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25)

     그리고 이틀째 되는 날 오전,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내 옆자리에 같은 박사 과정에 있는 모리스가 앉았다. 모리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리, 소식 들었어?」
    하고 모리스가 소근대듯 물었으므로 나는 시선만 주었다. 무슨 소식인 줄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본 모리스가 말을 이었다.
    「일본 유학생 하나가 어젯밤에 강도를 만나 피살되었어.」
    「......」
    「식당에서 나와 친구들하고 헤어진 후에 당했다는군. 소지품은 다 빼앗겼고 그 자는 현장에서 사살 되었다네.」
    「......」
    「일본 고관 아들이라고 해. 지금 경찰서에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 몰려 와 있다는 거야.」
    「큰일이군.」
    마침내 나도 한마디 했다.

    시바다가 당한 것이다. 윤재술이 계획대로 처치했다.

    그 날은 강의가 없었으므로 도서관에서 오후까지 머물다가 기숙사로 돌아왔더니 옆방인 410호에서 제임스가 찾아왔다. 제임스하고는 어제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방에서 정치학 토론을 했다.

    「리, 조금 전에 경찰이 다녀갔어.」
    제임스가 금발을 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어젯밤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묻더군. 그래서 나하고 밤늦게까지 토론을 했다고 말해주었어.」
    「일본인 강도 사건 때문인 모양이군.」
    내가 말하자 제임스는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 방에 왔다가 간 찰스, 에드윈까지 불러서 증언을 해 주었더니 경찰은 됐다면서 돌아갔어.」
    「고맙군. 제임스.」
    입맛을 다신 내가 창문을 열었다.

    1910년 1월이다.
    어느덧 미국 땅을 밟은 지 5년이 되었다. 지난 해 가을학기에는 하버드에서 학점을 따지 못했던 경제학 한과목을 다시 수강했고 프린스턴에서 박사 과정을 연구한지 만 2년이 되어간다. 어느덧 내 나이도 한국 나이로 치면 서른여섯. 만학도이다.

    시바다가 피살 된 후에 나에 대한 암살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캠퍼스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침식을 무료로 제공 받는다고 해도 잡비가 필요했다.
    그때는 도서관 사서, 학교 식당의 잡일 또는 홀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동양학 강좌를 열어 몇불씩을 벌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을 공부했다. 치열하게 공부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있는 고국을 떠올리면 온 몸이 뜨거워졌고 그래서 책을 들여다 보아야 식었다.

    어떤 때는 책을 읽다가 난데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도 있었다. 죽은 내 아들 태산 또는 고국산천, 만민공동회에서 연설하던 내가 주마등처럼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2월 초, 내가 바랐던 미국 내의 조선인 단체가 통합을 이뤘다.
    맨 마지막에 국민회와 대동보국회가 연합하여 대한인국민회로 대통합을 이룬 것이다. 국민회는 이미 공립협회와 하와이 등의 수십 개 단체가 통합한 단체였다.

    나는 그 즉시로 대한인국민회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지금까지 나는 1908년 7월에 결성된 전 미국 교포 대표자회의에서 발족한 애국동지회 회장 직임만 갖고 다른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뭉쳐야 합니다.」
    나는 프린스턴에까지 나를 찾아온 문양목에게 말했다. 조선 땅에서 개혁을 외칠 때부터 나는 뭉치자는 말을 자주 썼다.

    「뭉쳐야 살아남습니다.」
    그러자 대동보국회 출신 문양목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