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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兵器 활'의 배경..세계사 바꾼 이것

말발걸이(등자), 한반도는 유럽보다 수백년 앞섰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11-09-16 18:50 | 수정 2011-09-18 21:35

'최종병기(兵器) 활'의 배경: 세계사를 바꾼 아주 사소한 발명

말발걸이가 기병(騎兵)전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분야에서 한반도의 3국은 유럽보다 수백 년 앞섰다.

趙甲濟

 '최종병기 활'을 대한극장에서 보았다. 미국의 활극에 못지 않는 재미와 긴장이 있었다.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는 활로 시작되었다. 중국이 우리를 동이(東夷)라고 부른 것은 '동쪽에 사는, 큰(大) 활(弓)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고구려 창건자 주몽, 신라를 연 박혁거세, 조선 개국의 영웅 이성계가 다 명궁(名弓)이었다. 한국에선 칼 잘 쓴 사람보다 활 잘 쏜 사람 이야기가 더 많다. 한민족의 활 실력이 지금도 세계적인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발명중에서 가장 하찮게 보이는 것이 있다. 말의 발걸이, 즉 등자(鐙子)이다. 이것과 말과 활이 결합되면서 몽골 草原 지역의 유목민족들이 기병군단(騎兵軍團)을 만들어 그 뒤 1,000년 간(소총이 발명될 때까지) 군사적 헤게모니를 잡고, 유럽과 중국과 중동의 문명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말발걸이의 기원에 대해선 두 가지 주장이 있다. 농경민족, 즉 중국의 한족(漢族)이 발명하여 서기 3세기 후반 북방기마민족한테 전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란계(系)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족(族)이 서기 전 6세기 경에 말발걸이를 발명하여 흉노 등 몽골계 기마민족에게 전했고, 이들이 3세기 경에 중국의 북부를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한족(漢族)들 사이에 퍼져갔다는 주장도 있다.
 
 말을 타는 사람이 발걸이를 사용하면 몸을 안정시킬 수 있다. 활을 쏠 수도 있고 창을 잘 쓸 수도 있다. 발걸이가 발명됨으로써 집단적 기병(騎兵)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보병을 향하여 말을 탄 기병이 창을 겨누면서 돌진하면 말의 무게와 스피드는 기수(騎手)를 통해서 창에 전달되어 무서운 파괴력과 돌파력을 발휘한다.

 
 발걸이가 발명됨으로써 전쟁능력에 크나큰 향상이 일어난 것이다. 북방 유목 민족은 발걸이가 발견되지 않을 때도 말을 잘 탔고 미상(馬上)에서 활을 쏘았다. 발걸이가 발명됨으로써 이들의 기마기술과 전투력, 특히 활쏘기가 더 발전하였다.

말발걸이 유물은 4세기 전후의 신라, 가야 고분에서부터 많이 발굴된다. 여기서 발굴된 발걸이는 쇠로 만든 것과 목심(木心)철제가 있다. 모두가 쌍발걸이이다. 발걸이는 처음에는 하나만 안장에 매달았다. 이 발걸이는 말에 오르기 위한 일종의 디딤돌이었다. 전투용 쌍발걸이는 그 뒤에 나온 것이다.
 
 연도가 확인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쌍(雙)발걸이는 중국 요녕성에서 출토되었다. 무덤의 주인공이 서기 415년에 죽은 것으로 적혀 있으므로 이 철제발걸이는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신라 고분에서 발굴된 쌍발걸이의 제작연도에 대해서 최병현(崔秉鉉) 숭실대 교수는 최고(最古)가 4세기 전반기라고 추정했다. 신라에선 4세기부터 적석(積石)목곽분이 나타난다. 이 고분의 주인공들은 몽골, 만주, 알타이 산맥 등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민족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경주에 와서 정착할 때 이미 쌍발걸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기병 전투력을 가진 전사(戰士)집단으로서 선주민(先住民)들을 정복하고 김씨(金氏)왕조를 세웠다. 신라, 고구려, 백제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먼저 발걸이를 이용한 기병(騎兵) 전투력을 보유하였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는 발걸이로 몸을 안정시킨 기병이 몸을 거꾸로 돌려 활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의 유럽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주로 가야 사람들을 통해서 발걸이는 일본으로 들어갔다. 물론 기병과 함께. 한반도를 통해서 일본에 들어간 이들 기마민족은 발걸이와 활 등 뛰어난 군사력으로 일본을 점령해갔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지배층은 북방기마민족 출신임으로 발걸이를 4세기경부터 사용하면서 일찍부터 기마전술을 익힐 수 있었다. 이 집단이 삼국(三國)과 고대 일본을 만들었다. 발걸이가 역사를 만든 것이다.
 
 유럽에 말발걸이가 전파된 것은 아바르족(族)이란 몽골계 유목민족에 의해서이다. 6세기 전후이다. 그 전에 그리스-로마 기병들은 말을 타고 몸을 안정시킬 수 없어 활을 쏘지 못하였다. 말발걸이가 유럽에 전파됨으로써 귀족들이 전투력이 좋은 기병(騎兵)을 조직할 수 있게 되어 봉건제도가 발단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8~9세기 지금의 독일과 프랑스를 지배했던 프랑크족(族)이 발걸이를 쓰는 기병을 발전시켰다. 영주는 지주(地主)들에게 기병을 유지하기 위한 세금 납부를 명령했고 여기서 왕-영주-기사-농노로 이어지는 중세 봉건제도가 태동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설(異說)도 많다.
 
 유럽은 기병대의 창설과 사용에서 몽골계통에 비해서 매우 후진적이었다. 칭기즈칸 군대가 유럽을 쳐들어가 연전연승(連戰連勝)한 것도 발걸이 기술을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기병전술에서 많이 뒤쳐졌던 일과 관련이 있다.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三國)이 북방기마민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걸이를 사용했고 뛰어난 기마부대를 운영했다는 점을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다. 민족사의 자랑거리를 찾아다니는 매니아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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