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개월간 뉴스타 상사에서 김동수는 여러 가지를 배웠다.
    최용기로부터는 인간들은 서로 이용하는 관계로 엮여져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용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겪어보니 알겠다.

    조직에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물론 뉴스타 상사의 리더는 사장 박한식이다. 그러나 박한식은 리더 자질이 모자랐다. 저 빼놓고 다섯명밖에 안되는 직원 모두를 의심해서 중요한 작업은 제가 직접 나섰다.

    최과장은 물론 제 처남인 오부장, 처남의 처제인 박미향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리더십은 개뿔이었고 각개격파다. 그러다 영업사원은 몇 달이 안가 딴 주머니를 차고 뛰쳐나갔다. 박한식은 김동수에게 반면교사같은 존재였다.

    다음 날 오후 김동수는 인천 부두에 나가 배경필을 만났다. 이번에는 배경필과 14명의 인간 컨테이너가 중국에서 건포도 1200kg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어떤 품목이건 간에 국내 시세가 올라가면 사흘 안에 중국에서 물건을 들여오는 것이다.

    사장 박한식은 언젠가 김동수한테 그것이 바로 국내 가격을 낮춰 소비자를 위하는 효과가 있다고 정색한 얼굴로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지금은 개뿔같은 소리로 안다.

    「어, 120kg이 맞아.」
    자루를 쌓아놓고 기다리던 배경필이 김동수를 보자마자 말했다. 배경필은 지난번 30kg을 빼먹은 양을 김동수가 월급에서 까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김동수는 들은 척도 않고 저울을 꺼내 한 개씩 자루 무게를 달았다. 그리고는 건포도 자루 세 개에 한 개씩 내용물을 꺼내 품질 검사도 했다.

    「앗따, 이 아자씨 꼼꼼하구만.」
    배경필이 옆에서 빈정거렸지만 말리지는 못했다.

    오늘 인간 컨테이너에 여자가 세명 끼어 있었는데 정수민 모녀는 연락을 받았지만 핑계를 대고 빠졌다고 했다.

    검사를 마친 김동수가 배경필을 보았다.
    「1187kg입니다. 13kg이 부족해요. 인정하시죠?」
    「앗따, 정말 이렇게 나올껴?」
    「할 수 없습니다. 창고에서 중량 다시 체크해서 모자라면 지난번처럼 내 월급에서 까진단 말입니다.」

    김동수가 지난번이란 단어에 힘을 주었더니 배경필이 입속으로 구시렁거리고는 더 이상 시비를 놓지 않았다. 1187kg의 인수증을 써준 김동수가 오늘 끌고 온 1톤짜리 탑차에 건포도를 싣고 부천 창고로 향했다.

    오후 6시 반이다. 30분쯤 차를 달린 김동수가 부천 교외의 창고 앞에서 차를 세우자 곧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에이구, 한시간이나 기다렸어.」
    하고 사내가 투덜거렸는데 장익준, 배달꾼중 하나로 최과장과 손발이 맞는 인간이다.

    장익준은 중간에서 물건을 떼어 보관하는 동업자인 셈이다. 그러니 중간에서 떼어먹는 일당은 최용기, 김동수에 창고장 윤씨 거기에다 장익준까지 넷이 되겠다. 장익준이 60kg짜리 건포도 자루 두 개를 빼내면서 웃었다.

    「겨우 10%지만 티끌 모아서 태산 되는겨. 잘 해보라구.」
    김동수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다시 차를 몰아 부천 창고에 닿았을 때 기다리고 있던 창고장 윤씨가 맞았다. 건포도 자루를 내려 저울에 달고 난 윤씨가 1187kg짜리 송장에다 확인 도장을 찍어주면서 물었다.

    「120kg 빼내갔구만?」
    「예, 맞습니다.」

    그러자 윤씨가 웃었는데 조금 전의 장익준과 웃는 분위기가 똑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