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일-중간의 尖閣列島(중국名 釣魚島)분쟁은 中國이 얼마나 主權과 領土에 민감한 나라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번 사건은 비슷한 類의 분쟁에 대해 앞으로 中國이 어떤 방식으로 임할 것인가를 잘 例示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中國이 분쟁과 관련,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외교적 관례나 규칙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여기서 문제의 섬이 어느 쪽의 영토인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다.)  중국 어선이 일본순시선을 들이받았는지의 여부 등 사건의 경위는 아예 무시하고, 日本대사를 오밤중에 불러들이고, 데모를 하고, 商社사원을 구속하고, 稀土류의 수출을 지연시키는 등 모든 것이 大國의 행태치곤 과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中國은 마치 '개와 중국인은 공원 출입금지'라는 말로 상징되는 굴욕적인 과거의 역사에 대해 보복이라도 하겠다는 심리상태인지 모른다.

    이번 일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이어島는 분쟁가능성이 농후하고 그에 앞서 우리 水域 內에서 중국어선이 마음대로 고기를 잡아가도 속수무책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北京올림픽 聖火봉송때에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중국인들의 폭력에 대해서는 어떤 단호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中國이 눈만 흘겨도 西海에서 군사연습을 주저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現實이다. 동맹국인 美國에 대한 기대에도 한계가 있다. 尖閣은 분명 美日방위조약의 범위에 속하지만 미국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日本에 대한 口頭지지만 표명했다. 적어도 대만문제級이 발생하기 전에는 어물쩍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 남북한의 외교적 行態를 생각해본다. 결론적으로 남북한외교는 상당히 기형적이다. 북한은 외국의 외교적 접근을 대부분 악의적으로 해석한다. 中國의 접근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자기들을 괴멸시키기 위한 음모적 단계라고 본다. 그와 정반대가 대한민국이다. 모든 것을 대개 善意的으로 해석한다. 국제관계를 매양 이렇게 나이브하게 대응하는 것은 그것대로의 문제가 있다. 日本은 日露전쟁 때에 테오도르 루즈벨트가 終戰협상을 중재해준데 대해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해리만 집단이 만주철도의 利權 참여를 제의해오자, 그때에야 비로소 日本의 고무라 外相은 국제관계에서는 國利가 善意 뒤에 항상 도사리고 있음을 실감했었다.

    한국 외교가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름의 지렛대를 사용할 때도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실현성 없는 단독북진을 고집한 끝에 그 대가로 韓美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파병에 갖가지 조건을 달았다. 특히 1.21사태, EC121사건 후에는 단독對北보복을 내세우며 그 대가로 지지부진했던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따냈다. 그러나 다 지난 얘기다.
    요즘 東北亞를 보면 국가로서의 魂을 갖고 있는 것은 中國뿐이다. 물론 20세기형 舊式민족주의이긴 하나 어쨌든 魂을 갖고 있다. 日本은 敗戰을 통해 國魂이란 것이 완전히 부정당한 탓인지 적어도 魂에 있어서는 아직도 正體性이 없다. 韓國의 魂은 해외시장에서 삼성, LG 등의 일부 대기업이 발휘하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日本과 별 차이가 없다. 축구공 앞에서는 魂이 발양되는 것 같다가 천안함같은 정치군사적 문제가 제기되면 산산조각이 난다.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은 분단이 가져다주는 가치․규범적 기준의 혼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中國 주변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미국을 물리쳤다. 그 전쟁의 막판을 지도한 헨리 키신저의 베트남觀은 눈여겨 볼만하다.
    “자신(베트남 민족)에 대한 그들의 몰두력은 완벽에 가깝다. 그들은 신체적 열세도 도외시하며, 힘의 크기를 가늠하는 기준 단위에는 관심도 없다. 그들은 自信感에 차서 外國的인 것을 경멸한다. 그들의 의지력은 他國을(당시 支持國家인 中蘇포함) 냉철한 우월감으로 요리할 수 있다.”
    사실 그랬다. 호치민 등은 미국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을 도운 중국이나 소련에게도 감사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누구나 外國이었다. 그들은 베트남의 독립, 민족주의, 국가적 자부심만이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러한 베트남에게 중국이 70年代末에 혼난 적이 있다. 그 뒤부터 中國은 베트남을 조심한다. 베트남人들은 전통적으로 인도차이나를 그들의 영역으로 생각해왔다. 때문에 統一베트남은 캄보디아의 親中共정권을 못마땅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캄보디아를 침공했다. 반면 중공은 통일베트남이 친중적인 캄보디아를 건드리고 베트남내의 화교들을 박해하는데 격분했다. 당시 미국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등소평은 “베트남에게 교훈을 주겠다”고 말했다. 中共은 6.25때처럼 人海전술로 베트남을 공격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베트남은 노획한 미국무기와 전쟁으로 단련된 군사적 경험, 그리고 민족적 자부심으로 맞섰다. 결국 中共은 敗退했다. 그때 등소평은 중국군의 現代化가 절심함을 느꼈다. 교훈을 얻은 쪽은 베트남이 아니라 中共이었던 것이다.
    지금 西沙군도는 中國과 베트남의 분쟁지역이다. 中國이 이곳을 본격적으로 건드릴 때에 베트남의 반응이 기대된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가 ASEM회의에서 베트남총리를 만난 것도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김철 객원 논설위원