반제반파쇼민족민주화투쟁위원회(민민투) 계열 제헌의회(CA) 그룹의 후신인 혁노맹(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과 사노맹 등으로 구체화됐다.  

백태웅, 1984년 유시민과 함께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사건' 연루

[2] 백씨는 사노맹 활동이전 反국가단체인 제헌의회(CA) 그룹에서 편집부원으로 활동하며 레닌(Lenin)의 저서를 번역하며 스스로를 ‘혁명이론’으로 무장했던 전형적인 사회주의자이다. 1984년에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사건’에 유시민과 함께 연루되어 구속됐었다. 최근 <조갑제닷컴>이 발간한 《從北백과사전》은 당시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984년 9월17~27일 사이에 林信鉉·孫瀅九·鄭龍範·全基東 등 4명의 젊은이들이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에게 감금된 채 ‘프락치’라는 자백을 강요받으며 폭행당했다. 이 폭행 사건으로 25명이 넘는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柳時敏(경제학과 3년)을 비롯, 尹昊重(윤호중·철학과 4년), 白泰雄(백태웅·공법학과 4년), 李政祐(이정우·공법학과 4년), 吳在瑛(오재영·인류학과 4년), 趙元鳳(조원봉·국사학과 4년) 등 모두 6명이 폭행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징역 10월에서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은 재수생이거나 고시 준비생으로 서울대에 볼일이 있어 들렀다가 학생회 간부들에게 체포되어 교내 곳곳에 감금된 채 폭행당했다. 폭행을 행사한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은 검찰 진술에서 “프락치라는 자백을 강요받으면, 이를 이용해 기관에 항의하거나 학생 데모에 한층 더 불을 지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柳時敏은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자 이에 불복 항소했고, 2심에서 1년 형이 확정되어 복역했다. 그동안 폭행 사건이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라고 언론에 보도되곤 했지만, 실제로는 ‘프락치 사건’이 아니라 ‘민간인 감금·폭행·고문사건’이다.》

 

  MB집권 시기인 2008년 12월, 백태웅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

[3] 백씨는 1991년 시인 박노해(본명 박기평)와 함께 사노맹을 조직,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 국보법 위반혐의로 1992년 체포,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안기부는 사노맹이 고교생들까지 포섭,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등 남로당 이후 최대 조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안기부는 또 사노맹이 1994년까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을 결성한다는 중간목표 아래 공장을 ‘혁명요새화’ 할 목적으로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16개 지역의 69개 공장에 조직원 3백여 명을 침투시켜 공장소조라는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어 폭력 파업투쟁과 정치투쟁을 유도했다고 발표했다.

사노맹은 조직의 안전을 위해 조직의 이름을 일반 회사식 이름으로 불렀다. 예컨대 사노맹 중앙위원회는 대우자동차, 수도권위원회는 제일물산, 영남위원회는 삼테크, 호남위원회는 한양교통 등으로 부르고, 조직원의 직책도 실장, 부장, 과장 등으로 불러 외부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 사노맹 사건 관련자들 중 玄廷德(현정덕, 사노맹 연락책)은 징역 8년을, 박노해의 부인인 김진주는 징역 6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노맹 관련자들은 김대중 정권 출범시기인 1998년 8.15 특사 때 백태웅, 박노해, 남진현이 석방되어 전원이 자유의 몸이 됐다. 이후 백씨는 미국 유학을 떠나 노트르담 대학에서 2001년 법학 석사학위를 받고, 2003년 미국 뉴욕 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박사학위를 받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조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한편, 백씨와 함께 사노맹 사건의 주동자인 박노해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08년 12월22일 ‘민주화운동 보상심의 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조갑제닷컴>

김필재/spoone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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