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벽화로 담은 컨테이너가 시장 입구상인들 ‘싱생쇼’로 몸도 풀고 흥도 나누고
  • ▲ 지난 여름 시장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초등학생들이 주문진 수산시장을 견학하고 있다.
    ▲ 지난 여름 시장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초등학생들이 주문진 수산시장을 견학하고 있다.

    푸르른 동해 바람이 코 끝으로 비릿하게 스며드는 주문진 수산시장. 펄떡이는 바닷 것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구수한 바닷 말씨가 배어난다.

    여기는 거센 파도처럼 조금은 거친 어부들의 장터가 아니었던가. 주문진 시장이 문화의 옷을 입고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미풍이 장안 필부들의 귓전까지 들려왔기에 어디 강릉에서 한번 놀아보자는 것. 

    주문진항의 첫 인상은 여느 동해의 포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진한 바다 내음, 항구에 늘어선 고기잡이배들, 갓 잡아온 물고기를 놓고 벌이는 어부들과 상인들의 흥정...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수상한 컨테이너 박스를 마주치면서 주문진 시장만의 특별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항구의 야경, 그물을 손질하는 어민들의 하루, 가지런히 생선을 정리하는 시장의 모습 등을 담은 그림이 차근차근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시장의 일상을 담아낸 ‘컨테이너 갤러리’다. 시장 탐방의 출발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한쪽 벽면을 시원스러운 통유리로 마감하고 출입구를 크게 만들어놓아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유도한다.

    컨테이너를 나오면 “시장 해설사입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저를 따라오세요~”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들은 바로 주문진 토박이 어른들로 구성된 ‘시장해설사’다.

    이들은 한 해 동안 시장을 찾는 3,000여명의 관광객들에게 시장 가이드를 해준다. 해설사를 따라 시장의 역사와 문화, 삶을 아우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기가 시장인지 관광지인지 잠시 넋을 놓기가 일쑤다.

  • ▲ 상인들이 주문진수산시장의 체조인 싱생쇼를 하고 있다.
    ▲ 상인들이 주문진수산시장의 체조인 싱생쇼를 하고 있다.

    시장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상인들이 다 같이 일어나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게 웬 ‘환영의 찬가’인가 했더니 고객용이 아니라 상인들 스스로를 위한 쇼란다. 주문진 수산시장의 명물인 ‘싱생쇼’(싱싱생생쇼)는 상인들의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체조 시간’으로 출발했다.

    ‘싱생쇼’의 주제 음악은 ‘주문진 시장의 가수’로 소문난 심부자(61.대도상회)씨와  김동억(50.동남방앗간)씨가 만들었다고 한다. 즐겁게 일하기 위해 다함께 부르는 일종의 노용요인 셈이다.

    상인들이 시도 때도없이 노래를 부르니 손님들도 흥에 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 생선을 손질하면서도 노래는 끊이지 않았다.
    주문진 종합시장 상인회 손영수 회장은 “시장 상인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니 관광객들이 더욱 신나하시는 것 같다. 상인들이 즐겁게 일하니 수산시장 분위기가 활기차게 변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시장의 옥상은 동해의 전망대이자 페스티벌 무대로 활용된다. 지난 2009년 생긴 야외공연장 ‘꽁치극장’이다. 여기서는 매년 여름 록페스티벌인 꽁치음악제가 열리는데 수천명의 관광객과 시민들이 방문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꽁치극장에선 이 밖에도 정기적으로 어린이 공연과 국악퓨전콘서트, 시장시네마, 겨울 북어축제 등 풍성한 행사가 열려 많은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강릉시가 주관하는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일어났다.  

    전에는 상인들조차 찾지 않던 한적한 옥상을 극장으로 바꾼 이는 이 프로젝트의 문화컨설팅을 맡은 ‘감자꽃 스튜디오’다.

    우중충했던 회색 벽엔 명태, 오징어, 양미리, 대구, 곰치, 복어가 헤엄쳐 다니고 새 옷을 입은 공간들은 ‘동해의 거울’ 주문진을 담아낸다. 갤러리의 총 책임자는 주문진에서 극장 간판을 그렸던 최수성(70)씨.

    이처럼 상인들의 노력과 외부 작가들의 응원에 힘입어 주문진 수산시장은 문화적 볼거리까지 갖춘 갤러리 시장으로 거듭나 전국에서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