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서 진 황장엽  

      황장엽. 그의 귀순은 김일성 김정일의 밑둥을 파 버린 사건이었다.
    그의 주체사상은 기계적 마르크스 주의에 대한 인간 의지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사상이었다. 이런 유(類)의 사상은 물론 황장엽 씨의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그것을 권력 이데올로기로서 정립한 점에서는 그의 작업은 남다른 차별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남쪽으로 귀순했다. “사람이 굶어 죽는데 사회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고 물으면서. 그의 주체사상이 수령절대주의로 변질당하면서 그의 마음은 이미 김정일 체제를 떠났다. 

     나는 그런 그 분을 망명 초기에 조선일보 지면에서 장문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꼬장 선비였다.그 때 그는 부축을 한 채 자신을 화장실로 안내해 주던 나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당신 아버지가 저쪽에서 당하셨을 때 도움이 돼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
    나는 대답했다. “원래 정치범 근처엔 사람이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 이후 나는 황 선생을 비교적 간간이 때마다 가깝게 만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출판기념회 때, 추석 때, 설날 때 가까운 사람들이 그 분을 위해 점심 저녁 모임을 가질 때면 나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어쩌다가 부득이하게 빠질 때면 “황 선생이 몹시 섭섭해 하셨다”는 전갈을 받곤 했다.
    모임이 있을 때는 김대중 노무현한테 작심하고 대들던 나는 그 분에게서 과분한 격려를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이 끝나고 신문에 쓰던 정기 칼럼도 마감하고 물러앉자 황 선생은 “요샌 어째 조용해?” 하고 꾸짖는 어투로 탓하기도 했다. 

     황 선생은 언젠가 출판 기념회에서 “이게 마지막일 것 같다”고 말했다. 어딘가 쓸쓸하고 처연해 보였다.
    망명한지 10여년, 이리 와서 한 3년만 있으면 김정일이 끝장 날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망할 수도 있었던 김정일을 김대중 노무현이 살려 놓은 건 아닐런지.

    황 선생을 위해 있었던 최근의 진짜 마지막 모임 때 나는 공교롭게도 등에 수술을 받아 참석하지 못했다.
    한 번 쯤 더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그 분과의 작별의 의식을 놓친 셈이다. 애석하다.  

     김정일이 싫어 남쪽을 택한 그를 남쪽은 10년 씩이나 가택연금이나 다름없는 홀대로 대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인사를 한 번 쯤은 만나서 북쪽 엘리트들로 하여금 “아, 탈북하면 대우 받는구나” 하는 심증을 갖게 할 데몬스트레이션이라도 했으면 좀 좋았을까? 정치를 모르고 인적 자산을 활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대책이 없다.  

     87세라는 숫자상으로는 호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870겁의 한은 남았을 터, 남은 사람의 마음이 그래서 시리다. 오랜만에 가족들 만나시길.  

    <류근일 /본사고문, 언론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