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30)

     뉴욕 항에서 영국 리버풀행 기선을 타고 나는 귀국길에 올랐다.

    곧장 일본을 거쳐 부산이나 제물포로 들어가는 배를 탈수도 있었지만 나는 먼 길로 돌아 들어갔다. 미국에 올적에는 태평양을 건넜으니 이젠 대서양과 유럽, 러시아 대륙을 거쳐 세계를 한바퀴 돌아가는 셈이 되리라.

    1910년 9월 3일에 뉴욕항을 출발한 발틱(Baltic)호는 일주일만에 리버풀에 닿았다.
    나는 이제 일본 대사관에서 발행한 여권을 사용한다. 여권 없이는 돌아갈 수가 없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

    조국은 내가 출발하기 닷새 전인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에 병합되었다.
    그해 5월 3일, 조선 통감으로 부임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이 되었는데 일본의 내각총리대신과 동격이라고 했다.

    이제 조선은 일본의 완전한 식민지가 된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빙하의 대륙을 건너갈 때였다. 식당차에서 우연히 합석한 미국인 사업가가 말했다.
    「조선은 일본 덕분에 문명국이 될 기회가 온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경솔한 그 작자는 내 영어가 유창한 것을 듣고는 일본인으로 안 것 같다.

    내가 가만있었더니 사내는 말을 이었다.
    「내가 사업상 조선에 여러 번 다니는데 갈 때마다 몰라보게 발전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거리에는 쓰레기 천지였지만 지금은 깨끗합니다.」

    그러더니 얼굴을 펴고 웃는다.
    「조선 합병을 축하합니다.」
    머리를 돌린 내가 딴전을 보았으므로 사내는 당황한 듯 우물쭈물 하더니 곧 자리를 떠났다.

    이것이 대부분 미국인의 감정일 것이다.
    미국과는 거의 이해관계가 없는 조선 땅이다. 이미 미국에서도 숱하게 겪어본 일이어서 나는 별로 자극도 받지 않았다.

    광대한 불모지 시베리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넜고 그곳에서 경의선을 갈아타고 남대문역에 도착했을 때는 1910년 10월 10일 오후 8시경이다.
    역에는 헌병과 군인이 들끓었는데 마치 전시(戰時) 같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서울 근방에 대규모 군인을 배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군인들을 헤치고 다가온 사내가 소리치듯 외쳤으므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모르는 얼굴이다.  그때 사내가 덥석 내 손을 움켜쥐었다. 말끔한 양복차림의 신사다.

    「선생님, 저 기석이올시다.」
    「아니, 그대가.」
    놀란 내가 기석의 손을 마주 쥐었다. 이시다 주우로의 통역이었다가 내가 미국 공사관에 취직을 시킨 기석이다.

    기석이 눈물로 글썽해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선생님, 미국 박사가 되어서 돌아오셨군요. 장하십니다.」
    「이 사람아, 나는.」

    그때 기석이 내 가방을 빼앗아 쥐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씻는다.
    「어이구, 선생님. 태산이를 제가 제물포까지 데려다 주었었습니다.」
    일본군을 헤치며 나오면서 기석이 다시 눈물을 닦는다.
    「그런데 태산이를 미국 땅에 두고 혼자 오십니다. 그려.」
    기석도 태산이 미국에서 죽은 줄 아는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 내렸으므로 나도 손바닥으로 눈을 씻었다.
    일본군이 승객들을 검문했지만 나와 기석은 그냥 보냈다.

    6년만에 돌아온 고향 산천이다. 밤이었지만 역 앞 광장은 환했다.

    그러나 내 가슴은 그만큼 더 미어졌다.
    이제 이 땅은 내 조국의 땅이 아닌 것이다. 남의 땅이다.
    나는 마치 남의 집에 들어온 사람의 심정이 되어 서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