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단련 ⑱  

     덴버의 애국동지회 이후로 박용만은 한일무력투쟁에 대비한 청년훈련학교를 설립했다.
    박용만은 과단성이 있고 열정적인 성품이다. 조선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무력 투쟁이 유일한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조선에 박용만같은 애국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무력 투쟁 방법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일본은 막 일어나는 불길 같았다. 그 거친 불꽃에 뛰어드는 것보다 내부의 세력을 더 결집, 교화시키고 외부의 변화를 응용하여야 될 것이었다. 워싱턴 정계의 고위층과 학자, 언론인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확신하게 되었다.

    각 국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국가 간의 의리나 약속 따위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뭔가를 갖춰야 한다. 무력도 없고 결집력도 부족하다면 여론을 움직여야 한다.

    내가 미국 생활에서 크게 감동을 받은 것이 바로 여론, 즉 국민의 소리였다.
    그것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민주국가에서 가장 무서운 힘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미국인의 여론을 조선국에 호의적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희망이 있다.

    그래서 내가 스티븐스의 암살을 말렸던 것이다.
    스티븐스가 암살된 후부터 재미 조선인은 미국인으로부터 차별을 받았고 일본의 조선 통치에 거부감을 보였던 정치인들도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러나 박용만은 스티븐스가 암살되자 만세를 불렀다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었다. 박용만다운 행동이다. 나와 박용만이 함께 일하면 손발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박용만이 나를 찾아왔을 때는 1909년 4월 초였다.
    「형님, 무력 투쟁을 하려면 아무래도 본거지를 옮겨야 될 것 같습니다.」

    내 기숙사 앞쪽의 벤치에 나란히 앉은 박용만이 말을 잇는다.
    「상해나 만주에서 의병을 모아 일본군하고 전쟁을 할랍니다.」
    「의병장이 되겠구나.」
    눈을 가늘게 뜬 내가 박용만을 보았다.

    그 순간 조선 땅에 남아있을 의병장 박무익, 그리고 재석의 얼굴까지 차례로 떠올랐다.

    의병은 필요하다. 내 시선을 받은 박용만이 길게 숨을 뱉았다.

    「이제 조선은 완전히 일본 식민지가 되어서 일본말을 써야 대접을 받는다고 하는군요. 임진년 왜란 때도 이러지 않았습니다. 형님.」
    박용만의 목소리가 떨렸다.

    임진년 왜란 때는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물론 일본군의 앞잡이를 자청하여 향도로 나선 조선인들이 있기는 했다. 주로 천민들로 귀천 없는 새 세상에서 살아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그 당시의 수군통제사 이순신같은 영웅이 있기나 한가?
    국력은 또 어떤가? 일본군이 조총에 잘 훈련된 군사가 있었다면 조선군은 천자총통에 거북선, 그리고 관민(官民)이 일체가 되어 적을 맞았으며 명의 지원도 받았다.

    나는 길게 숨을 뱉았다.
    지금은 고립무원, 내부에서부터 썩어 무너졌다.

    「미국의 조선인 단체부터 통합을 해야 돼.」
    내가 한마디씩 힘주어 말을 이었다.
    「하와이 그리고 미국 서부와 동부의 단체를 통합시켜야 하네.」
    「그렇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박용만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는 보았다.

    미국 땅으로 건너온 조선인 8천여명은 수십 개의 파벌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이윽고 머리를 돌린 박용만이 어둠이 덮여지는 정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형님께 온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