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左’가 ‘덜 左’를 밀어냈다

  •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 류근일 본사 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지금 민주당엔 나 같은 사람조차 설 자리가 없다... 이 말은 결국 노 대통령조차 설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날보고 왜 지금 민주당이나 진보개혁 세력과 다른 이야기를 하느냐 묻는데 나야말로 변한 게 없다... 변했다면 그들이 변한 거다.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을 공격했던 ‘좌파논리’를 따라간 거다...”
    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던 김병준 씨의 말이다. 그가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와 가진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오늘의 통합민주당이 누구들에 의해 어디로 끌려가고 있는지가 왕년의 인사이더(insider)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대목이다. 막연히 ‘좌파’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도 유파(類派)가 많다. 이는 세계 모든 좌파 역사의 공통된 현상이었다. 아주 온건한 체체내 진보파에서 아주 과격한 반체제 극좌에 이르기까지.

      김병준 씨의 인터뷰 발언은 한 마디로 이런 것이었다. 우파의 눈에는 자못 파격적 좌파로 비쳤던 ‘노무현 노선’까지도 지금의 통합민주당에선 우경(右傾)으로 취급당하고 있다는 것. 김병준 씨가 볼 때는 통합민주당이 그 만큼 더 '먼 좌(far left)'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먼 좌’가 ‘덜 좌’ 내부로 들어와 둥지를 틀고 앉았다가 이윽고 그 숙주(宿主)를 야금야금 먹어갔다는 뜻이다. ‘먼 좌’가 전 세계 좌파역사를 통해 전통적으로 써먹는 통일전선 전술, 또는 합작(合作) 전술이 한국의 범 좌파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 모습이다.

      4.11 총선의 정치사적 의미 중 하나는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좌파권이 명실 공히 ‘먼 좌’의 헤게모니로 넘어가 버린 것.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권이 그렇게 됐었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엔 제도 야권(野圈)이 그렇게 돼 버렸다. 무서운 이야기다.

      국공합작으로 장개석의 중국국민당의 그런 식으로 잡아먹혀 저 넓은 중국대륙이 모택동의 중국공산당 손아귀에 다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그것을 너무나 잘 꿰뚫어보고 있었기에 중간파의 합작노선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출현할 수 있었고, 반세기만에 OECD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반세기만에 그 해묵은 합작노선이 또 등장하고 있다. 1차적으론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 연대의 속사정은 김병준 씨의 말대로라면 “노 대통령을 공격했던 좌파논리를 따라간 것”이었다. 여기서 ‘좌파’란 물론 ‘먼 좌’를 지칭하는 것이다.

      새누리당 비대위마저 서울 강남에 출마하려 했던 이영조 교수의 공천을 어마 뜨거워라 취소한 걸 보면, 합작노선의 공갈협박 위력이 급기야는 비(非) 좌파와 우파 일각에도 슬슬 먹히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사람들이 이걸 알까? 아마 자세히 아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역사는 뭘 잘 모른 채 음모가들의 술책에 속아 넘어가고 휩쓸려 가는 사람들의 조연(助演)과 엑스트라 역(役) 덕택으로 만들어진다. 한국 정치가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가?

    류근일  본사고문/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