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애국 애족의 정신으로 나무를 애호하자"박정희 "한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 희망을 심는 것"이대통령 "오늘 심은나무 1,2년후 다시 보려고 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제66회 식목일을 맞아 경기 여주군 남한강변을 찾았다. 여주군 이포대교 옆 이포보에서 4대강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방문이다.

    치수가 중국의 요순시절부터 내려온 통치의 핵심 요소라면 산림녹화는 근대화 이후 온 나라가 매달린 역점 사업이었다. 이 대통령은 아마도 남한강변을 찾으면서 도산 안창호선생의 ‘강산개조론’을 떠올렸을 수 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각종 연설에서 도산의 ‘강산개조론’을 자주 인용해왔던 이 대통령이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필요성을 강산개조론에 빗대기도 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식목일인 5일 오전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남한강 수변지역에서 지역 학생들과 나무를 심고 있다. ⓒ이오봉 뉴데일리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이 식목일인 5일 오전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남한강 수변지역에서 지역 학생들과 나무를 심고 있다. ⓒ이오봉 뉴데일리 기자

    최근에는 지난달 23일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강산개조론을 다시 인용하며 산림녹화를 강조했다. ‘여러분 가운데 강과 산은 개조하여 무엇하나, 그것도 개조하였으면 좋지만 이 급하고 바쁜 때에 언제 그런 것들을 개조하고 있을까 하시리다마는 그렇지 않소’라는 말로 시작하는 도산 선생의 1919년 강의 내용중 일부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반대 여론이 끊이지 않는 4대강 치수 공사현장에 나무를 심으러 감으로써 치수에다 산림녹화라는 방점까지 찍은 셈이다. 이처럼 산림녹화 하면 떠오르는 지도자가 더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다. 

    4월5일을 식목일로 지정한 것은 1946년 미 군정청. 이날을 택한 것은 24절기의 하나인 청명 무렵이 나무 심기에 적합하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날(음력 2월 25일)이자 조선 성종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1343년)이 바로 이 날이라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산림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런 식목일을 공휴일로 처음 지정한 이가 이승만 대통령이다.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하면서였다. 선각자답게 도산 선생이 강산개조론을 주창했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산림녹화의 초석을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의 기틀이 잡히지도 않은 1950년 전에도, 피 흘리며 싸우던 한국전쟁기간 중에도 “나무를 심자”고 역설했다. 1949년 4월 식목일 즈음에는 “애국애족 정신으로 나무를 애호하자”고 부르짖었다. “사람마다 적어도 여섯주씩 심고 하나도 베지 말기를 작정하며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나무를 보호하고 살리는 것을 직책으로 알어야 할 것입니다”가 이승만 대통령의 말이다.

    일제강점기에 강산개조가 그렇듯 전쟁 중에 나무 심자는 말이 세인들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1년과 52년 4월에도 여전히, 그리고 굳건히 나무를 베어내지 말고 심자고 되풀이 말했다. 그것이 우리 강산을 다시 금수강산으로 만드는 길이요, 나라 사랑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산을 보고 민둥산을 떠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 민둥산에 푸른 옷을 입힌, 산 주인공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을 빼놓고는 한국의 검푸른 산을 얘기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산림녹화와 얽힌 일화는 너무나 많다. 그 중에 박 대통령이 해외 원조를 받으려고 외국을 드나들 때의 얘기는 지금도 회자된다.

    박 대통령은 원조요청 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일본 상공을 지날 때 본 울창한 산과 대비된, 우리의 민둥산에 마음 아파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일본에서 비행기로 들어올 때 첫 번 맞닥뜨리게 되는 경북 동대본산 녹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후 동대본산 사례는 한국 산림조림의 교본이 됐다.

  • ▲ 1969년 4월5일 식목일 기념행사에서 나무를 심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자료사진
    ▲ 1969년 4월5일 식목일 기념행사에서 나무를 심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자료사진

    녹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그린벨트’가 없었더라면?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그 부작용을 상상조차 하기 싫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일 것이다.

    “우리가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땀 흘려 심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희망을 심는 것이요, 또한 이를 정성껏 가꾸어 나가는 일은 곧 나라의 힘을 길러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한 1975년 식목일 담화문만 봐도 박 대통령의 열정이 묻어난다.

    그러기에 UN 산하 식량농업기구 1982년 보고서는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다”라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산림청도 2001년 4월5일 식목일에 이 같은 업적을 기려 박 대통령을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하고 기념비를 경기도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 뜰에 세웠다.

    서울대 이경준 명예교수는 “‘그 때,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한국의 산림녹화는 영원히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며 그의 책 ‘박정희가 이룬 기적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에 적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일 여주군 당남지구 ‘희망의 숲’에서 초등학생 어린이와 나무를 심다 “여러분들과 같이 나무 심은 게 큰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1년 후, 2년 후 심은 게 어떻게 됐는지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어쩜 이렇게 말이 닮았을까.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4월18일 어린이들에게 심을 나무를 나눠주며 “내가 제군들의 집을 일일이 심방해서 자라나는 나무를 구경할지도 모를 것이다”며 웃는 말을 건네면서 잘 심으라고 격려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